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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횡포에 맞선 17건의 필화 사건 <권력과 필화> 겉그림
 권력과 횡포에 맞선 17건의 필화 사건 <권력과 필화> 겉그림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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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필화>(문학동네)는 필화(筆禍) 사건을 통해 횡포를 저지르는 권력과 그들에 맞선 이들의 싸움을 전하는 책이다. 말과 글을 문제 삼아 사람들을 옥죄는 부당한 권력의 생리와 횡포, 그에 맞선 양심적인 인사들의 고난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

책의 저자는 대한민국 인권 변론의 대명사격인 한승헌 변호사다. 한 변호사는 1960~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의 대표적인 시국 변호사였다. 수많은 양심수 변론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변호사인 그 자신이 한 여성잡지에 사형제도를 비판한 수필을 기고한 일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한 변호사는 올해로 법조생활 55년을 맞이한다. 이 책은, '한승헌 변호사 법조 55년 기념선집 간행위원회'가 그의 법조생활 55년을 기념하여 그간 한 변호사가 남긴 글들을 모아 펴낸 '한승헌 변호사 법조 55년 기념선집'(총 4권) 중의 하나로 나온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어는 제목에도 나오는 '권력'과 '필화'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여섯 개 장은 필화 사건으로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제하고, 사상과 이념을 단죄하는 권력 작동의 메커니즘을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다. 제1, 2장에는 각각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필화 사건의 개요와, 이들 사건에 대한 저자의 실제 변론문을 담았다. 제1, 2장은 이 책의 고갱이다. 필화 사건을 일으키는 권력의 집요함이 어느 정도인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만큼의 자유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값진 것인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문학과 필화', '표현의 자유와 권력', '작가정신, 언론, 음란, 저작권의 제 문제', '정치적 통제와 법의식의 해부' 등의 제목이 달린 제3~6장은 그간 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다수가 길지 않은 언론 기고문들이다. 하지만 폭압의 시절에도 사표(師表)의 태도를 놓지 않았던 저자의 강단과 기개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필화'는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외국에서 필화 사건은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등 사권(私權) 침해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보 관계법 위반을 이유로 한 시국사범의 성격을 띨 때가 많다. 글(작품)이나 말(발언) 등 표현에 문제가 없는데도 권력 쪽에서 처벌의 표적으로 삼고 나서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필화 사건이 사악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17건의 필화 사건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은 '소설 <분지(糞地)> 사건'이다. 저자는 이를 '문학작품 반공법 기소 제1호' 사건으로 규정해 놓았다. <분지>를 쓴 소설가 남정현이 기소된 것은 1965년이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 문제 등으로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분지> 사건은 바로 그때 터졌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 일가가 8·15와 6·25의 어지러운 현실속에서 겪는 고난을 담은 단편소설이다. 소설 후반부에는 '만수'의 누이동생 '분이'를 학대하는 미군 병사 '스미스'의 만행과 이를 응징하는 '만수'의 도술 행각 등이 그려져 있다. 1심 판결에 증인으로 나온 평론가 이어령의 분석(?)에 따르면, <분지>는 민족문화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나 비서구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대한민국 검찰은 공소장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대한민국이 마치 미국의 식민지 통치에 예속되어 주둔 미군들은 갖은 야만적인 학살과 난행 등을 자행하고 우리의 생명 재산을 무한히 위협하여···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자들은 미국의 강압과 보복을 받으면서도 굴복과 사멸함이 없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다는 양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선전하여···북괴의 대남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했다." (19쪽)

어마어마한 길이의 공소장 문체도 숨을 막히게 하지만, 내용이 너무 살벌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시 검사는 증인 심문에서 이어령에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다고 말하면서 '증인은 용공적이라고 보지 않았'는지 묻는다. 이어령은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신문기사가 아니다"라는 촌철살인의 답변을 내놓는다. 차라리 슬픈 코메디의 한 장면들이다.

필화 사건은 묵직하고 고리타분한(?) 정치 담론과만 관련되지 않는다. 뜨거운 논란을 부르는 '음란·외설' 시비가 필화 사건의 한 자리를 차지할 때도 많다. 1992년에 불거진 <즐거운 사라>(작가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사건에 "'즐거운 사라'의 즐겁지 않은 수난"이라는 재치 있는 부제를 달아 놓았다.

