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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광장에서 사흘 동안 / 기뻐 울부짖었다 / 네 거리에서 춤추고 / 네 골목에서 날 새우며 사랑하였다 / / 너는 조국의 긍지 / 아니 / 너는 나 자신의 명예."

박원순 시장이 지난 2012년 10월 13일, 서울시 신청사 개청식에서 낭독한 고은 시인의 시 '서울의 내일' 중 일부다. 신청사를 보면서 과연 서울 시민들 중 몇 명쯤이나 '조국의 긍지'와 '나 자신의 명예'를 느낄 수 있을까.

서울광장에서 바라본 신청사의 모습은 구청사를 덮치는 쓰나미 같은 형상이다.
▲ 서울도서관과 서울시 신청사. 서울광장에서 바라본 신청사의 모습은 구청사를 덮치는 쓰나미 같은 형상이다.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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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서울시 신청사가 가림막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시민들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신청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쓰나미, 메뚜기, 잠자리로 요약된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바라본 신청사의 모습은 구청사를 덮치는 쓰나미 같은 형상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덕수궁 쪽에서 바라보면 메뚜기와 잠자리를 닮았다. 한옥 처마를 표현했다는 신청사 옆면의 곡선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타원형은 메뚜기 머리와 잠자리 눈을 연상시킨다.

시청사 신축, 장고가 시작되다

현 위치에 서울시청사가 건설된 것은 1926년 10월이다. 등록문화제(제52호)로 지정된 옛 서울시청사는 철근콘크리트조에 지하1층에 지상3층으로 지어졌다. 일제는 경성부청사를 건설하여 조선총독부청사와 축선(軸線)을 이루면서 식민지 경성을 재편하였다.

한옥 처마를 표현했다는 신청사 옆면의 곡선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타원형은 메뚜기 머리와 잠자리 눈을 연상시킨다.
▲ 덕수궁 쪽에서 바라본 서울시 신청사. 한옥 처마를 표현했다는 신청사 옆면의 곡선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타원형은 메뚜기 머리와 잠자리 눈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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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경성부청사는 서울시청사로 탈바꿈한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서울시청사 신축 계획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김현옥 시장은 1969년 1월 여의도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의도에 서울시청을 신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청의 여의도 신축계획은 양택식 시장 재임 시에도 계속됐다. 양택식 시장은 1976년까지 여의도에 신청사를 건설하고, 기존의 청사는 종합민원창구로 활용하는 방안을 수립했다. 그러나 여의도 개발자금이 부족하여 서울시청사는 신축 계획은 추진되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서울시청사 신축 계획은 강남개발과 연계 추진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지금의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 자리에 신청사 부지를 확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공공기관 청사의 신·증축을 규제하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시의 계획은 실현될 수 없었다.

신청사 건립이 전기를 맞은 것은 민선 서울시장이 등장하면서다. 1995년 초대 민선 시장으로 당선된 조순 시장은 '시민자치의 전당'으로서 신청사의 건립을 추진한다. 당시 유력하게 떠오른 후보지는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을 전제로 한 용산기지, 여의도, 뚝섬 등이다.

신청사를 건설하기 위해 서울시는 건립기금을 모으기 시작한다. 1996년부터 2009년 말까지 조성된 신청사 건립기금은 1890억 원에 달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신청사 건설계획은 1997년 외환위기의 한파를 맞으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장고 끝에 둔 치명적인 악수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시청사 신축계획은 이명박 시장 때인 2005년 본격화됐다. 2005년 4월 서울시는 기존 청사를 리모델링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고, 그 밖의 부지에 새로운 청사를 짓는 방침을 확정했다.

