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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지은이 손철주┃펴낸곳 (주)현암사┃2013.10.30┃1만 5000원
 <사람 보는 눈>┃지은이 손철주┃펴낸곳 (주)현암사┃2013.10.30┃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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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유골, 말 속에 뼈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귀가 밝은 사람은 말 속에 들어 있는 속뜻이 잔가시처럼 미미할지라도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하지만 말귀가 어두운 사람은 말 속에 정강이 뼈 만큼이나 굵은 속뜻이 들어 있어도 제대로 새기지 못할 것입니다.

말에만 속뜻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글에도 감춰진 뜻이 있고, 그림에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 겁니다. 말에 감춰진 속뜻을 제대로 읽는다면 개떡 같은 말도 찰떡같이 새길 수 있고, 찰떡  같은 말이 사실은 개떡 같은 뜻이라는 걸 알 수가 있을 겁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처럼 숨겨 놓은 의미, 허투루 한 붓질처럼 그려놓은 이유까지를 새길 수 있다면 그림을 보는 재미는 훨씬 더하고, 그림에서 찾는 의미는 한층 더 심오할 것입니다. 

그림자처럼 담긴 뜻 살핀 <사람 보는 눈>

<사람 보는 눈>(지은이 손철주, 펴낸곳 (주)현암사)은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하며 미술에 대한 글을 써온 미술평론가인 저자가 언중유골처럼 그림에 감춰진 의미와 뜻을 풀어낸 내용입니다. 모르고 보면 그냥 무심코 넘길 수 있는 붓놀림에 감춰진 의미를 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창밖 풍경을 훑어보듯이 흘려 읽을 수 있는 배경 하나에 담긴 의미조차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설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85장의 그림 대부분에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임경업, 정몽주, 박문수, 이성계, 최치원 등의 초상화와 김홍도의 '낮잠'이나 '벼타작', 신윤복의 '단오풍경'이나 '국화밭'에서와 같은 그림들이 대표적인 그림들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반드시 사람이 등장하는 인물화만을 풀어낸 것은 아닙니다. 추사가 쓴 서예는 물론 산천경치를 그린 산수화 등에 담겨있는 속뜻도 술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신윤복, <국화밭에서>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 x 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사람 보는 눈> 192쪽-
 신윤복, <국화밭에서>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 x 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사람 보는 눈>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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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더미 앞에서 벌어진 얄궂은 장면이다. 웃통 벗고 맨살 드러낸 사내가 대님을 맨다. 구겨진 상투 아래 머리칼은 흐트러졌다. 길게 땋은 머리에 댕기 늘어진 소녀가 고개를 갸울인다. 구김진 진 치마와 속곳을 채 추스르지 못한 차림새다. 얄망스러운 할멈이 사내에게 한 잔을 건네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무슨 소린지 수군거린다.

뭐하는 짓이기에 이리 점잖지 못한가. 정황으로 봐서 알아먹겠다. 젊은 서방이 어린 기생의 초야권을 샀다. 옛말로 '머리를 얹어주는' 성 거래의 현장이다. 이미 일을 치렀다. 어떻게 아느냐고? 사내 상투가 푹 고개를 숙였다. 얍삽하게 생긴 서압의 입가에 밉상스런 흡족함이 뱄다. 저 음충스러운 할멈이 뚜쟁이 노릇을 했다. 납자로 치면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노구(老嫗)다. 그녀가 입에 발린 말로 어린것을 달랜다.

미성년을 상대로, 그것도 길바닥에서, 이 무슨 낮이 화끈한 짓거리인가. 아동 청소년 보호법도, 도가니법도 통하지 않던 조선의 색줏집 풍속을 참으로 뻔뻔스럽게 그렸다. 그린 이야 물을 것도 없이 혜원 신윤복이다. 이단아로 떠들썩했던 그에게 걸맞은 소재가 아닌가. 혜원의 노골적인 붓질은 그림에 적힌 글에서 한 수 더한다. 당나라 원진(원진)의 시를 따왔는데, 곱씹어보면 야릇하다. - <사람 보는 눈> 192쪽

그림을 그린 이의 속내까지 훤히 밝혀내

신윤복이 그린 <국화밭에서>를 풀어 놓은 내용입니다. 참 섬세하고 기발합니다. 뭐 하나 그냥 지나친 게 없습니다. 웃통을 벗어 확 드러난 맨살처럼 한 눈에 확 드러나는 것부터 비뚤어진 상투에 담긴 의미까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깡그리 밝혀내니 그림을 그린 이의 속내를 원하게 들여다보고는 느낌입니다.

속내를 들킨 이야 조금 민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림에 감춰진 속뜻까지를 새기며 보는 재미는 굵직한 사골을 푹 우려낸 깊은 맛이며 진하게 배어난 사골 맛입니다. 초상화 속의 수염 한 가닥, 눈썹 한 올, 산수화 속의 나뭇잎 한 조각에 담긴 의미조차도 새기고 우려서 풀어내니 그림을 보는 관심은 점점 짙어만 가고 그림에 담긴 의미를 새기는 재미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순간만큼이나 새롭게 밝아오는 세상입니다.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그림, 언중유골처럼 그림에 담긴 뜻까지 새기게 되니 또 다른 눈이 열리고, 또 다른 지식세계가 열리는 흥미진진한 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람 보는 눈>┃지은이 손철주┃펴낸곳 (주)현암사┃2013.10.30┃1만 5000원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 - 나쁜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탄 심리학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부키(2018)


태그:#사람 보는 눈, #손철주, #(주)현암사, #김홍도,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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