저자에 따르면, 음란 시비 때문에 작가가 구속까지 된 예는 거의 없었다. 음란죄는 그 형벌도 1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벼운 편이어서 모두가 불구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의 경우에는 달랐다.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사(청하출판사) 사장까지 구속되었을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안팎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기의 '음란·외설 재판'은 시작되었다. 법적 공방의 핵심은 <즐거운 사라>가 문학 작품인가 아니면 퇴폐적이고 도색적인 음란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 변호사는 어떻게 변론했을까.

"무릇 음란물이 되자면 우선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시키는 것이 첫째 요건인데, 단상의 재판관 중에 이 소설을 읽고 성적으로 흥분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고로 무죄판결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93쪽)

우스개 같은 변론이었지만 실제 대법원 판례에 바탕한 논리였다. 판결 결과는 기대와 달리 유죄로 나왔다. 그때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판사들이 너무 젊어서 그 정도에도 흥분을 하신 모양이다." (94쪽)

간단한 촌평치고는 풍자와 익살이 제법 살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사건의 대법원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전에 주변에서 들은 '뼈있는' 의견도 소개해 놓았다.

"그래도 대법관들은 나이가 좀 많으니, 그리 쉽게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94쪽)

<즐거운 사라>는 결국 대법원까지 간다. 저자는 최종심의 올바른 판결을 염원하면서 상고이유서를 정성껏 써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하지만 나이 든 대법관들도 흥분해서였을까. 상고심 판결 역시 '역시나'로 마무리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묘사는 퇴폐 음란이요, 반윤리요, 그러니까 범죄다"라는 식의 유죄론이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제3장의 '법적으로 본 성표현의 한계'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법원 판례는 형법 제234조와 244조상의 '음란 문서'를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달력에 실린 여배우 얼굴만 보고도 '성적 흥분'이 일었던 중딩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달력을 음란물로 볼 수 있겠나. 

그래도 우리나라 대법관들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 판례는 '음란 문서'의 음란성을,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등등을 통해 판별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런 판시를 읽고 나서 '음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재가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음란성 판정의 핵심인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 '건전한 성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 등을 과연 누가, 어떻게 해석할까. 그래서 저자는 이런 규정 자체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나온 이 판례 내용은 1951년에 나온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를 그대로 베껴놓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일본 판례는 1918년 다이쇼[大正] 시대 판결과 근본을 같이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대법원의 음란죄 판례는 지금(당시 대법원 판례가 나온 1997년-기자) 80세 되는 할머니가 태어나던 때의 성풍속에 적용하던 박물관용 판례의 복사판이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필화를, 있어서 불행한 것도 없어서 다행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혜안이 담겨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전자가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의 살아 있음의 증좌라면, 후자는 압제 앞에 항복한 침묵과 굴종의 반사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넓은 의미의 '필화(筆禍)' 시대를 지나고 있다. 말 한 마디, 글자 몇 개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미사에서 나온 신부의 말 한 마디가 고발 대상이 돼버렸다. '민중'을 주권자로 본다는 정당 강령의 문구는 합법적이었던 정당을 해산해달라는 법적 신청의 근거가 되었다.

신부와 정당 강령의 말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려내려는 '따뜻한 무기'들이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무기들을 빌미 삼아 권력은 진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의당 해야 할 비판과 저항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안심하고 있으면 될까.

올리버 웬델 홈스(1809~1894)는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에서 가장 많은 소수 의견을 개진한 연방대법관이었다. 그가 '위대한 반대자'로 존경받는 이유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자는 웬델 판사의 이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기본권의 헌법상 보장은 소수의견 내지 이단 그리고 지배세력이 꺼려하는 사상까지도 아울러 포용하는 것이어야 하며, 우리 시대의 문화와 자유와 진실을 국가권력의 자의로부터 지켜내야 할 헌법의 보장 기능은 어떤 이유로도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69쪽)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16년 전이 이 외침이 다시 한 번 굵게 울려퍼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권력과 필화> (한승헌 지음 | 문학동네 | 2013. 11. 8 | 494쪽 | 23,000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필화 - 권력의 횡포에 맞선 17건의 필화 사건

한승헌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권력과 필화>, #한승헌, #국가보안법, #음란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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