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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이 출범한 지 100여 일이 조금 넘었다. 모든 사람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실제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간접고용한 사람들이었고, 그마저도 위장도급 논란이 일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삼성의 노조파괴 문서가 폭로되기도 했다. 이즈음 우리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맨 얼굴'을 보고 싶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돌아보고자 한다. - 기자말

좋은 가을날을 뒤로하고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5시간여 넘게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을 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불러냈다. 바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아래 삼성서비스지회) 박성주 부지회장이다.

지난 7월 14일 설립된 삼성서비스지회는 10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노동자들은 월급제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출장을 나가서 수리한 수수료를 받는데, 가을이면 일감이 줄어 근 100만 원 안팎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예년 같으면 일을 더 해도 모자랄 시간에 일이 아닌 '투쟁'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는 어쩌다 노동조합에 동참한 것일까? 노동조합활동이 처음일 텐데 힘든 점은 없을지 궁금했다.

환하게 웃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박성주 부지회장
 환하게 웃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박성주 부지회장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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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지회는 수석부지회장을 제외하고 권역별로 6명의 부지회장이 있는데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사실 학교 다닐 때 빼고는 간부라든가 직책 같은 걸 맡아 본적은 없어요. 아! 노동조합활동하기 전에 '셀장(일반 회사의 조장과 비슷한 개념)'을 맡았던 적은 있어요."

이렇게 노동조합을 처음 하면서 감투를 쓴 박성주 부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중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담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만 같이 했지 자세하게 몰랐던 사람도 알게 된 점은 노동조합활동을 하면서 얻은 값진 수확인 듯 보였다.

"처음에는 단지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만났어요. 그런데 그 목표를 맞춰가기 위해 서로 알아가다 보니까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합 활동하면서 덤으로 인간관계까지 얻는 것 같아서 아주 좋습니다."

이쯤에서 센터에만 갇혀 지내던 그가 노동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하니 그가 언제, 왜 삼성전자서비스에 들어왔는지 궁금해졌다.

"2005년도에 입사했어요. 제가 직장운이 좀 좋아요. 전에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학원에서 CAD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다가 군대 갔다 와서 공사장 일을 했는데, 마침 현장에 건축기사가 공석이 된 거예요. 그랬더니 그쪽에서 '자네 학생이었나? 뭐 전공했냐'고 물어서, 기계 관련된 공부했다고 했더니, CAD할 줄 아냐고 물어서, 안다고 했죠. 그랬더니 건축기사 하라는 거예요."

안정적인 일 찾으러 삼성에 갔더니...

지난 7월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출범식 당시 모습.
 지난 7월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출범식 당시 모습.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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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였다. 건설현장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일이 힘들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역시 잘 안 맞았단다. 건설현장은 직설적이고 거칠어서 맞지 않고, 소음이나 먼지도 많아서 힘들었단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도, 출퇴근 시간 지키고, 안전장비를 갖추고 일하고, 일하다 다치면 산업재해로 처리해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는 이 중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사실 산업재해나 노동시간문제·작업 환경에서 가장 최악의 조건을 가진 곳이 건설산업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이보다도 못하다는 것은 노동자를 가족이 아닌 기계로 보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

"오죽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크레용팝이라는 가수를 보고 '노래하는 가수도 헬멧 쓰는데 우리는 안전 장비 하나 없냐'고 말하겠어요?"

건설현장이 맞지 않아서 삼성전자서비스로 옮긴 것인데,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 역시 자신이 삼성에 직접 채용된 줄 알았다.

"건설일은 잘 맞지 않고, 결혼을 생각하면서 안정적인 일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삼성전자서비스 공고를 봤어요. 면접을 보고 붙어서 6개월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삼성전자서비스라고만 생각했어요. 의심을할 수 없었던 게, 삼성전자서비스 면접을 보고, 교육을 받았고, 삼성전자서비스아카데미에서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교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수료할 때쯤 되니까 각 센터가 있고, 각 센터 사장이 있다는 거예요. '어? 무슨 소리야? 웬 사장이 이렇게 많나?' 했죠. 하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이죠.

