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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나는 난생 처음으로 '시위'라는 것에 참여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촛불시위에 참여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의미도, 감정도 사뭇 다른 시위였다. 일곱 살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은 종이컵에 꽂은 촛불의 아름다움과 아버지의 등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에 대한 어렴풋한 잔상뿐이었지만 열아홉 살의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분노와 고민과 더 넓고 어두운 세상이었다.

시위에서 돌아온 나와 친구들은 다음 날 바로 대자보를 쓰기 시작했다. 그 어떤 의무감이나 강압이 더해지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써내려간 대자보였다. 우리가 그날 보았던 촛불들만큼만이라도 세상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더 이상 죽어 나가는 혹은 죽을 것만 같다는 국민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고, 우리 학교의 학생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아래는 우리가 작성한 대자보 전문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도덕적 위기에 중립지킨 자 위해 예약"

대자보 앞장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머리를 모아 쓴 대자보
▲ 대자보 앞장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머리를 모아 쓴 대자보
ⓒ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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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어느 평일 오후를, 겨울을, 2013년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불법대선 1주년, 지난 12월 19일 국민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국민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마치 철도노조원들의 불법시위가 국민들의 평화를 헤치고 있다는 양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아십니까? 우리는 진정 그동안 평화로웠으며 안녕했습니까? 서울광장에 모인 그들은 철도노조원들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가는 국민이었으며 우리가 지향했던 것은 그 순간의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미약한 촛불의 불빛들을 모아 비추려 했던 것은 저 차가운 정부가 가리려 했던 겨울의, 2013년의, 21세기의 평화입니다.

누군가는 저희에게 '정의가 밥을 먹여주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려 합니다. 정의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정의의 부재는 언제든 우리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비단 물리적인 허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두환 정부에 항쟁을 벌였던 무수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그 6월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히 눈앞에 놓인 밥그릇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이며 목숨, 아름다울 수 있었던 젊은이들의 안녕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몇 차례의 밤과 낮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저물어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고, 슬픔은 희미해졌습니다. 겨우 슬픔을 묻은 우리들에게 독재자의 딸이 불법선거를 통해 지도자 자리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우리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의료, 철도, 수도, 전기를 민영화하여 그들의 사유재산으로 만들고, 우리의 영토 독도를 일본의 소유로 넘기고, 직위해제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경진압하는 등 무수한 국민들의 봄날이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침묵하고 있는 것이 과연 안녕해지는 일입니까?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불의에 무뎌졌기 때문입니까, 혹은 머리 위로 드리우고 있는 먹구름 위로 우리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까? 중립을 가장한 침묵이 과연 우리들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제도라는 이름으로, 입시와 취업과 직장이라는 얼굴을 한 채 바로 곁에 있는 불합리에 무뎌짐이, 정의를 부르짖다 죽어간 목숨들에 대한 잔혹성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단테는 말했습니다. 침묵 또한 의견입니다. 나는 안녕하다, 따라서 이 모든 불합리에 승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시대를 공유하며 매 순관 서로와 관계 맺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의 뒤편에 아름답게 기억될 권리가 있습니다! 이곳 OO예고의 무수한 얼굴들 만큼이나 분노해야 할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OOOO과 O기 박OO, 김OO, 김OO, 이OO, 김OO, 김OO, 문OO, 김OO은 기꺼이 얼굴을 들어 표현하고자 합니다.

대자보 완성 전에 들이닥친 선생님, 그리고...

우리는 대자보를 완성하지 못했다. 마땅히 대자보를 쓸 자리도 없던 우리는 차가운 교실에 돗자리를 깔고 쓰고 있었다. 그렇게 대자보 마지막줄이 완성되고 있던 차, 종례를 하려던 담임 선생님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선생님은 분주하게 마무리를 하려는 우리를 보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디에 붙일 생각이냐고 추궁하였지만 우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대자보를 빼앗아 가셨다.

우리는 멍하니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멍청히 앉아 그냥 빼앗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곧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 내려갔다. 선생님은 우리가 외압에 의해 쓰게 된 것은 아닌지, 또 문제가 생겨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는 아닐지 걱정하는 말을 늘어놓으셨다.

그렇게 한 시간의 설교와 실랑이 끝에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려던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다행히도 선생님에게 사정사정해 대자보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대자보는 빼앗겼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슬프고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우리들의 행동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상황에 화가 났다. 우리들의 외침을 우리 학교 학생들은 평생 듣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대자보를 빼앗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친구는 내 입시, 내 취업이 먼저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일 것이라 답한다고 싶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세상이 바뀔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내 촛불 하나가 너무도 미약해 과연 세상을 밝힐 수 있을지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미약한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어떻게 횃불이 되는지를. 일렁이는 촛불의 파도를. 가만히 앉아만 있다면 그 어느 것도 바뀌지 않지만, 내가 촛불을 들고, 당신이 촛불을 들고, 우리가 촛불을 들면 그것은 파도가 되고 언젠가 저 멀리, 견고하게 서 있는 불합리의 벽도 허물어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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