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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멘델 칼 폴라니 연구소장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인 기업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거릿 멘델 칼 폴라니 연구소장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인 기업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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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보다 신뢰와 협동에 바탕을 둔 '사회적 경제'가 시장 중심 경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8개 도시 대표들과 100여개 단체들이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2013)'에 모여든 이유다. 이들은 7일 '서울 선언문'을 통해 글로벌 협의체를 만들어 사회적 경제 확산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개막일 기조연설에서 사회적 경제 연대 포문을 열었던 마거릿 멘델 칼 폴라니 연구소장을 서울 선언 직후 만났다.

"사회적 기업 전세계에서 유행... 박 시장 만난 한국은 운 좋아"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온 멘델 소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하는 '서울 실험'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시장이 사회적 경제 포럼을 지원한다는 게 세계적으로 특이한 경우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경험과 헌신, 애착 있는 분이 실질적인 행사를 진행했다는 게 의미가 있다. 내가 한국을 방문한 2009년은 사회적기업(육성)법이 통과(2007년 시행)된 직후였는데 이후 사회적 기업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당시 몬트리올 서커스 극단과 비슷한 '노리단'이 인상적이었는데 프랑스에서도 식품산업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나타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이 버블처럼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박 시장이 인도주의적인 시각과 실용적인 시각도 갖고 있고 민간분야와 공공분야, 사회적 기업 관계에 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가운데)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사회적경제포럼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가운데)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사회적경제포럼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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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단'은 2004년 서울시 청소년직업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으로, 각종 폐품을 활용한 문화 예술 공연으로 관심을 끌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사회적경제 '모범도시'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에 이어 지난해 캐나다 퀘벡 현지를 취재했다. 당시 세계 최대 서커스 공연 기업인 '태양의 서커스'가 사회적 기업에서 출발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관련기사: 1억명 열광 '태양의 서커스'가 성공한 비결).

다만 멘델 소장은 '태양의 서커스'에 대해 다른 관점을 밝혔다.

"태양의 서커스는 처음에는 비영리단체로 시작했지만 점차 민간영리기업으로 바뀌었다. 물론 매우 혁신적이고 훌륭한 서커스 공연을 하는 퀘벡의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했지만 이제 사회적 기업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태양의 서커스'에 분리된 'TOHU'라는 서커스 극장이 비영리 단체이고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는 구성원들의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효율성뿐 아니라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제다. 사회적 경제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신용조합이나 마이크로금융, 비영리단체들로 구성되는데 멘델 소장은 사회적 기업 가운데서도 '비영리'를 강조한 것이다.

멘델 소장은 몬트리올 콩고디아대학에 적을 둔 경제학자이면서 캐나다 퀘벡 사회적경제협회인 '상티에' 등에서 직접 활동하고 있다. 퀘벡 인구는 790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협동조합이 3000개가 넘고 조합원 880만 명이 넘는다. 2000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도 6만 명이 넘는다. 사회적 경제가 퀘벡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 내외로 알려졌다.

캐나다에서도 유독 퀘벡에서 사회적 경제가 발달한 건 유일한 프랑스계 자치주로서 독립성이 강한 데다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같은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과연 노동조합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한국 문화에서 사회적 경제가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노동운동 자체가 사회적 경제를 도운 건 아니다. 사회적 경제 자체가 공동체 전반에 걸친 경험을 통해 뿌리를 잘 내린 결과다. 노동 운동의 지지나 협업이 중요하긴 했지만 점차 환경 운동이나 여성 운동 같은 다른 진보적인 운동도 힘을 실어줬다. 이런 단체들은 사회 평등, 사회 정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자리 보호 같은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협업이 잘 이뤄졌다.

물론 퀘벡 노동자의 40% 정도가 노조원일 정도로 노동 운동이 강하다. 사회적 동원 역사도 탄탄해 여러 연합체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합의를 이뤄냈다. 문화적인 요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합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공동 목표를 지녔기 때문에 진보주의적 운동이나 시민운동과 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퀘벡 상황은 굉장히 다르고 퀘벡 역시 캐나다 다른 주들과 상황이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시장 경제 대체할 순 없지만 시장 실패로 영향력 커져"

박원순 서울시장,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 등 국제사회적경제포럼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 등 국제사회적경제포럼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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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 소장은 첫날 기조연설에서 UN이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고 권고안을 내는 등 올해가 뜻 깊은 한해라고 강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경제'에 전세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사회적 경제'가 기존 시장 중심 경제를 단순히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한 대체도 가능할까. 이에 멘델 소장은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우리는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가치가 주도하는 시장 주도형 경제 모델에 변화를 주는 게 우리 목표다. 시장에서 사회나 환경에 목표를 둔 주체들이 활성화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사회에 압력을 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 분명한 예가 2008년 금융위기다. 전통 주류쪽 사람들조차 지금 금융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 있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사회적 경제도 단순히 주변 소수에 머물기보다는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민간 주체와 정부간 대화를 유도하고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 경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시장 주체들에게 긍정적인 압력을 넣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사회적 경제가 하나의 서비스 제공자일 뿐 아니라 포용적인 경제 개발을 위해 좀 더 주체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경제가 국제적 관심을 끄는 사이 국내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창조경제'의 모호성이 입방아에 올랐다. 사회적 경제 역시 쉽지 않은 개념이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각종 먹을거리를 직거래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이나 '노리단', '에듀머니' 같은 비영리 목적의 사회적 기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창조경제가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기업도 포용해야"

박근혜 정부 역시 창조경제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과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관점에서 '창조경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멘델 소장도 잠시 당황하는 듯 했지만 퀘벡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도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퀘벡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여러 분야를 망라한다. 웹디자인, 커뮤니티 기술, 홈케어, 재활용, 식량 안보도 포함한다. 내가 알기로 창조경제는 기술 역량에 중점을 두는 걸로 본다. 물론 한국이 IT 강국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사회적 경제는 젊은 청년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스마트하고 쿨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한다거나 협동해서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되 정부 주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는 여러 분야에서 존재한다. TV나 방송도 있고 노숙자 잡지도 포함된다. 창조경제가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기업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멘델 소장이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44년 <거대한 전환>을 통해 당시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든 칼 폴라니와 무관하지 않다. 멘델 소장이 몸담고 있는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는 현재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내에 칼 폴라니 유산을 관리하면서 2년마다 국제 컨퍼런스도 열고 있다. 사회적 경제와 함께 주류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다만 멘델 소장은 시장 경제를 비판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경제학자이면서 활동가인 자신처럼 직접 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사회적 경제'를 만들라는 얘기였다.

"오늘날 사람들이 폴라니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데 많은 사람들이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만 한다. 하지만 비판만이 아니라 어떻게 시민들이 스스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역량을 구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저 비판만 하는 것은 쉽지만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은 쉽지않다. 어떤 경제가 가능할까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경제의 모습을 디자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것이 포용적인 경제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태그:#사회적 경제, #마거릿 멘델, #박원순, #퀘벡, #칼 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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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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