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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간의 일상적 내적 빈곤의 터전에서 탈출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그것이 자신에 대한 일종의 충실함이라면 기꺼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의무감 비슷한 심정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꿈꾸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출발선 상에, 떠나는 자, 들어오는 자들의 흥분과 기대의 목소리 그리고 작은 설레임이 교차하는 꿈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본 여행기는 필자의 도시 탐방을 여러 나라의 순례형식으로 단순히 기술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전문적인 여행의 노하우를 적용한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인의 단순한 여정기록임을 감안한다면, 읽는데 별로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말>

유럽의 도시의 골목은 인구대비 대도시라도 정적이 흐른다. 맑은 오후의 건조한 햇살이 어딘지 인간본연의 고독과 허전함을 함께 공유하는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마드리드의 뒷골목.. 유럽의 도시의 골목은 인구대비 대도시라도 정적이 흐른다. 맑은 오후의 건조한 햇살이 어딘지 인간본연의 고독과 허전함을 함께 공유하는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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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를 10여 시간 정도 탄다는 것은 힘든 여정이다. 떠있는, 즉 부유하는 물체에 무게를 담고 이런 장시간을 여행한다는 것은 여행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반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왠지 좋다. 기내의 차가운 금속성의 엔진소리가 규칙적으로 새어나오고 승객들은 나름의 얼굴로 각자 그들의 여행목적과 동기를 안고 10여시간을 날아가고 있다.

프랑크프루트 공항이 보인다. 유럽은 항상 침묵의 짙은 그림자 같은 우울한 잔상이 무겁게 지배한다. 좋게 표현하면 중후하다고 할까, 아니면 칙칙하다고 할까.어쨌든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역사일까 아니면 자연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보다 이성적 인간의 면모 때문일까 궁금하다..하지만 유럽적 백인사회가 가지는 합리성과 안정성 그리고 성숙에 익숙하면 그러한 분위기가 어딘지 끌린다는 생각을 갖는다.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오히려 어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으로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의 오늘은 정말 거대한 국가적 통합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정치, 경제 그리고 역사적으로 독일의 입지는 다시 조명받고 있다. 공항 창밖으로 독일의 무거운 침묵의 그림자를 보는 듯하다. 어둠이 밀려면 여행하는 사람들 에게는 어딘지 거처를 갖지 않고 헤매이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춥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제각기의 사람들이 긴 통로를 건너 스페인행 여객기를 타기 위해 공항청사를 걸어가고 있다. 나는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스페인은 정열의 나라라는 표현을 흔히 들어서 인지 약간은 아웃도어의 분위기를 기대하게 한다. 

무너지내린 제국의 휴유증처럼 상처뿐인 영광의 현장..
▲ 마드리드 왕궁 무너지내린 제국의 휴유증처럼 상처뿐인 영광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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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기후만으로도 그 나라의 국민성을 파악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북구라든지 영국의 경우, 춥고 우중충하고 비오는 날씨로 인해 전형적인 실내문화 (indoor culture)의 대명사처럼 얘기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내문화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왔다. 그리고 독서를 통한 지적 충만을 생활의 여가(entertainment)로 여기기 까지 한다. 책읽는 문화, 토론하는 문화 그리고 사색하는 문화....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지적 충동이며 항상 우리들을 유인케 한다. 나는 그들 문화의 이러한 면이 좋다.