오세훈 시장 재임 때인 2006년 7월 서울시가 선정한 ‘깨진 항아리 모양’의 시청사 설계안. 문화재위원회는 ‘고층 건물과 덕수궁 주변 경관의 부조화’를 이유로 이 안들 보류시켰다. 서울시청사 8층에서 개최된 ‘공사다望’에 전시된 사진을 촬영했다.
▲ '깨진 항아리 모양'의 시청사 설계안. 오세훈 시장 재임 때인 2006년 7월 서울시가 선정한 ‘깨진 항아리 모양’의 시청사 설계안. 문화재위원회는 ‘고층 건물과 덕수궁 주변 경관의 부조화’를 이유로 이 안들 보류시켰다. 서울시청사 8층에서 개최된 ‘공사다望’에 전시된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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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오세훈 시장은 이른바 '깨진 항아리 모양'의 21층 높이의 시청사 설계안을 발표한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시 설계안을 '고층 건물과 덕수궁 주변 경관의 부조화'를 이유로 보류시킨다. 그 뒤 서울시는 5차례에 걸쳐 설계안을 변경하였다. 그때마다 문화재위원회는 "역사를 지우고 끊임없이 고층화하려는 도시화의 욕망을 다잡겠다"며 서울시의 설계안을 보류시켰다.

서울시의 6차 설계안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것은 2007년 10월이다. 그런데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시의 6차 설계안에 대해 건축전문가들은 상징성과 조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결국 서울시는 4명의 유명 건축가를 초청작가로 선정, 이들의 디자인 가운데 건축가 유걸의 설계안을 최종 선정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유걸의 설계안을 당선작으로 발표하면서 "건축적인 것은 2등 안이 더 좋지만, 이게 당선되면 신청사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선작인 유걸의 설계안은 납득할 수 없는 선정기준에 따라 선정된 것이다.

덧칠된 상징이 낳은 결과

2008년 3월 31일 마침내 서울시 신청사 착공식이 열렸다. 그로부터 4년5개월이 흐른 2012년 8월 31일 신청사가 완공됐다. 부지 1만2709㎡에 연면적 9만788㎡ 규모의 신청사는 지하5층, 지상 13층으로 지어졌다. 건설비 2989억 원이 투입된 신청사는 시민청, 다목적홀, 하늘광장 등 시민을 위한 공간과 직원 업무 공간으로 구분된다. 그동안 시청사로 사용되었던 구청사는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으로 거듭났다.

2008년까지 서울시청사요 사용되다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1975년 디지털시계를 부착하기 시작하여, 2003년 한국과 스위스의 우호증진을 이유로 스와치 아나로그 시계로 교체되었다. 지난해 서울도서관으로 재개관하면서 국내 기업인 로만손 시계로 바꾸었다.
▲ 서울도서관 2008년까지 서울시청사요 사용되다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1975년 디지털시계를 부착하기 시작하여, 2003년 한국과 스위스의 우호증진을 이유로 스와치 아나로그 시계로 교체되었다. 지난해 서울도서관으로 재개관하면서 국내 기업인 로만손 시계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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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사의 완공은 논란의 시작이기도 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신청사가 완공되자 불만이 쏟아졌다. 쓰나미, 메뚜기 머리, 잠자리 눈을 연상시키는 외관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편함으로 따지면 서울시 공무원들이 가장 컸다. 5000명의 직원 중 신청사에 입주한 인원은 11개 실·본부·국 59개부서 2205여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인원은 서소문, 을지로 등 별관 세 개동에 나눠 입주할 수밖에 없었다.

흉물스러운 외관과 공간 부족에 따른 업무상의 비효율. 서울시 신청사가 안고 있는 문제다. 이런 결과는 왜 초래되었을까. 원인은 구청사와 서울광장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왜곡하고 새로운 상징성을 덧칠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건설한 경성부청사는 해방 후 신청사가 건립되기까지 서울시청사로 사용되었다. 비록 옛 서울시청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위해 건설되었다 해도, 그 나름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는다. 서울시 구청사는 한국은행 건물, 신세계백화점 건물, 서울시의회 건물, 경교장 등과 함께 일제시대 지어진 근대건축이다.

2004년 5월 1일 개장된 시청 앞 서울광장은 어떤가. 서울광장이 만들어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2년 붉은악마의 응원전이다. 1987년 6월항쟁 직후에는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1987년 7월 9일)이 열렸던 곳이다.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2002), 탄핵반대 촛불집회(2004),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2008)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 신청사는 구청사와 서울광장을 존중하는 전제 하에 지어져야 했다. 신청사의 문제는 기존의 역사와 상징을 파괴하고 왜곡하면서 시작됐다. 2008년 오세훈 시장은 문화재청의 거듭되는 반대도 아랑곳 않고 구청사의 태평홀 등을 파괴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서울광장의 경우 이명박 시장 때 '서울광장 조례'를 제정하여 허가 받지 않은 집회는 불허한다는 높은 장벽 속에 갇혀 있었다. 구청사를 파괴하고, 광장을 닫아둔 상태에서 새로운 열린 시청사를 짓겠다는 발상은 성립될 수 없는 모순된 것이었다.

