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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1754~1822) '북악산' 북악산 매봉 삼각산(북한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58쪽
▲ 김득신 '북악산' 김득신(1754~1822) '북악산' 북악산 매봉 삼각산(북한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58쪽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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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북악산이 그 북악산이네."

서울 종로소방서에서 종로구청 어린이집을 지나 대림산업빌딩 옆을 지나는데 멀리 보이는 산과 그 주위 풍경이 조선 시대 화원 김득신이 그린 '북악산' 그림과 흡사해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마침 들고 있던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 도록 '간송문화 85호' 58쪽을 펼치니 얼추 비슷하다. 북악산에서 더 오른쪽으로 가면 뒤로 보이는 북한산의 모습이 그림과 더 비슷할 것 같다.

큰 건물과 가로등으로 북악산이 가려 보이지만 김득신의 '북악산'과 얼추 비슷하다.
▲ 종로 소방서에서 본 북악산 큰 건물과 가로등으로 북악산이 가려 보이지만 김득신의 '북악산'과 얼추 비슷하다.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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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는 긍재 김득신보다 아홉 살 연상이고, 김홍도와 함께 진경시대 풍속화에서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긍재 김득신(1754~1822)은 18세기에서 19세기를 살았는데, 그가 보았던 북악산 모습이 현재 21세기의 북악산 모습과 별다른 바가 없으니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실제 경치를 그린 사실주의 회화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2013년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는 모든 그림이 좋았지만, 특히 김득신의 그림이 자꾸 기억난다. 집에 있을 때나 외출할 때도 손에서 도록을 놓지 않고 읽었던 것은 김득신 그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본 북악산. 도화서 터가 조계사와 을지로 입구 쪽이니 김득신이 도화원으로 출퇴근 할 때 본 풍경이 아니었을까?
▲ 북악산 광화문 광장에서 본 북악산. 도화서 터가 조계사와 을지로 입구 쪽이니 김득신이 도화원으로 출퇴근 할 때 본 풍경이 아니었을까?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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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꽃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울을 벗어나서 살아갈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서울이 고향인 남편은 서울을 무척 사랑하고, 서울의 골목들과 미술관, 박물관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귀담아듣고 싶어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에서 일가를 이뤄 살아가고 있으니 '서울사랑'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주로 다니며 생활하는 곳은 강북 지역. 예술의 전당을 갈 때 말고는 주로 강북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산에 자주 간다.

종로는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자주 다니는 지역이다. 광화문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미술관, 조계사 근방, 북촌, 안국역을 중심으로 한 근방, 낙원악기 상가를 중심으로 하는 근방, 인사동, 남산, 북한산 근처,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주로 그런 곳을 다니다 보면 역사 속에 나오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표지석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조계사 옆에 있는 우정총국 앞에는 '도화서터'라는 작은 표지석이 있다. 도화서터 표지석은 이곳 말고도 을지로 입구에 또 하나 있다고 한다. 을지로 입구 자주 지나가면서도 몰랐는데 다음에 지나가면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김석신(1758~?) '담담정' 그림. 정조대와 순조대 활동 화원화가. 마포와 용산 일대의 풍경. 출처:간송문화85호 66쪽
▲ 김석신 '담담정' 김석신(1758~?) '담담정' 그림. 정조대와 순조대 활동 화원화가. 마포와 용산 일대의 풍경. 출처:간송문화85호 66쪽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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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이 서울을 더 사랑하게 만들 줄 몰랐다. 간송미술관에서 연 진경시대 전시그림을 볼 때마다 등장하는 서울의 어느 장소들. 눈에 익는다. '여기가 그림 속의 어디 쯤이구나!'하고 알아볼 수가 있다. 역사 속 이야기와 만나게 되면 더 흥미진진해 진다.

우연한 기회에 눈을 들어 멀리 보이는 북악산의 산세를 보고 흥분할 정도로 즐거웠던 것은, 그 그림이 내 앞에 진짜로 살아 있는 풍경으로 나타나서다. 더구나 그림이 마음에 들어 전시장을 벗어나서도 몇 번이나 도록을 보고 읽고 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북한산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삼 년. (그냥 가 본 것은 이십대 초반부터지만) 북악산 뒤로 보이는 북한산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서 더욱 그랬다.

"이번 가을 전시는 조선시대 도화원 공무원들의 그림들로만 구성해 놓았네. 보러 가자."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 앞 1111, 2112, 성북3번 버스 타고 가기. 한성대 역 벽에 붙은 친절한 안내문
▲ 간송미술관 가는 길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 앞 1111, 2112, 성북3번 버스 타고 가기. 한성대 역 벽에 붙은 친절한 안내문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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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인 봄 가을 간송미술관 전시회에 가는 일. 과로로 피곤한 남편을 보니 혹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일요일 아침에 서두르지 않았다. 삼 개월째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미술관에 가자고 한다. 유일한 휴식이라나.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간 후 마을버스 1111번을 타고 가는데, 벌써 줄이 삼전로까지 서 있다.

