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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단체 세 곳과 개인 14명을 상대로 청구했던 억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윤종구 부장판사)는 31일 "판례와 증거법칙에 따른 증명이 부족하므로, 원고(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또 소송 제기 이후 5년만에 나온 판결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규모 손해배상을 통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촛불집회를 주도하면서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용인·방조해 인적·물적 손실을 입혔다면서 광우병대책위·한국진보연대·참여연대 및 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 17개 개인·단체를 대상으로 5억1700여만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지난 2008년 제기했다. 이 재판은 야간 집회 및 시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문제와 결부돼 심리가 오래 걸렸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형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전부 또는 일부 위반한 집회·시위를 주최했다는 사실 외에 각 집회·시위에 참여한 수만 명의 사람·구체적인 상해·손괴 행위를 한 사람과 피고인들의 관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어야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참가자들이 피고인들의 지휘를 받는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일부 상해·피해의 경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우나, 누군가를 특정하고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을 구분하기는 용이하지 아니하다"며 "집회·시위 참가자의 구성, 참가 경위, 구체적 행위를 한 사람의 행위 동기, 피고들과의 관계에 관한 증거는 수집되지 아니하거나 그 증거가 극히 미미하다"고 밝혔다. 또 "피고들이 집회·시위를 주최하고 진행하기 위해 사전에 쇠파이프·각목·돌 등을 준비하고 이를 참가자에게 교부하고 참가자가 가지고 갈 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아니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재판부는 지난 5년 동안 증거를 더 수집했음에도 추가 수집된 것이 없었다며 "원고 주장 상해·피해·손실 모두가 이 사건 집회·시위 과정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공동변호인단에 참여했던 박주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는 "이번 판결은 대규모집회의 특성을 잘 이해한, 그리고 집회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의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그는 "집회 참가자 중 일부의 행위로 인해 벌어진 일을 모두 가감없이 집회 주최자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대규모 집회를 하지 말라는 의미와 같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제대로된 입증방법도 갖추지 않고 집회 주최자들에게 대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촛불집회,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집회,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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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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