그렇지만 자신감도 있었어요. 가서 잘할 자신도 있었거든요. 한 센터에서 10%는 제법 돈을 받아간다고 하니까 10% 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무실에 첫 출근하자마자 실망했어요. 사무실인지, 자재창고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건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시작된 그의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첫 월급날부터 사장이 말을 바꿨다고 한다. 월급을 차이 나게 준 것은 물론이고, 기름 값을 대주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나서 월급명세서를 찢어버리고 그만두자며 친구를 데리고 나와 버렸단다.

신입사원치고는 대단한 배짱이다.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을 할 운명이었나 보다. 이렇게 신입사원 시절의 '반란'으로 센터에서 박성주 지회장은 무시 못할 존재가 됐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생활. 사장은 오히려 박성주 부지회장에게 셀장과 같은 관리자 직책을 맡기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박성주 지회장은 왜 노동조합활동에 동참하게 됐을까.

"직원과의 약속을 어긴 게 너무 싫었어요. 분명히 나한테 얘기해 놓고,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 분노가 컸던 거죠. 삼성전자서비스는 실적 관리를 굉장히 많이 해요. 잘한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데 그 돈을 회사가 아니라 실적이 안 좋은 사람 월급에서 떼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해결하려고 한국노총과 면담도 하고 그랬어요. 그 당시에는 한국노총이 뭔지, 민주노총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두세 차례 면담했는데 삼성전자 감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때 '삼성 정말 무섭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6·25에 시작해 8·15에 끝나는 삼성서비스 노동자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고층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고층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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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박 부지회장은 협력업체 사장과 계속 싸워서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참지 않고 문제제기를 해서일까. 상대적으로 짧은 경력에도, 동료들의 추천을 통해서 셀장이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더 당차게 점심시간 확보나, 갑자기 내려오는 대책회의 같은 부당한 조치들을 개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과도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많은 서비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근무환경을 6·25에시작해서 8·15에끝난다고 말한다. 성수기인 6월 25일부터 8월 15일을 일컫는 비유다. 이 성수기가 끝나고 나면 모든 노동자들은 너무 힘들어 좀비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다닌다고 한다.

지난해 이 기간 동안 박성주 부지회장도 하루밖에 쉬지 못하면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도 했단다. 하지만, 회사는 오로지 실적 이야기만 하면서 일을 못한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그는 노동자를 기계보다 더 못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렇게 삼성전자서비스가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일하도록 해주는 안전장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이번에 이천센터 교섭 가면서 교섭대표로 나온 팀장한테 '혹시 안전장비가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당당하게 한 세트 있다고 하면서 에어컨 처리기사는 18명 있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 18명당 한 세트 안전장구가 있는 셈이에요."

이 정도면 거의 노동자들의 안전은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름철 에어컨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옥상이나 난간 혹은 외벽을 타야 하는 업무 특성상 안전장구가 없는 노동자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허리띠를 잡아달라고 하면서 난간에 그대로 매달리거나 옥상이나 지붕을 안전장비 없이 그대로 타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는 노동자들에게는 넥타이·와이셔츠·구두 착용을 강요한다. 비전문가가 봐도 안전한 작업 복장은 아니다.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얼굴에 비해서, 사람을 위하는 진실한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는 위선의 극치인 셈이다. 노동자를 돈을 버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태도가 오늘의 박성주 부지회장 같은 노동조합 간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노동조합 이전의 삶을 휴대전화보다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동안에는 정말 우리끼리 '휴대전화만도 못하다'라고 이야기했었어요. 휴대전화는 제 할 일 다하면 쉬고, 충전도 해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밥 못 먹고 일해서 배고파도, 일해야 했죠. 기계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한 거죠. 거기에다 성수기가 딱 끝나면, 성수기 때 해왔던 실적을 가지고 징계가 내려져요. 바쁠 때는 사정사정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피로회복제 주면서 일 시키더니, 성수기 딱 끝나면 일주일 동안 일을 못하게 하고. 내치고… 이제는 사람처럼 사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됐어요. '나도 여름이나, 일요일에 쉬니까, 뭔가 하고 노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요."

