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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프랑스 북부 도시 릴(Lille)에서 20세의 한 대학생이 2층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왜 이 학생은 건물에서 떨어진 것일까?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릴의 사립 비즈니스스쿨인 에덱(Edhec)에 다니는 뽈(Paul)은 학교 내의 유명한 요트경주클럽에 가입했다. 사고가 난 날은 이 클럽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선배들이 오후 7시에 25명의 신입생들을 소집했다. 이들은 시내에 위치한 바에서 각자 10회 이상의 개인 인터뷰를 받고, 오후 9시에 요트경주클럽 회장이 빌린 한 건물의 지하창고에서 각자의 역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서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슈퍼에서 장 봐오기. 장바구니 목록에는 주류가 주요 품목이었다. 오후 10시 30분, 이들은 한 학생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 선배들은 1/3의 위스키와 1/3의 보드카, 1/3의 파스티(아니스 향료를 넣은 45도 되는 술)를 섞은 술병을 신입생 손목에 묶은 채 술을 계속 마시면서, 후배들에게 '크로크 무슈(햄과 치즈를 넣어 구운 샌드위치)'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금만 행동이 굼떠도 뒤에 서 있던 선배들이 후배들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내리쳤다. 간단한 식사 후 선배들은 이들을 둥그렇게 앉히고 계속해서 술을 먹이고, 남은 음식을 다 먹으라고 윽박질렀다. 무릎을 꿇고 앉으라는 명령도 나왔고, 일부 남학생들에게는 바지를 벗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태에서 오후11시 30분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에 취했고, 술이 약한 뽈은 다른 학생들을 따라 디스코텍에 갈 수도,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만취 상태에 놓이게 됐다. 뽈은 할 수 없이 술을 먹었던 집에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 날 오전 5시 건물 안뜰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정신을 차린 뽈은 지난 밤 환영식 초반은 기억하지만, 나머지는 필름이 끊겼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자신이 2층 건물에서 떨어졌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지자 Edhec 학교 측은 즉시 학교의 모든 클럽 활동을 중단시켰고, 향후 클럽 지원도 끊고, 이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퇴학 처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람 잡는 '비주타주'

 달걀과 밀가루, 기름이 범벅이 된 채 알몸으로 기어가고 있는 신입생 모습을 담은 영상이 프랑스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화면은 해당 영상을 소개한 기사.
 달걀과 밀가루, 기름이 범벅이 된 채 알몸으로 기어가고 있는 신입생 모습을 담은 영상이 프랑스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화면은 해당 영상을 소개한 기사.
ⓒ www.art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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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일부 사립학교에서 해마다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여는데 이를 비주타주(bizutage)라고 부른다. 비주타주라는 말은 비존느(bisogne)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는데, 이는 신입생이란 뜻이다.

비주타주의 기원은 중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신입생들에게 물바가지를 씌우는가 하면 돈을 추렴해서 선배들에게 주기도 했다. 이 돈 거래는 14세기에 금지됐지만, 그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비주타주는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가 1928년부터 비주타주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1968년 학생 혁명 당시 수많은 대학교(특히 문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굴욕적이고 여성차별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비주타주를 보이코트 하자"는 주장이 나와 당시에는 어느 정도 근절되는듯 보였다.

문제는 비주타주가 선후배의 연대감을 키운다는 미명 하에 마치 군대처럼 신입생들에게 굴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데 있다.  억지로 술마시게 하기, 바보 같은 옷차림으로 길거리에서 화장지 팔게하기, 썩은 생선 억지로 먹이기, 돼지 얼굴에 키스하기 등이 그 예들이다. 심할 경우에는 구타는 물론 배설물 위를 기게 하거나 머리에 무거운 가방을 씌우고 호수에 들어가게 하는 등 굴욕을 요구하는 행동은 무수히 많다.

2010년 9월 낭시에서 한 여학생이 새벽 숲에서 강간을 당한 채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것도 비주타주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결국 여학생은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갔지만, 프랑스는 1998년부터 형법으로 비주타주를 경범죄로 처분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6개월 징역과 7500유로의 벌금을 물게 하면 끝이다.

최근에는 카메라와 비디오로 이런 심한 비주타주 장면을 찍어 웹사이트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달걀과 밀가루, 기름이 범벅이 된 채 알몸으로 기어가는 프와티에 대학교 학생의 모습이 작년 10월 웹사이트에 게재돼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위 사진 참고)

물론 이런 비주타주가 모든 학교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다. 국립대학의 인문학 계통에서는 비주타주라는 것이 없으며, 이 행사는 일부 특수직 양성 사관학교나 공대, 의대, 약대, 비즈니스 스쿨 등에서 성행하고 있다. 일부 심장이 약한 학생들은 이런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도 비주타주 때문에 미리 학교 지원을 포기하기도 하고, 학교에 들어가서 치욕적인 비주타주를 당하고 학교를 자퇴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설령 어쩔 수 없이 비주타주를 당하고 학교 생활을 한다고 해도 굴욕적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작년 10월 말에는 생시르(St-Cyr)육군사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이 한밤중에 50미터나 되는 연못에서 수영 훈련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규 수업이 아닌 선배들이 진행한 훈련 도중 벌어진 이 사고는 연못을 비추던 불빛이 3분 동안 꺼진 사이 일어났다.

 <르피가로>의 'St-Cyr 군사학교 학생 사망, 비주타주 희생'이란 제목의 기사
 <르피가로>의 'St-Cyr 군사학교 학생 사망, 비주타주 희생'이란 제목의 기사
ⓒ 르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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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난 9월 18일, 고등광업학교 신입생인 19세 죠슬렝이 비주타주가 있던 날 밤에 학교 기숙사 7층 (한국으로는 8층)에서 떨어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6일 만에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안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학생의 가방에서 깨진 안경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비주타주로 인한 사고로 보고 있다.

이런 일은 프랑스 학생이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9월 21일, 벨기에 리에즈의 유명한 수의과학교 신입생인 프랑스 여학생도 비주타주에서 강제로 10-20리터의 물을 마신 결과 기절해 병원에 옮겨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뇌의 부분적 손상은 피할 수 없다고 9월 27일자 <르몽드>는 전하고 있다.

고발을 경계하는 프랑스 사회와 침묵하는 학생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최대한 존중해주는 프랑스 사회지만, 모든 종류의 고발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굴욕적인 비주타주를 당하고도 대부분 침묵하는 것이다. 선배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 밤중에 눈을 가린 채 차로 캠퍼스에서 45분 걸리는 무인지역에 방치 당했던 학생의 경우도 고소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고소할 경우에 당할지 모를 보복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비주타주 피해자들을 위한 '비주타주반대 국내협회(Comite national contre le Bizutage)'에서는 이들을 위한 조언과 충고, 법적인 대응을 돕고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은 건 아니다.  작년에 들어온 비주타주 제소는 31건으로, 이 가운데 법정까지 간 사건은 6건에 불과하다. 또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형법으로 처벌을 당한 경우도 겨우 2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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