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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한적한 모습의 도심의 거리가 현재의 스페인의 경제상황같이도 쓸쓸해 보인다.
▲ 겨울 오후의 도심의 거리. 어딘지 한적한 모습의 도심의 거리가 현재의 스페인의 경제상황같이도 쓸쓸해 보인다.
ⓒ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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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이제 영광의 자리를 내주었을 뿐 아무 말이 없는 고독하고 늦은 은퇴자의 모습으로 유럽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닌 것으로 얘기한다.

하나는 몽상적인 돈키호테와 하나는 실용적인 산초의 모습으로. 중세시대의 포르투갈의 영광을 함께한 스페인의 그 활기찬 기상은 이제 수평선 아득한 옛스런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드리드의 길을 걸으면 문득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제국의 흔적이다. 왠지 부정할 수 없는 열강의 기상이 베어든 역사적 현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우아하고 화려한 17-8세기의 바로코와 로코코 양식의 극치를 담고 있는 마드리드 왕궁은 스페인의 위엄과 역사적 과거를 보여주는 유물인 것 같다. 건축의 외형 또한 태양 빛에 드리운 백색의 연약함을 떠나, 건강함과 육중한 자태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감동이 있다. 서양의 석조문화는 그 역사적 영속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자연처럼 영원할 것 같은 위대함을 그 건축적 재질에서 이미 확보한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의 목조문화와 많은 부분 대비되는 현상이다.

화려하지만 간결하고 품위를 지닌 내부를 보고나면 왠지 일종의 귀족적 선민들의 일생은 평범했던 보통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각 거실마다 나름의 목적으로 치장되고 왕은 스페인제국을 이끄는 위엄과 통치력의 정상에서 그 상징적 건물속의 왕궁에 거하게 된다. 궁전 안에는 자체의 교회를 갖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뒤로는 쉔부르 궁전이나 베르사이유같이 정원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였다.

유럽의 뒷골목은 어디든지 한산하다. 텅빈 골목사이로 스며드는 이국적 생소함과 외로움이 터널같이 빠져나간다.
▲ 마드리드의 뒷골목 유럽의 뒷골목은 어디든지 한산하다. 텅빈 골목사이로 스며드는 이국적 생소함과 외로움이 터널같이 빠져나간다.
ⓒ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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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도 궁전광장의 따스한 태양광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백악의 대리석이 얼마나 절제된 미적 감각을 선사하는지 이해가 간다. 광장을 밝히는 고전적 안내등이 왠지 허전해 보일 정도로 가슴속을 밝혀드는 벅찬 희열을 순간적으로 느낀다. 마냥 그곳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고 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보통사람들의 마을을 멀리 관망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역사는 영광일 뿐 지금은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못난 열등국가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많이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앞선 문명으로 미개한 국가의 자원을 빼앗은 과거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2등으로 전락하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이들은 근면과 애착을 갖고 무엇인가 열중하는 것 과는 거리가 있는 민족이다. 단지 선진적 시대를 한때 향유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이루어 놓은 성취의 흔적들이 현재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폄하일까. 궁전 앞의 일군의 남미국의 사람들이 베사메무쵸를 연주한다. 설명하는 안내원의 말로는 내일은 과테말라 대통령이 궁전의 한 거실에서 환영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인간들의 작품들인 모든 인위적인 시설이나 조형물이나, 자연을 가꾼 현장들이 어쩌면 마치 신이 존재한다면 창조의 순간에 알맞게 그리고 계획적으로 조성한 것 같은 혼돈을 갖게 한다. 인간들이 만든 인간의 피조물이 인간의 의식과 생각을 지배하고 다시 인간들은 그 속에 동화되고 압도당하고 그리고 숭배하는 것은 아닐까. 일종의 미스테리같기만 하다. 어디를 가나 거대한 크기의 에스퍄냐 국기게양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일종의 애국심과 진정성을 갖게 만들고 있음을 본다.     

이곳은 왠지 유색인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인들 중에는 최근 중국인들의 이주가 많은 것 같고 관광객들로서도 이들의 발걸음은 잦지만 흑인들은 잘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었던 피지배국들인 남미인들은 스페인의 하층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일대학의 역사학 교수는 민족적 정체성은 언어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동류의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인들은 알지 못하는 길거리의 사람들일지라도 만나면 눈인사를 하는 정겨움을 나눈다. 비록 이들이 배낭족들 일지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 도시를 찾는 많은 외지인들이 이러한 마드리드인들의 친절과 호의에 감사한다.

아침의 햇살이 마치 밤하늘의 화려한 폭죽같이 한없이 산란된 모습으로 길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그래서 어쩌면 아다지오의 여린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왠지 눈가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드는 슬픔을 느낀다. 무엇이 그토록 푸르고 맑게 마드리드의 하늘을 채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없는 고독의 잔영이 홀연히  다시 발현되어 시내를 걷는 이방인을 어느 순간 감상적 자기성찰의 순간으로 내몰고 있지나 않는지.

한적한 골목을 걷다보면 창백한 햇살아래 고전적 형태를 갖춘 아파트가 보인다. 베란다와 장미, 새소리, 소형오토바이크의 엔진소리, 비둘기의 유유자적이 아름답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느낀다. 왠지 정착하고 싶다는 일말의 충동이 솟는다. 갑자기 궁금하다. 누가 그 집의 주인이며 이들은 어떠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유럽은 안정의 나라인 동시에 흔히들 복지국가라는 말들을 한다. 그것은 서둘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나 않을까.

마드리드의 하늘은 한편의 시를 짓고 있다. 무수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하늘을 담고 있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에서 연못의 물결이 번지는 파문같이도 간결한 규칙을 갖고 흩어지는 형상으로 미소한다. 한 줄의 스케치를 하는 순간의 유연한 동작과 푸른 화폭에 채워지는 자유로움이 번져간다. 정말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 지 마드리드의 하늘은 신비한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여인의 숨은 미소같다. 그 미소를 알고 싶지만 그대로 남겨두고 감상하는 것이 어쩌면 마드리드를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일 것 같다.

마드리드의 밤은 마치 황홀한 빨간 형채의 줄무늬 무지개같이 그렇게 현란하고 오색창연하게 깊어가고 있다. 이런 곳에서 이방인은 자유를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무엇인가 깨우치면서 빠져나와 스스로를 확인하는 아프라삭스의 해방감을 맛보는 것은 착각일까.

덧붙이는 글 | 유럽의 다음 도시들도 연재할 예정입니다.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스페인,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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