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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연재에서는 이슈의 3요소를 설명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이슈와 비슷하면서도 자꾸 헷갈리는 '어젠다'와 '슬로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다시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여기서 예시로 든 사례들은 '옳다 또는 그르다'를 떠나서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든 것입니다.

정책 혹은 공약의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점, 꼭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유권자는 '옳다 또는 그르다'로 판단하지 않고 '좋다 또는 싫다'로 판단한다는 선거판의 명언이 여기서도 적용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숙지하셔서 예비후보자(정치인)에게는 영감을, 착한 시민(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기자 말

지난 연재물(관련기사 : 홍준표의 '진주의료원 폐원'은 성공한 이슈파이팅?)에 대해서 몇몇 분이 문의를 하셨습니다. 이슈의 세 가지 조건에는 동의를 하지만 대체적으로 개발 이슈에 매몰돼 있는 것 같아 아쉽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이슈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개발' 관련된 이슈가 더 파급력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의 김상곤 교육감이 맨 처음 제기한 '의무급식'(저는 무상급식이라는 단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의무급식은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이슈라서 크게 성장할 이슈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판을 키워주었습니다. 누가요? 네, 오세훈 전 시장이 시장직을 걸면서 의무급식의 판을 키워준 것입니다.

의무급식을 주장한다고 할 때, 새벽잠 설치면서 아이들에게 밥과 반찬을 싸주시는 엄마들부터 관심이 급증했지요. 덩달아 아이들과 아빠도 기대를 걸면서 대중의 관심사로 부상했습니다. 거기서 그칠 줄 알았는데 이 이슈는 보수 진영에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급기야 오세훈 시장이 큰 절을 하면서 찬성과 반대의 극명한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언론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하고요. 오세훈 시장이야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 의무급식 논쟁은 결국 찬반 선거로 귀결이 됐지요. 선거에 대단히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이처럼 개발 이슈뿐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것도 유용한 이슈파이팅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하토야마의 '정권교체론'

일본의 정치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2009년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자민당 독주인 '19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교체 대신 교대(交代)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이채롭다.
▲ 2009년 일본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룩할 때 사용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포스터 일본의 정치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2009년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자민당 독주인 '19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교체 대신 교대(交代)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이채롭다.
ⓒ ⓒ 일본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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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 자체를 선거의 1등 이슈로 부각시켜 선거판을 결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정치적 낭인이 됐지만, 일본 정권 교체의 주역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2009년 하토야마는 정권교체론을 내세워 54년 만에 자민당이 독주했던 역사를 바꾸면서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사실 일본이라는 곳은 알 듯 모를 듯 우리의 문화와 차이가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치고 이렇게 고분고분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도 없다는 평가가 많지요. 오죽하면 혼네(本音·속내)와 다테마에(建前·겉 표현)가 다른 게 일본인이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극단적으로 말해 '일본에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일본 역시 2008년 국제금융 위기의 여파를 비켜나지 못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일본 사람들을 바꿔놨습니다. 늘 조용조용하고 온순했던 일본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자민당 정권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 것이지요. 정치집회가 열리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모르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그것도 정치적 주제를 가지고 언쟁을 벌이는 일조차 있었습니다.

결국 2009년 8·30 일본 총선은 '정권교체'의 모토를 내세운 하토야마가 308석을 얻으면서 119석을 얻은 자민당을 물리치고 '1955년 체제'를 붕괴시켰습니다. 선거 직전 의석이 민주당 115석이었고 자민당이 300석이었으니까 일본의 정치사회에 하토야마가 얼마나 큰 바람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 수 있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정권교체론'은 대중의 관심사, 찬반이 존재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확한 이슈파이팅의 원칙에 충실했다.
▲ 하토야마 유키오의 '정권교체론' 개념 하토야마 유키오의 '정권교체론'은 대중의 관심사, 찬반이 존재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확한 이슈파이팅의 원칙에 충실했다.
ⓒ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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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젠다는? 슬로건은? 