하지만 남부유럽은 아웃도어 컬쳐(outdoor culture)가 대중을 이룬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낙천적인 그들의 인생관은 항상 햇살아래서, 여유롭고 걱정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230 년전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그곳의 날씨에 매료되어 여행을 떠나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지중해의 건조한 햇살아래에 이들은 인생은 음울하고 걱정스런 삶의 여정이 아닌 향유해야 할 시간의 연속임을 이미 오래전에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둡다. 마드리드행 비행기의 의자는 마치 우리들의 사무실의자와 흡사하다. 실용적이라는 느낌에 일말의 편안함을 느낀다. 밖에는 빗방울이 날리는 것 같다. 그리고 비행기의 날개에 규칙적으로 빛나는 방향등이 그 야간비행의 외로움을 밝히고 있다. 어딘지 여행답지 않는 여행 같다. 인천에서 독일로 그리고 마드리드로 향하는 지금은 약간의 피곤함이 엄습할 만 하였으나, 하지만 크게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여행이 던지는 설레임이 깃든 긴장감에 연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식사가 나온다. 별로 입맛은 없었지만 일단 먹어둔다는 느낌으로 뚜껑을 열어본다. 정확하게 말해 우리의 보리밥이다. 뜨겁기조차 하다. 이베리아 반도의 졸음이 오는 밤 비행에서 웬 시골 보리밥상을 대하게 되다니...

마치 막장처럼 마드리드 공항은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유럽은 이제 하나의 국가라는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 이미 수속을 한 처지여서 아무 입국절차도 하지 않았다. 쉥컨조약에 의한 비자면제가 이루어지는, 마치 내국적으로 EU가 움직이는 현장이다. 편하긴 했으나 그저 한 국가로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어두운 밤 호텔을 향한 교통수단은 택시이외에는 없었다. 마드리드의 비오고 안개낀 밤을 야간택시의 조명등이 뿌연 불빛을 날리며 질주하는 기분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분위기 였다.

하늘이 웬지 투명하다. 마드리드는 그렇게 높게 위치하고 있다. 이제는 허울밖에 남지않은 앙상한 위엄으로...
▲ Metropolis Building 하늘이 웬지 투명하다. 마드리드는 그렇게 높게 위치하고 있다. 이제는 허울밖에 남지않은 앙상한 위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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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젠가 마드리는 또 다른 모습의 지중해와 피레네의 도시로 다가왔다. 착륙과 동시에 기내에서 흘러나오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의 선율에 일단은 이곳이 낙천적이고 흥겨운 성향을 가진 민족이 사는 국가라는 생각이 단번에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활주로의 작열하는 태양, 분주한 오전의 taxing, 다양한 형태의 항공기의 열병과 지중해의 훈훈한 열기와 습기의 혼돈, 중동적인 분위기의 이슬람식 느긋함, 높은 하늘에 한없이 채워진 형이상학적 형태의 구름, 그리고 하늘은 투명하였다. 시내를 접어드는 오후 한자락에는 황토색 아파트와 도로변 즐비하게 늘어선 공동묘지, 월요일 오후의 한적한 청결과 늦가을 같은 쌀쌀함이 창가를 스치는 마드리드의 입성이었다.

스페인도 유럽문화의 관점에서는 그 도시의 형태나 시민들의 의식은 정연하고 차분함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는 친절에 대한 의무같은 의식은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구축된 인간사랑의 결과같은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나 광장의 이름으로 이들은 항상 인간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 같다. 비록 목적없이 방황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광장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교류는 그들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이들을 지탱하는 인식들 이외에 외형적으로 스페인제국의 어제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압도적이고 위엄스런 외관의 건축물들의 중심에 기마상이 우두커니 서서 어제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내일의 미래를 견인하고 있다. 고전적 도심의 무게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국가적 자존으로 부활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들이 이룩했던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서려있다. 그것은 이들이 얼마나 국기를 통해 일반시민들의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있으며 은연중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정책을 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시대적 명암과 잔영이 산란하게 흩어져 현대를 장식할 지라도 국기 안에서 만큼은 나름의 일체감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가을햇살에 분수대의 물줄기가 은은하게 날리고 있다. 남유럽도시의 공원에서 느끼는 오후의 낭만이 어딘지 감미로운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꺼지지 않는 끈질김같이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가 도시에 번지는 느낌을 갖는다.   (계속)

덧붙이는 글 | 2013년 2월 스페인 여행을 기록한 글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다른 유럽 도시들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스페인,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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