살인적인 노동시간... "결국 과로사"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의 조끼에 적힌 '서비스는 역시 삼성입니다'는 문구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의 조끼에 적힌 '서비스는 역시 삼성입니다'는 문구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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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고작 100여 일. 최근에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한 명이 과로사했다. 노동자들은 지난 9월 27일 숨진, 고 임현우 조합원과 비슷한 삶을 강요받아 왔기 때문에 남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저는 100% 과로사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출근해서 집에 들어가서 저녁 먹을 때까지 밥 한끼를 못 먹는 경우도 있어요. 물밖에 못 먹고…. 그런 생활을 한두 달 가까이 하면 마지막에는 저도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죠. 머리가 핑 돌고 휘청거린 적도 몇 번 있었어요. 또 (고 임현우 조합원이) 저랑 똑같이 자취를 했더라고요. 뻔하게 그려져요. 물 한 잔 먹고 출근,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고객집에서 시원한 물 한 잔, 주스 한 잔 정도는 마실 거예요. 점심시간 따로 없고, 저녁시간 따로 없어요. 집에 가면 오후 11시, 뭘 해먹고 싶어도 먹을 힘이 없어요. 물이 끓는 5분 동안 잠이 들어서 불이 날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이런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종이라는 특수성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를 이중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수리가 안 되는 사항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줘도 별의 별 꼬투리를 다 잡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설명하는데 욕을 하기 시작하더니 내가 인사하고 나올 때까지 욕하다가 차를 타고 출발하는데…, 손잡이를 잡는 그때까지 욕을 하는 고객도 있었어요."

이런 경우야 그렇다 치고 도둑으로 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하니, 고객들의 억지 불만마저도 노동자들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업무인 셈이다.

"우리 집에 금반지가 없어졌다거나, 월세 줄 돈 60만 원이 없어 졌다거나, 열쇠가 없어졌는데 가져간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억지 부리는 고객들이 있어요. 그러면 회사는 무조건 '니가 해결해'라며 도움을 안 주죠."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최소한 노예 인생은 끊어보자며, 힘을 합치고 있고, 선배들은 후배들이 우리 만큼은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들에게 삼성이라는 원청업체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박성주 부지회장에게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는데, 오냐오냐 해주니 규칙을 안 지키는 버릇없는 아이'에 비유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고, 모든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아이. 그러다 보니 이 녀석이 모든 아이들을 업신여기며, 학교 규율도 무시하고 선생님말도 거역하면서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는 게 삼성이 아닐까 싶어요.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바로잡아야죠.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하면 할수록 사명감을 느껴요. 처음 위영일 지회장을 만났을 때는 오로지 삼성전자서비스만 생각했는데, 이제 LG전자·대우전자 등 전자업계전체 비정규직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잘 싸워야 그들의 길을 터주는 거겠구나'라는 사명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동조합이 주장할 권리를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로까지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자세는 현재 노동조합에 가장 많이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이런 박성주 지회장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력에 우리 사회 전체가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진짜 사장임을 숨기는 대기업의 횡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엄연한 삼성 노동자를 삼성이 인정하는 그 날까지 '젊은 초보노동조합 간부'의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이때, 신생 노조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닐 것이다. 그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버티는 스스로를 응원해 달라는 요청에 그는 "박성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라"고 답했다.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의 삶과 노동을 사랑할 수 있는 당당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게 아닐까. 자신뿐아니라 이 땅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박성주 부지회장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은 오늘도 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 #박성주, #삼성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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