가끔 이 이슈파이팅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선생님, 어젠다는 뭐고 슬로건은 뭡니까? 어젠다는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라고 불리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용어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의제 설정'쯤 되는데요, 어떤 회의든지 논의에 부칠 주제가 있기 마련이듯, 그것이 정상적인 의제로 상정돼야 논의가 됩니다.

어떤 방향으로 논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틀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들 '평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후보자는 '성장' 이야기를 하면 논의를 할 수 없는 것이겠죠. 어젠다 세팅은 이렇듯 후보자의 정체성과 직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젠다 세팅은 그 후보자의, 그 후보 캠프의, 그 후보자 소속 정당의 방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유권자에게 매력 있는 결과물로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유권자는 그 방향성을 통해 '그 무엇'을 쥐어주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후보자는 이 어젠다를 이슈로 생각해서 매번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죠.

국어사전은 슬로건에 '대중의 행동을 조작(操作)하는 선전에 쓰이는 짧은 문구'라는 정의를 붙였습니다. 바로 강금실 전 서울시장 후보의 '교육은 미래다'라는 식의 이야기죠. 대중은 골치 아프고 깊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짧고 간결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슬로건은 이를 위해서 자신의 주장과 정견을 아주 짧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언어 이미지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뒤흔들었던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기억하시나요? 사실 저는 이 슬로건을 두고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독재를 타도해서 끝장이 나면 났지 거기다 무슨 호헌을 철폐하라고 외치는가?'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보다는 '파쇼하에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가 더 올바른 구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택하고 목놓아 외쳤습니다. 당시의 대중은 독재도 끝나야 하고 호헌도 철폐돼야 한다고 간단한 등식으로 입장을 정했던 겁니다.

압도적 우위 점한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사실 지난 대선 기간을 통 털어서 가장 인상에 남는 슬로건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에 나왔던 다른 슬로건들, 예컨대 '우리나라 대통령'을 내세운 문재인 후보, '빚 없는 사회'를 내세운 정세균 후보, '신3균주의(지방균형발전·남북균형발전·사회균형발전)'과 '아래로부터'를 내세운 김두관 후보의 슬로건은 그야말로 낯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럼 니네 나라 대통령 뽑냐?"는 비아냥이 돌아왔으며 '빚 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대통령 후보가 아닌 사채업자 같다"는 이야기를, '신3균주의'와 '아래로부터'에 대해서는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누가 '아래로부터'를 이야기 하지 '위로부터'를 이야기 하겠느냐?"라는 비판이 생겼습니다.

당시 군계일학, 아니 대통령 선거 전반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적 가치의 나아야 할 비전과 지향을 제대로 형상화 한 슬로건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힘든 노동의 연속인 노동자나 학교와 학원에 내몰리는 청소년들이나 이리저리 삶에 부대끼는 민초들에게 '저녁이 있다'는 단어 자체가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날 손학규 후보로부터 같은 이름의 책을 선물 받고 "'저녁이 있는 삶'을 빌리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니까요. 차라리 문재인 후보가 전격적으로 이 '저녁이 있는 삶'을 차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박근혜-문재인의 슬로건 비교

박근혜-문재인 선거홍보 포스터
 박근혜-문재인 선거홍보 포스터
ⓒ 새누리당/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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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이렇게 외쳤지요.

"사람이 먼저다."

그런데 이 '사람이 먼저다'가 나오기 전에 어떤 슬로건들이 나왔는지 기억하시나요?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서는 '강한 문재인 강한 대한민국'을 썼습니다. 6월에는 특전사 동기들과 함께 전투복과 공수장비를 직접 착용하면서 '강한 대한민국'을 강조했지요. 그러다가 P.I(Presidential Identity)인 '대한민국 남자'를 발표했는데 낡은 국가주의와 마초와 같은 성격이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면서 폐기와 함께 슬로건이 '사람이 먼저다'로 바뀌게 됐습니다. 슬로건을 자꾸 바꾸는 것은 절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됐다는 판단이 서면 즉각 바꿔야 합니다.

