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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정감사가 마무리 되었다. 정치적으로 워낙 커다란 현안이 있어서인지, 다른 중요한 현안들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그 중 하나가 기업들 R&D자금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집행에 대한 문제이다. 해마다 국감 때면 R&D 자금의 투명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일 의원(새누리당)이 정부의 모든 부처와 청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국가 R&D 연구비 부정사용 현황'에 따르면, 유용·횡령된 연구비는 2010년 약 277억원(137건), 2011년 약 140억원(101건), 2012년 약 123억원(85건)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국토교통위원회가 28일 실시한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국토교통 R&D 자금'의 부당사용 문제가 집중적으로 불거졌다.

안효대 의원(새누리당)은 진흥원 외부 회계감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국토교통 R&D'의 참여기관ㆍ업체 총 115곳이 연구비 19억2744만원을 부당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진흥원이 스스로 연구기관들에 유예기간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업무태만"이라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해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뉴스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점은 기업들 자신의 태도이다. 물론 대다수 성실한 기업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상당수 기업이 R&D자금을 눈먼 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연구개발은 나중 문제고 일단 R&D 자금을 배정받고 보자는 행태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 이유는 뭘까? 기업이 사용하는 R&D 자금 집행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미 폐업된 공급사의 허위계산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과다계상, 중고품을 신품으로 속이는 행위 등, 감독 기관이 일일이 검수하기 힘든 사각지대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R&D 자금을 집행 관리하는, 중기청 산하의 한국기술정보진흥원( 이하 기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R&D 자금을 사용하고 제출한 영수증을 분석한 결과, 이미 폐업된 거래처 영수증이나, 또는 R&D 자금 집행이라고 볼 수 없는 성격 즉 밥집, 숙박업소 또는 유흥주점 영수증빙이 상당수 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업의 각종 운영 잡비 영수증도 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도 이 문제와 관련해, 해마다 감사를 통해 부정 사용된 자금을 환수하고, 사업주를 고발하는 등 고강도 처방에 나서고 있다. 감사원은 기술 개발 연구결과를 허위로 보고하고 지원금을 횡령하는 등 연구비를 부당집행한 업체 13곳을 적발하고, 업체 대표 등 10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또 사업비 80억여원을 환수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개발비를 받은 업체들은 기술개발에 실패했는데도 성공했다고 허위로 보고해 연구비를 받아내는가 하면, 해당 연구비를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A사는 2008년 6월∼2012년 5월 부품소재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하며 스테인리스강 등 개발과제와 무관한 재료를 구입했으면서도, 연구용 니켈 등을 구입한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21억6700만원을 받아냈다.

게다가 A사 대표는 연구 성과를 허위로 보고했고, 다른 연구 참여업체 대표의 배우자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해당 페이퍼컴퍼니로부터 3억9000만원 상당의 연구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B사도 알루미늄 제작 관련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개발 성과를 허위로 보고했고, 세금계산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재료와 장비 구입비 5억2900만원을 받아냈다. C사 역시 신규 소재 개발 사업을 수행하며 같은 방식으로 5억6900만원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해마다 지적되어도 개선될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결국 기술개발자금을 배정받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원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감사원은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R&D과를 신설하여, 본격적으로 투명성 확보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기정원이 시도하고 있는 혁신적인 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정원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불투명한 R&D 자금의 집행을 제도적으로 막고,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온라인구매지원시스템(www.r2b.or.kr)을 구축 가동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R&D 자금을 받은 기업은 현금대신, 포인트를 부여받는다.
② 기업들이 자신들의 연구 개발을 위해 필요로 하는 각종 부품 등 기자재를 온라인구매지원 사이트를 통해 주문을 하면,
③ 거기에 등록된 공급사들이 견적을 내고, ④그 견적 가운데 구매자가 원하는 스펙과 가격이 맞으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⑤ 기정원은 발주한 금액만큼의 구매포인트를 차감하고, 대신 공급사에게 대금을 지불한다.
⑥ 이 때 국세청과 사이트가 연동이 되어서 전자세금계산서가 자동으로 발급된다.

이 구조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허위 거래나 세금 포탈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공급사들을 등록할 때, 국세청 전산망을 통해, 폐업된 사업장 또는 숙박이나 음식업소 등을 걸러낼 수 있고, 세금계산서도 자동으로 발행하기 때문이다.

둘째, 검증된 공급자들이 제출한 증빙서류를 통해, 구매 공급자간에 중고품을 신품으로 가장하거나, 세금 계산서만 주고 받는 허위 거래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비용의 절감이다. 다수의 공급자가 구매자의 견적에 대응하기 때문에, 그간 소수가 독점해온 특정 부품이나 기자재 공급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정원은 이 사이트를 오픈하면서, 투명한 집행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흡한 상태라고 한다. 동 사이트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직도 R&D 자금을 받은 기업들이 기존의 주문관행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화 한통이면 기자재가 공급되는데 왜 복잡하게 온라인상에서 거래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또하나 동사이트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은, 이 사이트에서의 구매가 의무화되지 않은 점이다. 현재는 3천만 원 이상의 기자재만 동사이트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법적인 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에 3천만 원 이상의 기자재가 필요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즉 현재의 의무 구매 금액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중기청이 모든 구매를, 동사이트를 통해서만 하도록 법적인 강제성을 부여하면, 투명성 확보가 간단한 일이겠지만, 아직은 기업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완전 의무화가 쉽지 않다고 한다. 기정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구매금액을 1백만 원으로 낮추는 문제를 중기청과 협의하고 있는 중이다.

중기청이 기정원을 통해 집행하는 R&D 자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6년 2,679억원, 2008년 4,300억원, 2010년 5,607억원 2011년 6,288억원에서 올 2013년에는 9,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구 개발비 지원금 가운데, 48.7%를 재료 및 연구기자재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정원이 이 제도를 도입한 중요한 이유는, 현행의 사후 검증제도인 '기술개발 포인트'제도로는 사업비의 목적 외 사용이나, 허위 구입, 단가 과다 계상, 중고 부품 구입 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사이트가 활성화 된다면, 거의 50%에 이르는 자재 구입에서의 투명성이 단숨에 확보되는 것이다.

현대산업은 사실상 기술전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IT 산업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도 속빈 강정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은 원천기술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핵심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함으로써, 매출액이 늘어도 그에 비례해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함으로, 이익은 늘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지난 10년간의 한국 IT 산업의 자화상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에 대한 기술개발 자금의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하나 기술개발 지원자금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간의 불균형문제다. 대기업에 쏠린 산업구조,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외형상 발전을 이루는 듯한 착시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용의 90%를 담당하고, 부품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의 허약성은 고용 및 내수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R&D 자금 지원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제도이다.

독일경제가 강한 것은 강한 중소기업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경제가 전반적인 불황에 고전하면서도 독일경제만이 잘 나가는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나오는 논거다. 자동차 한 대 만들기 위해서는 수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부품 경쟁력 없이 완성차 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국가가 기업에게 연구기술 개발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연구개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피땀 어린 국민세금을 올바로 사용하는 행위 일뿐 아니라, 기업 자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그리고 국가경제의 강화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기정원의 온라인구매지원 시스템은, 부패한 관행에 대한 의미있는 도전이자, 시스템을 통해 제도적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태그:#중기청, #연구개발비 횡령, #R&D자금,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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