불편한 건축 시티홀

지난 10월 24일 서울시 신청사의 건설 과정을 다룬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개봉됐다. 개봉 직후 정재은 감독은 인터뷰에서 신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울시청사는 수백 개의 위원회의 (활동) 결과다.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이니 '랜드마크'니 하는 말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오세훈 혼자 '이걸로 해!' 이럴 수는 없는, 복잡한 시민사회적 지점에 우리는 도달해 있다. …… 오세훈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면 마음 편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위원회들의 복합적인 선택의 결과다." - 한겨레, 2013년 11월 9일

감독의 말대로라면 흉물이 되고 만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책임 소재는 밝히기 어렵다. 앞서 살펴봤듯이 서울시 신청사 문제는 복잡한 문제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건축가 유걸이 설계한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사진은 서울시청사 8층에서 개최된 ‘공사다望’에 전시된 이미지를 촬영했다.
▲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건축가 유걸이 설계한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 사진은 서울시청사 8층에서 개최된 ‘공사다望’에 전시된 이미지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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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서울시 구청사와 서울광장이라는 기존의 상징을 파괴하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려고 한 오세훈 시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오세훈 시장이 근대건축인 구청사의 태평홀을 파괴하고, 서울광장은 닫아놓은 상태에서 열린 신청사를 짓겠다는 모순적인 행태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둘째는 신청사 설계안을 선정한 심사위원들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건축적인 것은 2등 안이 더 좋지만, 이게 당선되면 신청사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당선작을 선정해 문제를 키웠다.

셋째는 건축가 유걸이 과연 신청사를 설계하기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것이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건축가 유걸에게 매우 관대한 시선을 보낸다. 신청사 개청식에 참가한 유걸이 귀빈석이 아닌 광장의 멍석으로 내몰리는 장면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유걸의 발언을 보면 과연 신청사를 설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신청사가 구관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원래 의도했던 것"이라며 "처음이라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점차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애초부터 구관은 보존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신청사를 짓고 보니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일보, 2012년 6월 30일

넷째는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을 한곳에 맡기는 턴키(Tum Key)방식의 문제이다. 턴키방식의 장점은 공기단축, 효율성을 꼽지만 잦은 설계 변경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그러나 신청사의 밑그림이 그려진 상황에서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삼우종합건축에 주어진 권한과 책임은 부차적인 것이라 판단된다.

신청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필요

올해 초 건축 전문 월간 <SPACE>는 건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현대건축물 최고와 최악을 선정 발표했다. 서울시 신청사는 최악의 현대건축 1위로 뽑혔다. "주변과 조화되지 않고 외계의 건물 같다", "일제마저도 특별한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 큰 실수를 범했다"는 게 선정 이유다.

가운데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하늘광장으로 올라 갈 수 있다.
▲ 서울시 신청사 내부 모습. 가운데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하늘광장으로 올라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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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신청사는 외관뿐 아니라 공간 활용도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신청사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청사를 통합한다는 애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5000명의 본청 공무원 중 2205명만이 신청사로 입주했다. 나머지는 서소문청사에 2008명, 을지로청사에 311명, 기타 청사에 481명이 분산되어 있다. 행정력의 낭비와 민원인들의 불편이 크다. 이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다. 을지로 별관의 임대료, 전시공관과 편의시설 등의 임대료 부담은 시민들의 몫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82년 만에 서울을 상징하는 멋진 시청사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신청사가 익숙해질 것이라고 손 놓고 있어야만 하는가.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건축주와 설계·시공자의 손을 떠난 건물은 사회적인 것이다. 서울시 신청사는 주인은 서울시민들이다. 흉물스러운 서울시 신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한 사회적 논의의 시작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전상봉 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시 신청사, #서울도서관, #유걸, #경성부청사,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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