문재인 후보 진영만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국민대통합 → 박근혜가 바꾸네 →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거쳐 '준비된 여성 대통령'에 안착하게 됩니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은 아주 간결하고 명확했으며 심지어 이슈파이팅의 조건에도 일정부분 부합하는 슬로건이었습니다. 슬로건 자체가 이슈파이팅이 되는 특이한 6케이스였습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생식기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지요. 황 교수는 2012년 10월 31일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서 그 유명한 '생식기 발언'을 했습니다. 발언 경위를 따져보니, 민주통합당 김진애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 여성인 저는 왜 모욕당한 느낌이 드는 겁니까?'에 대한 답을 하면서 촉발이 된 것입니다. 그분이 한 말 그대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그 애들을 키우는 것을 보고 우리는 '여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결혼을 했나, 애를 낳았나. 생식기의 문제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 우린 박 후보보고 공주라고 하는 것이고 그분은 여왕으로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데 왜 뜬금없이 여성이 나오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하기가 사실 어렵다."

어쩌면 황상민 교수의 이 발언이 의도하지 않게 박근혜 후보를 도와준 꼴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의돼 있습니다. 아래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대중의 관심사 - 대한민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사실 세계의 관심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2. 찬반의 존재 - 박근혜 후보에게는 겉모습만 여성이지 사실은 독재자인 아버지 '박정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대단히 권위주의적이고 과거 회귀적인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었습니다(전여옥 전 의원의 발언을 참조해 보십시오). 하지만 젊은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3. 선거에 영향 - 여성이냐 아니냐의 논란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슬로건 자체가 이미 '이슈 파이팅'의 요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새누리당의 캠페인 전략팀이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고 카피를 쓴 것이라면 저는 매우 뛰어난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싶네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젠다와 슬로건은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슈로 만들어서 이슈 파이팅을 해야 하는 것이죠. 어젠다의 핵심을 잘 형상화(이미지화) 시켜서 슬로건으로 만들고 이를 이슈와 연결시켜 이슈 파이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자면 어젠다나 슬로건으로 이슈파이팅을 하게 되면 실패합니다. 어젠다 세팅을 한 후 이슈와 이슈파이팅 그리고 슬로건을 선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는 있으나 핵심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젠다를 잘 풀어서 제대로 된 이슈를 만들어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이 정석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슈파이팅에 알맞는 슬로건이 따라 붙어야 하는 것이죠.

선거 캠페인팀에 유명 광고회사의 카피를 잘 만드는 사람이 슬로건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원칙을 잘 살펴야 합니다. 멋진 단어나 감성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슬로건을 만든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강조하겠습니다.

요즘의 첨예한 이슈, '사초실종'... 잘 구성된 이슈 파이팅

검찰 관계자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마치고 수사과정이 요약된 표를 벽면에 설치하고 있다.
▲ 수사과정 설명요약표 설치하는 검찰 관계자 검찰 관계자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마치고 수사과정이 요약된 표를 벽면에 설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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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검찰은 '사초실종 프레임'이 의도하는 대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폭발력이 큰 문재인 의원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발표했지요.

이 상황을 보면서 큰 틀에서 '사초실종 프레임'은 대단히 잘 구성된 이슈파이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원래 이 '사초실종'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인데 언론에서 하도 많이 언급하다보니 일반인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 것이지요.

뭔가를 삭제하는 행위는 뒤가 구리거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나 하는 겁니다. 언뜻 초본은 삭제하고 수정본만 남긴다고 하니, 초본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니까 삭제하고 수정본에는 그런 내용이 없이 '바꿨다'로 이해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메모가, 정확하게는 수정 공문이 발견됐지요.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삭제했다'고 하고 반대편 사람의 말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과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일까요? 참고로 문화평론가이자 시사평론가인 김성수씨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가 논술선생을 내가 6년을 했고 언어영역을 가르치면서 대학에 수많은 애들을 보냈는데요, 그런 사람이 보기에도 이것은 삭제 지시가 아닙니다. 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내용을 두고 과연 삭제 지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삭제지시를 했다, 그리고는 찜찜하니까 말을 못할 자료가 있다 등으로 이야기하고 있단 말이죠. 이렇게 가져가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이 프레임을 지속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먹히니까요!"

