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진한 차장검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검찰 "노 전 대통령 지시, 고의로 회의록 삭제" 이진한 차장검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조명균과 백종천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한 검찰의 결론과는 별개로, 이번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 수사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번 사건의 시초였던 'NLL 포기 발언 논란'의 종식이다. 최초 문제를 제기했던 정문헌 의원을 비롯해, 대선 유세장에서 열변을 토하며 거의 그대로 읽었던 김무성 의원, 음원 파일 공개까지 주장했던 서상기 의원 등 새누리당 인사들은 틀렸다. 검찰이 소위 '봉하 이지원(e지원)'에서 복구한 삭제됐던 회의록 어디에도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로 주장한다면, 똑같은 논리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그 옛날 선들 다 포기한다"는 발언은 '북측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포기'로 해석해야 한다. 논란이 됐던 '해결→치유' 발언도 국정원이 음원파일을 다시 청취해 바로잡은 것이었고, "저"→"나" 등의 호칭 수정도 지극히 사소하고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관련기사 : "NLL 해결" → "NLL 치유" 국정원이 고쳤다)

정문헌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첫 의혹을 제기한 때가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10월 8일이었으니,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1년 1개월 걸렸다. 그 기간 우리 사회는 소모적 논쟁을 벌여야 했으며, 무엇보다 정상간 대화록의 비상식적 완전 공개라는 외교적 이정표를 세움으로써 국격이 추락했다.

두 번째는 삭제됐던 회의록의 성격을 검찰에서 주장했던 '또 하나의 회의록'이 아니라, 참여정부 측에서 주장했던 '완성본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초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확인이다. 검찰이 초본 전문을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발표에 따르더라도 "일부 호칭·명칭·말투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담의 본질적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삭제됐던 회의록은 98쪽이고, 나중에 완성된 회의록은 103쪽이다. 약 5쪽 분량만큼 더 보강된 것이다.

15일 결과 발표에서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김광수 공안2부장은 두 회의록의 차이에 대해 "정확한 개수를 말할 수는 없지만, 호칭을 바꾸고 내용을 수정·보완한 곳이 100여 군데 된다, 화자(말하는 사람)를 수정한 곳도 세 군데 정도 된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중요하고 민감한 회의록에서 발언한 사람이 바뀐 곳이 세 군데나 된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결국 삭제됐던 것을 초본으로 보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다.

물론 검찰은 인정하지 않는다. 검찰은 수사결과발표에서 "모두 완성된 형태의 회의록이고 내용면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이 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삭제됐던 회의록을 초본이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화자가 세 곳이나 틀린 자료와 그것을 바로잡고 보완한 자료 중 어떤 것이 사료적 가치가 있는지는 자명하다.

검찰도 자신들의 논리에 자신이 없는지 발표문에 "가사(가령), 초본이라고 하더라도"라며 "초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되고도 파기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럼에도 검찰은 참여정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의 백종천 전 실장과 조명균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핵심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정상회담 회의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것이다(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죄 및 공용전자기록등손상죄 혐의). 검찰의 설명으로는 기소된 두 사람은 실행자일 뿐 모든 상황을 지시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은 왜? 검찰은 이 부분에서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은폐 의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의 냄새를 피우고 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돌아가신 대통령 마음을 알 순 없지만, 단정적으로 함부로 이야기하기 그렇지만"이라면서도 "보도자료를 보면 보안성 강화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기는 보안성이다, 보안성은 공개 여부를 말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2급 비밀로 지정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1급 비밀로 지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차장은 회의록 완성본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은 것도 참여정부 측에서 설명하듯 '실수'가 아니라 "보안성 때문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본 증거는 크게 두 가지다. 조 전 비서관의 1월달 검찰 조사시 진술과 2008년 2월 14일 오후 5시 55분경 "동 '회의록'의 보안성을 감안, 안보실장과 상의하여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는 삭제하고, 대통령님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 메모보고로 올립니다"는 보고 내용이다.

