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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 등 지난 대선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와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발언으로 '대선 무효'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는 곧바로 장 의원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새누리당은 한발 더 나아가 155명 의원 모두의 이름으로 장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행태에 대해 지나치다고 맞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당 대표가 직접 의원들의 입단속에 나섰다.

과연 '대선 무효'를 주장하는 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밖을 내다보는 행위일까. 헌법학자이자 전 국가인권위원장인 안경환(65)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의견을 물었다.

헌법학자가 본 '대선 무효' 논란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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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교수는 이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형성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특정 후보에 유리 또는 불리하게 개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선거 자체를 공정하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수혜자든 아니든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라면 현직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안 교수는 형사사건을 전제로 '독수독과(毒果毒樹)' 이론을 예로 들면서, "만약 선진국이라면 당연하게 선거 무효 주장이 제기됐을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같은 주장이 쉽게 제기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헌법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유고 사유를 굉장히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의회제도라면 이런 경우 선거를 무효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해 "당 전체가 (문재인 후보를) 단일후보로 여기고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던 것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어 1년이 지나도록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만큼 혁신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는 "선거의 연장"이라며, "당 전체가 하나로 결집이 안 되니까 당 차원의 계획도 나올 수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소통'에 나서지 않는 모습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으며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굉장히 모자라다. 아쉬운 정도를 넘어 역시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보여주는 모습이 모두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나아질 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아래는 안경환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방배동 한 커피숍에서 약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안경환 교수는 서울대 법대 학장과 한국헌법학회 회장, 법무부 정책위원장 등을 거쳐 2006년 제4대 국가인권위원장에 발탁되었다가 2009년 임기를 이명박 정부와의 갈등 끝에 넉 달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해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캠프 '새로운 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1년이 지나도록 대선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데, 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본부에 참가했던 분으로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다.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나도록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급기야 선거 자체의 불복이나 무효, 또는 대통령의 하야 문제까지 일부에서 거론되는 건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승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이나 패자인 문재인 의원에게나, 국민에게나 다 같이 불행한 일이다. 대단히 안타깝다."

- 지난 대선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헌법학자로서 지난 대선을 우리 헌법에 비춰본다면 어떤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나.
"기본적으로 헌법 정신이란 건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이 자유로운 의사로 참여해 표결하고, 그 표결 결과가 아무런 착오 없이 집계되어 모두가 그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이미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의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과거 자유당 시절처럼 투표 행위 자체에 누군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고, 개표도 기본적으로 클리어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의사형성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개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선거 자체를 공정하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된다.

물론 그것이 결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는 산술적으로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의사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공정하지 않게 개입했다면 반드시 밝혀야 하며, 그 수혜자든 아니든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라면 현직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패인, 당이 전력투구 하지 않은 탓"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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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는 '대선 무효'를 주장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듯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형사사건이라면 아무리 명백한 유죄의 증거라도 그 증거를 얻는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개입했으니 선거도 당연히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불법행위로 몇 표가 바뀌었든 상관없이.

물론 선거는 좀 다르다. 만약 선진국이라면 당연하게 선거 무효 주장이 제기됐을 것이다. 정부기관의 선거개입은 그 자체가 불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유고사유를 굉장히 엄격하게 해석한다. 국정공백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부통령제도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우리 헌법이 가진 경직성 탓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의회제도라면 이런 경우 선거를 무효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가기관의 개입이) 결과에 영향을 미쳐 그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야 사람들은 선거를 무효라고 본다. 대체로 선거의 원리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 같다. 미국의 부시-고어의 대통령선거 때도 만일 끝까지 재검표를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엔 대법원이 헌법의 이름으로 신속하게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미국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식의 정치적 해결을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검표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종교계는 선거 무효를 말할 수 있다. 세속의 기준과 달리 절대선과 옳음을 주장하는 분들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은 선거 매커니즘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라 그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거 무효를 주장하긴 쉽지 않을 거다."

- 최근 문재인 의원이 지난 대선에 대한 소회가 담긴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를 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난 선거를 돌아본다면 어떤가.
"책은 보내줘서 읽어봤다. 나에 대한 언급도 있더라. 솔직히 말하면 문재인 후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갔던 건 아니다. 이기기 힘들 거라고 봤다. 그럴 때일수록 나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들어가니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이길 수 없다고 본 이유는, 첫째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이 됐음에도 당 전체가 단일후보로 여기고,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내부 갈등을 겪었고 심하게 말해 어떤 이들은 해당행위까지 했다. 그래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봤다.

