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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
 5일 오후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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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논란을 빚고 있는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천황(天皇, 일왕) 탄생일 축하 소연'이라는 이름의 행사에 참석한 이유가 주목된다.

주한일본대사관은 5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일왕 생일 축하연을 성대히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 주재 외교관들을 비롯해 한국 외교부 직원, 정부·공공기관 인사들도 참석했다.

김석기 사장 "일본에 8년간 살아서 인연 있다"

김석기 사장은 오후 7시 넘어서 연회장에 도착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알파벳 약자(KAC)가 새겨진 배지를 단 그는 일본 대사관 직원 안내에 따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다른 일본인 인사들과도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축하드립니다(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도 있었다.

김 사장은 "일본에 8년간 살아서 인연이 있다"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일왕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바라보는 국민감정은 나쁘지 않을까"라고 묻자, "다른 건 묻지 말아 달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경찰청 도쿄주재관,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경찰 요직을 두루 거쳐 'MB맨'으로 분류되는 김 사장은 '용산참사' 때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서 철거민 강경진압을 진두지휘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를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공항공사와 관련해 실무적 전문성도 전혀 없는 인물이 사장으로 뽑히자 '낙하산'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매년 12월 열리는 일왕 생일 축하연은 몇 년 전 정치인들의 참석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참석한 데 이어 대기업들이 축하 화환을 보내 물의를 빚었다.

과거 논란 때문일까. 아키히토(明仁)의 79세 생일을 축하하는 이날 축하연에는 현직 정치인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업들이 보낸 축하화환도 없었다.

국내 인사들도 축하연 참석... "송년회같은 행사일 뿐"

5일 오후 일왕 생일 축하연에서 축사 중인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5일 오후 일왕 생일 축하연에서 축사 중인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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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가운데 행사장 입구에 보안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 보안검색대 설치된 '일왕 생일 축하연' 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가운데 행사장 입구에 보안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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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도 삼엄했다. 경호원 10여 명이 수시로 로비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크리스탈 볼룸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를 소개하는 '안내문'조차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저마다 흰색 초대장을 들고 자연스레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간혹 이리저리 살피는 사람이 있으면 경호원이 다가가 "크리스탈 볼룸에 오셨어요?", "일본 대사관 행사에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행사의 공식 명칭인 '천황탄생일 축하소연'이란 표현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커다란 가방과 외투를 호텔 보관소에 맡기고 개인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야 연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최 쪽은 초대장을 제출한 참석자들 가슴에 붉은 장미꽃 또는 하얀 장미꽃을 달아줬다.

참석자들은 벳쇼 대사 부부와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연회장 입구에는 일장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 중앙에는 후지산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이 자리했다. 단상 양 옆으로는 뷔페 음식이 마련됐다. 호텔 직원들은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며 와인과 오렌지주스를 건넸다.

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연에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성들이 들어가고 있다. 행사장 입구에는 행사를 알리는 어떤 안내문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초청장을 든 일부 참석자들이 두리번 거리다 호텔 직원에게 "여기가 일본대사관..."이라고 묻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되었다.
▲ 서울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연' 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연에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성들이 들어가고 있다. 행사장 입구에는 행사를 알리는 어떤 안내문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초청장을 든 일부 참석자들이 두리번 거리다 호텔 직원에게 "여기가 일본대사관..."이라고 묻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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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연 시작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연회장은 정장 차림으로 참석한 5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참석자들이 모인 곳곳에서는 일본어가 빈번히 들려왔다.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 '육군사관학교' 생도복 차림의 젊은 일본인 남성, 정복·예복을 입고 참석한 일본 대사관 무관들도 눈에 띄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한 일본 남성은 "확실히 역사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 참석 비율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국내 인사들도 있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등 언론계·기업 인사들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오후 7시30분께 잠깐 들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수 년째 축하연에 초대를 받아 참석해왔다는 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일지 몰라도, 한국인들에게는 단순히 송년회 같은 행사"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일왕 생일을 축하한다는 게 껄끄럽지 않냐"고 묻자 "그렇다고 초대받았는데 안 올 순 없지 않냐"면서 "한일관계가 나빠지지 않으려면 '천황(일왕)'이란 부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답했다.

벳쇼 대사는 이날 축사를 통해 "아베 총리는 한국이 일본과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말했다"며 "일한(한일)관계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대화를 거듭해 우호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태그:#김석기, #일왕, #천황탄생일, #일본,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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