하지만 검찰의 논리는 아슬아슬하다. 검찰은 "조명균은 회의록 파일을 삭제하고 회의록 문건을 파쇄한 행위에 대해 모두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한다"라고 밝혔지만, 조 전 비서관 측은 이미 과거 진술이 잘못됐다고 번복했다.

또 이지원 문서관리카드에서 삭제했다는 조 전 비서관의 메모보고도 삭제된 회의록을 초본으로 본다면, 최종본 완성 후 초본을 삭제하는 것은 크게 비상식적이지 않다. "대통령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도 조 전 비서관은 "이미 회의록 최종본은 필요한 분들에게 보고된 상황에서 메모보고의 성격상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정 반대의 근거... 아슬아슬한 검찰의 논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남북 관계와 관련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남북 관계와 관련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은 의도를 추측할 뿐이다. 검찰은 위에서 밝힌 근거로 은폐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찾아낸 증거 중에는 정 반대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도 존재한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1일 회의록 초본에 대해 재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첨부한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 파일을 보면, 그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확한 작성과 충분한 활용을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62페이지 '자위력으로'는 '자의적으로'의 오기입니다, 63페이지 상단, '남측의 지도자께서도'라는 포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꼼꼼하게 수정을 지시했다. 또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등을 언급하며 "필요한 내용들은 대화록 그대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니까요"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대통령 지지 메모 전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에서 '완성본'까지).

주목할 점은 노 전 대통령이 이 초본을 단순한 "녹취록"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녹취록은 누가 책임지고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다듬고, 녹취록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랍니다."

약 6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회의록 초본이니, 완성본이니, 또 하나의 회의록이니, 싸우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초본을 가리켜 단순히 녹음을 푼 "녹취록"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문서의 파일명도 위에서 밝혔듯이 '녹취록'이다. 또 그것을 잘 수정·보완하여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회담 당사자였던 노 전 대통령에게 회의록 초본은 '회의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국정원본 존재의 의미

또 한 가지 노 대통령이 은폐 의도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강력한 증거는 2008년 1월 3일자로 생산된 일명 '국정원본'의 존재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해 1월 2일 국정원에 회의록 완성본을 문서 형태로 전달했고, 국정원은 그것을 근거로 '국정원 회의록'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지난달 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증언을 했다. 이 내용은 당시 보도에서는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국정원에 회의록을 보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노 대통령이 왜 국정원에 회의록을 남겼냐면,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1차 회담(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 대화록을 보자고 하니 국정원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번에 국정원이 공개했던 대화록과 표지 등 형식이 똑 같았어요. 딱 그 모양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다 볼 때까지 국정원 직원이 기다린 뒤에 바로 가져갔습니다. 다른 사람 아무도 못보게 하고. 그래서 대통령이 '국정원이 대화록을 저렇게 철저히 관리하는구나, 저렇게 해야 한다' 했어요.

또 10․4 정상회담은 국정원장이 방북해서 성사시킨 것입니다. 대통령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어요. 남북관계가 공식적인 루트로 되어야지 비선라인으로 하면 안 된다 해서. 앞으로도 국정원이 계속 그 업무를 맡아야 하고, 후속 조치를 위해서도 알아야 하니까 남기라고 해서 국정원에 보낸 겁니다. 기록으로서는 당연히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후임과 국정원 등의) 원활한 활용을 위해 국정원에 넘긴 거죠."

이 증언에 따르면, 이전 정상회담 회의록을 자신이 봤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 넘기면 후임 대통령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다. 또 자신이 겪어봤기 때문에, 국정원을 믿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그렇게 철저하게 회의록을 관리하던 국정원은 그를 배신했다.

어쨌든 검찰은 기소했고, 법정 공방은 불가피하게 됐다. 피고인은 백종천과 조명균이지만, 검찰이 기소한 것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도다.




태그:#회의록,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NLL
댓글5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