두 번째로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일찌감치 결정이 돼서 선거 체제나 움직임이 앞서 있었다. 선거 전체를 관장하는 캠페인 매니저 체계가 확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반면, 우리 쪽은 선거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만큼의 득표를 한 건 문재인 후보 개인에 대한 신뢰감과 함께 젊은층의 구체제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던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선전한 거라 생각한다. 이겨야 할 선거였는데 이길 수 없었다."

- 대선 끝나고 1년이 지나도록 민주당은 혁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분으로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선거의 연장이다. 구심점도 없고... 민주당에 과연 선거 패배 뒤에 제대로된 패인 분석과 평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평가보고서는 냈지만 총체적인 문제를 보는 게 아니라 역시나 분파의 문제로만 보더라. 당 전체가 하나로 결집이 안 되니까 당 차원의 계획도 나올 수 없다."

- 지난 대선 당시 '독재자의 딸' 프레임을 내세운 것은 패착이었다고 본다. 교수님도 언젠가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을 박정희 정권의 연장이라고 규정짓는 시각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 걸 본 적이 있다.
"문재인 의원의 책에도 비슷한 평가가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문 후보도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관철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독재자의 딸'을 내세운 전략은 당위론적으로도 옳지 않고, 선거 전략으로도 굉장히 잘못된 것이었다고 봤다. 진다고 봤다. 그런 전략으로는 지지자들의 결속은 강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득표로의 확장 가능성은 없다. 또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구태의연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희망을 못 준다고 생각했다."

"소통하는 게 민주주의 기본 모습, 박 대통령 굉장히 모자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대책회의에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된 안경환 서울대 교수와 나란히 참석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대책회의에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된 안경환 서울대 교수와 나란히 참석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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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집권 뒤 지난 1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서 유신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1년이 지나고 난 시점에서 역시 문재인 후보가 됐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당선이 되면 청와대와 여야 간 정례적 회담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소통을 하자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 선거는 승자독식 구도다. 더구나 국회까지 여당이 장악하고 있으면 승자독식의 구도를 밀어붙이게 돼있다. 패자를 지지한 비중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에서 그들의 입장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렇게 소통구조를 이끌어가야 원활한 정치가 된다.

만델라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오바마 대통령도 끝없이 의회에 나가서 반대 진영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나. 이게 민주정치의 기본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굉장히 모자라다. 아쉬운 정도를 넘어 역시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 소통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구체적인 증거가 계속 더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다면 법적인 판단을 기다리겠다고만 말할 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재판도 진행 안 된 상황에서 갑자기 정당 해산을 청구하지 않았냐. 이건 결국 정치적 판단의 문제다. 정치적 책임자가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판단은 오래 걸린다. 그때까지 정치적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은 정치적 지도자로서 옳지 않다.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으로 개입을 했고, 지금 국정원의 책임자이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든가 해야 한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신임 김진태 검찰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복수정당을 인정하고 다양한 생각을 받아주는 다원성에 있다. 소수의 입장이나 종교가 사회 질서에 큰 위험이 안 된다면 그냥 놔두는 거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좁게 해석하면서 정부를 비판한다든지 북한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가진다고 해서 이를 포괄적으로 종북 개념으로 덮어씌워 탄압하는 건 옳지 않다. 박정희 시대나 대만의 장개석이 하던 것과 똑같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국제사회에서도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은 좀 복고적이지 않느냐, 좀 시대에 뒤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점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정권은 (여야가) 주고 받으면서 바뀌는 거다. 암담해 보여도, 너무 신나 보여도 결국 지나가면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서 역사가 크게 가는 방향이 있다. 특정 정부와 관계없이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걸 인위적으로 막으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면 결국 힘들어진다.

이 정부가 1년이 다 되도록, 특히 국민 통합 차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다른 식의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그걸 발휘할 기회도 잃고 더 큰 위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또 하나, 야당이 깊은 성찰과 더불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마스터플랜과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보이니 둘 다 답답하다. 그럼에도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나아질 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다."


태그:#안경환,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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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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