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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끝났다. 잘 본 학생이든, 잘 보지 못한 학생이든, 홀가분하고 후련한 마음만은 분명할 것이다. 잔혹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1단계를 무사히 완주해낸 것만으로도, 우리의 아이들은 축하받고 격려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수능 전날 후배들의 배웅 장면을 직접 촬영
 수능 전날 후배들의 배웅 장면을 직접 촬영
ⓒ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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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기점으로 하여 수험생들의 마음가짐은 확연히 달라진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은 수능 전까지는 불안해하면서 놀다가, 수능이 끝나면 마음 편하게 논다. 대부분의 보통 아이들은 수능 전까지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수능 이후에는 자존감을 잃어간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수능 전까지는 딴 생각을 안 하다가, 수능이 끝나면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지금껏 경험한 적이 없는 판타스틱한 생활이 펼쳐지게 된다. 학교에 있는 시간도 거의 없을 테지만, 그 시간에 들어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은 아예 없을 것이다. 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끝도 없이 놀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지지만,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무거운 마음에 제대로 놀지를 못한다. 수능 전에는 수능이 끝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노라며 패기 넘치는 포부를 세우지만, 막상 그 시기가 오면 그렇게 노는 학생은 몇 없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어쩌겠는가. 목표 대학에 한 번 더 도전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고, 이제부터는 진짜로 내가 원하는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면 과거 따위야 훌훌 털어버리면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떻게 살아왔든, 지난 시간들은 오롯이 자양분으로 남아있을 테고, 만약 그중에서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는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수학능력이란...

수능시험을 통해 측정하고자 하는 것이 '수학능력'이라지만, 사실 수학능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두드러지게 잘하는 사람이 드물고, 잘하는 부분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지금 당장은 표가 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일 뿐이다. 12년의 세월 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수도 없이 많지만, 쓰고 외우고 시험 보는 과정을 통해 키운 수학능력은 수많은 수학능력 중 하나인 지적 능력(그것도 대부분이 독해력과 암기력인)에 불과하다.

21세기를 살아갈 인재들에게 필요한 자질로 '창의성', '적극성', '협력', '배려', '열린 자세', '긍정적인 사고' 등을 말한다. 실제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저런 덕목들이 백분위 등급 표준점수보다 수백배 수천배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저런 자질들은 어떤 과목 어떤 시험문제로도 측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떤 조직이든 일단은 공부 잘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누군가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적어도 '명석함'과 '성실함' 중 하나는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석하고 성실한 사람 중에서도 학업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은 많고, 명석함과 성실함만 가지고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기에 성적, 학벌, 스펙과 같은 것들은 수험생들이 다음 단계의 시작을 하려 할 때 좀 더 빨리 출발선을 떠날 수 있도록 도울 뿐, 그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나의 길을 걸을 것

그러니 제발 수능 성적표 따위 때문에 고개 숙이지 말고, 좌절하지도 말라. 이제부터 해야할 것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미쳐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또 좌절하지 말라. 수능은 마라톤이었지만 인생은 철인 3종경기다. 몇 배로 길고 몇십 배로 어려운 장기레이스다.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아직 모른다면 천천히 찾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접하는 것이 많을수록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

쉬워보이는 길, 편할 것 같은 길, 남들이 좋다는 길에 눈돌리지 말라. 그 길이 지금은 좋은 길임이 분명하나 그 길이 언제까지 좋은 길로 남아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법관과 의사가 직업군의 정점에 머물러 있지만, 200년 전 율관과 의관은 중인의 신분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학력고사 수석은 법대와 의대가 아닌 불문과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몇 년 전까지마 해도 인문계열 입시의 절대강자였던 법대 또한 어느샌가 학부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제1원칙은 나의 적성과 흥미다.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라면 난관에 부딪혀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지만 유행 따라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선택한 길이라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자신만의 욕망을 욕망할 것

수험생들의 부모님 세대는 배고픈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성인이 된 이후 밥벌이의 문제로 지금 세대만큼 고민하지는 않았다. 10년 전 세대는 잘 되는 분야, 잘 팔리는 직종이 있었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모으고 챙기다보면 시간이 걸리고 힘도 들었지만 길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 세대는 능력이 있고 조건이 좋아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앞두고 있다. 유명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와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더욱더 내 적성, 내 흥미, 내 스타일대로 마이웨이를 걷을 필요가 있다.

나의 명예, 나의 재산, 나의 친구. 앞으로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다. 살아가다보면 지켜야할 것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할 결정들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듣되, 최종결정은 자기가 내려야 한다. 어른들 말씀 들어 나쁠 건 없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어른들의 말씀대로만 행동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학생들은 20년 가까이 착한 아들 착한 딸 노릇하며 허튼 짓 안 하고 열심히 공부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기성세대의 기대에 맞춰드렸으니 이제부터는 기성세대의 기대를 조금씩 거부해보기를 권한다. 그런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스스로 자라는 것이다.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어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부터는 자신만의 욕망을 욕망할 시간이다.

꿈을 가질 것

꿈을 가질 것을 권한다. 어떤 직업을 가져서 얼마만큼 돈을 벌어야겠다는 그런 것 말고. 그래서 토익공부 하고 어학연수 가고 스펙을 쌓겠다는 그런 것 말고. 그건 꿈이 아니라 목표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목표다. 개미 무리의 병정개미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면, 꿈도 달라야 한다. 꿈이라는 것은, 정말 대책없어 보일 만큼 낭만적인 그런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이 오면 좋겠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차별과 부조리가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아주 조금 움직일 수도 있는, 그런 초대형의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젊은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젊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수천억원 수조원을 가진 부자들도 부러운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자신의 삶을 살 것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 문장만큼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태그:#수능시험, #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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