여러분이 읽어보시고 직접 판단하시죠.

노무현 전 대통령 대화록 수정 지시 공문
수고 많았습니다.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NLL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도 추후 다루는 것을 동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임기 내에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룰 때 지혜롭게 다루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밖의 문제는 다 공개된 대로입니다만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등은 동석한 사람들이고 이미 가지고 있겠지요? 아니라면 역시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한 내용들을 대화록 그대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니까요.

제공할 사람의 범위, 대화록 전체를 줄 것인지 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줄 것인지, 보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보실이 책임을 지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녹취록은 누가 책임지고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다듬고, 녹취록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랍니다.

62페이지 '자위력으로'는 '자의적으로'의 오기입니다. 63페이지 상단, '남측의 지도자께서도'라는 표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그밖에도 정확하지 않거나 모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없고 이 부분만큼 중요하지 않아서 이 부분만 지적해 둡니다.

이 작업에는 수석, 실장 모두 꼼꼼하게 검증과정을 거쳐주시기 바랍니다.

071020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지시 메모와는 상관없이 사초실종 프레임은 매우 잘 구성된 이슈 파이팅입니다. 역시 또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대중의 관심사 - 누가 뭐래도 대중의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등장할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이를 계속 '중계보도'할 것입니다.
2. 찬반논란의 존재 - 새누리당은 검찰의 주장과 같이 지속적으로 '초본'이 삭제된 초유의 '사초삭제' 사건이며 이는 당연히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공세를 벌이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회의록 유출 문제와 함께 사력을 다해서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첨예한 찬반논란은 지속될 것입니다.
3. 선거에 영향 - 내일 당장 선거가 있다면 이 사초논란은 영향을 미칠까요? 미치지 않을까요? 선거는 보통 미래지향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이슈는 내일 당장 선거가 있다면 이 논란은 선거에 영향을 지극히 많이 미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선거 시기에 이슈는 그것이 개발 이슈든, 제도를 바꾸는 것이든, 첨예한 정치 이슈이든 ▲ 대중의 관심사가 커야 하며 ▲ 찬반이 존재해 치열하게 논쟁이 이뤄져야 하고 ▲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이 '사초실종 프레임'은 대단히 훌륭한 이슈 파이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뱀발] 지난 대선시기 아쉬웠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슬로건과 관련해 정말 아쉬웠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유세에서 유세 슬로건으로 외쳤던 구호인데 바로 이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기회는~" 하고 외치면 유세에 모인 인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하고 외치면 "공정할 것입니다" 외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나중에 유세와 캠페인의 원칙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이 구호는 어젠다 세팅을 슬로건으로 이어서 사용한 사례입니다.

기회가 평등한 사회,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만 아니라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의 염원이자 나가야 할 방향입니다. 즉, 어젠다라는 것이죠. 이것을 슬로건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굳이 만든다면 바꿔야 했습니다. 50대, 중졸, 여성의 시각으로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는 캠페인의 원칙에도 위반될 뿐 아니라 유세 슬로건으로서도 대단히 길고 어렵습니다.

이것은 서브 슬로건으로 멋진 카피이고 잘 생각해보면 매우 감동스럽기까지 한 슬로건이지만, 선거유세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참여했다면 이 슬로건은 공보물이나 영상물에만 사용하고 유세에서는 '사람이 먼저다'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뭐, 사실 지난 대선에는 양 후보 모두 제대로 된 이슈파이팅을 펼치지는 못했으니까 이 이야긴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지요.

덧붙이는 글 | 이슈와 이슈파이팅에 대해서 서술을 하면서 어젠다 세팅 그리고 슬로건을 이야기 하다보니 길어졌네요.
다음 연재는 말씀드렸던 대로 이슈가 확산되는 이슈화의 조건, 그리고 이슈의 셈법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태그:#이슈파이팅, #아젠다, #슬로건, #사초실종, #하토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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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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