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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작성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0일 "누가 책임지고 한 자, 한자 정확하게 다듬고, 녹취록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회의록)으로 정리해 이지원에 올려두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다"며 "필요한 내용을 대화록 그대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니까"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언급에서 왜 그가 회의록 작성에 그토록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회의록 초본 생산에서 노 대통령의 지시까지

그해 10월 5일 국정원은 당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의 백종천 실장과 조명균 비서관에게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푼 문서를 전산망을 통해 전송했다. 이날은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의 바로 다음날이었다.

다음날인 6일 조 비서관이 일부 내용을 수정했고, 사흘 후인 9일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지원)에 "본 자료는 1급 비밀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는 의견을 첨부해 파일을 올렸다. 총 98페이지 분량으로, 현재 삭제를 문제 삼아 검찰이 기소한 바로 그 회의록이다.

노 대통령이 이 파일을 열어본 날은 그로부터 열흘 후인 19일이었다. 그리고 전 노 대통령은 이틀 후인 21일 문서관리카드의 '처리의견'란에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적은 후 열람·시행·재검토·보류·중단 등 5가지 문서처리 방법 중 '열람'을 클릭했다. 이 때 노 대통령은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라는 이름의 별도 파일을 첨부했는데, 거기에 직접 이렇게 적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NLL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도 추후 다루는 것을 동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임기 내에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룰 때 지혜롭게 다루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밖의 문제는 다 공개된 대로입니다만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등은 동석한 사람들이고 이미 가지고 있겠지요? 아니라면 역시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한 내용들을 대화록 그대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니까요.

제공할 사람의 범위, 대화록 전체를 줄 것인지 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줄 것인지, 보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보실이 책임을 지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녹취록을 누가 책임지고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다듬고, 녹취록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랍니다.

62페이지 '자위력으로'는 '자의적으로'의 오기입니다. 63페이지 상단, '남측의 지도자께서도'라는 표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그밖에도 정확하지 않거나 모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없고 이 부분만큼 중요하지 않아서 이 부분만 지적해 둡니다.

이 작업에는 수석, 실장 모두 꼼꼼하게 검증과정을 그쳐(거쳐의 오기로 보임 - 기자 주)주시기 바랍니다.

071020
대통령"


98페이지 문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린 것이다.

국정원수정 → 조명균수정 거쳐 완성...'저자세 회담'근거들 국정원 수정한 것

이진한 차장검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마치고 수사과정이 요약된 표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차장검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마치고 수사과정이 요약된 표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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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조 비서관은 이틀 후인 22일 회의록 파일을 전산망을 통해 다시 국정원에 전송하면서 수정·보완을 의뢰했다. 그리고 국정원으로부터 다시 회신이 온 날이 이틀 후인 24일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시기 고쳐진 부분이 ▲ "저", "제가", "저희가" → "나", "내가", "우리가" 등 호칭 ▲ 회담의 격에 맞지 않는 말투 등이다. 김정일 국장위원장을 지칭하는 "위원장님"에서 "님"자가 삭제된 것도 이때다. 즉,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저자세 회담'의 증거로 주장했던 수정 내용이 사실 수정 주체가 국정원이었던 것이다.

회신을 받은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약 한달 넘게 녹음 파일이 아닌 자신의 메모를 기초로 상세 수정작업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7년 12월 하순~2008년 1월 초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이 완성됐고, 2008년 2월 14일 '메모보고'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초본보다 5페이지가 늘어난 총 103페이지짜리였다. 메모보고는 이랬다.

"안보실에서는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을 1차 보고시 대통령님께서 지시하신 바에 따라 국정원과 협조하여 전체적으로 꼼꼼히 점검, 수정했습니다. 동 '회의록'의 보안성을 감안, 안보실장과 상의하여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는 삭제하고, 대통령님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 메모보고로 올립니다."

한편 조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008년 1월 2일 국정원에 완성된 회의록 사본을 종이 문서로 넘겼다. '1급 비밀' 상태였다. 검찰에 따르면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에서도 최종 회의록을 1급 비밀로 만들라'고 지시했고, 청와대로부터 받은 사본의 변경 내용을 참고해 국정원판 회의록을 생산했다. 결재일은 다음날인 1월 3일이었다.

이것이 지난 6월 남재준 국정원장에 의해 일반문서로 재분류돼 세상에 공개된 회의록이다.


태그:#회의록, #남북정상회담, #NLL, #노무현, #조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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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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