마을버스 운전사는 "간송미술관 가는 사람은 성북초등학교(간송미술관)역에서 내리지 말고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줄 서는 게 좋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기다림.
▲ 간송미술관 입장 기다리는 길 기다림.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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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로 횡단보도 옆에 줄을 서니 아침 10시 30분이다. 그 곳에서 줄을 서면 입장까지 언제나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10시부터 문을 열지만, 기다리기 싫을 때면 언제나 8시 좀 넘어서 미리 줄을 서기도 하였는데... 그날은 오후 1시 39분에 입장하였다.

기다릴 줄 알고 갔기에 간단하게 읽을만한 리처드 세넷의 <장인>을 준비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은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주변 풍경을 그려나갔다. 세 시간 기다리는 동안 초등학생들의 소란스러움은 있었지만, 대부분 조용히 기다림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책을 읽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때때로 남편 얼굴을 보니 일에 시달린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좀 더 일찍 서둘러 나올 것을 공연히 미안해졌다.

전시는 1층과 2층에 준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천천히 그림 앞에 머물러 감상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80여 점을 모두 관람하는데 2층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해서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준비한 그림들이 그리 어렵지 않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감탄이 나는지라 세 시간 기다린 것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사람들을 관찰할 때 그들의 관계를 전혀 몰라도 부자지간인지 모자지간인지, 아니면 같은 혈족인지를 생김새와 목소리 걸음걸이만 보고도 알아볼 수 있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것처럼 그림을 보다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림들이 있다. 작가를 살펴보면 이름도 비슷하다. 나중에 보니 부자지간이기도 하고 형제지간이기도 하고 같은 성씨의 혈연관계인 사이기도 했다.

신한평(1754~1824) '자모육아' 영조와 정조 어진을 그린 화원. 신윤복의 아버지. 정조 20년(1796) 녹취재 시험에서 '이광사호석:장군이 돌을 보고 호랑이가 나타난 줄 알고 놀라서 활을 쏘아 돌을 꿰뚫었다는 고사' 시험에서 신한평의 그림을 각신들이 9명중 차석으로 평가했으나 정조가 다시 그려내라고 낙제점수로 고쳐내렸다 하니, 정조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내용과 그림 출처:간송문화85호 23쪽,102~103쪽
▲ 신한평 '자모육아' 신한평(1754~1824) '자모육아' 영조와 정조 어진을 그린 화원. 신윤복의 아버지. 정조 20년(1796) 녹취재 시험에서 '이광사호석:장군이 돌을 보고 호랑이가 나타난 줄 알고 놀라서 활을 쏘아 돌을 꿰뚫었다는 고사' 시험에서 신한평의 그림을 각신들이 9명중 차석으로 평가했으나 정조가 다시 그려내라고 낙제점수로 고쳐내렸다 하니, 정조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내용과 그림 출처:간송문화85호 23쪽,102~103쪽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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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1758~?) '쌍륙삼매'. 신한평의 아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놀이 서역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인물표정의 묘사가 탁월하다. 내용과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78쪽,152쪽
▲ 신윤복 '쌍륙삼매' 신윤복(1758~?) '쌍륙삼매'. 신한평의 아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놀이 서역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인물표정의 묘사가 탁월하다. 내용과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78쪽,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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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평의 '자모육아'는 신윤복의 그림 풍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신윤복의 아버지며 화원이었다. 신한평에게는 두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그림 속 어머니 옆에 서 있는 사내아이가 신윤복일 것이라고 한다. 사대부 화가들이 그리기 시작한 '풍속화'가 점차 화원화가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김득신(1754~1822)의 그림은 여러 점 나오는데, 맑고 투명한 수채화 같은 그림들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도 다양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극적이지 않은 그림이라고나 할까? 단원을 계승하여 인물과 풍속에 능하였다고 한다. 김득신의 그림을 보다가 '담담정'이라는 그림을 보니 분위기가 비슷한데 작가가 다르다. 김석신(1758~?)인데 형제지간이다. 겸재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라 산수(山水)를 잘 그렸다고 한다.

'호리건종'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들은 둥글둥글하고 표정들은 온화하게 웃고 있는데, 김득신의 그림 속 인물들 표정과 비슷하게 보였다. 알고보니 그 그림을 그린 김건종은 김득신의 장자였다. 김득신의 큰아버지 김응환, 아버지 김응리, 김득신의 세 아들 김건종, 김수종, 김하종 모두 화원출신들이니 가문의 내력이 대단하다. 자라온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그림들이 외모를 보는 것처럼 닮아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

김후신(1753~?) '통음대쾌' 영조대 화원화가 김희겸(1710~1763)의 아들. 수염도 나지 않은 양반이 술에 크게 취해 기분 좋아보이는 광경. 금주령을 피해 몰래 술을 마시다 생긴 소동을 묘사한 그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그림을 보자 마자 인물의 표정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나왔다. 정말 탁월한 묘사를 하여 볼 수록 재미있다. 내용과 그림 출처:간송문화85호 22쪽, 123쪽
▲ 김후신 '통음대쾌' 김후신(1753~?) '통음대쾌' 영조대 화원화가 김희겸(1710~1763)의 아들. 수염도 나지 않은 양반이 술에 크게 취해 기분 좋아보이는 광경. 금주령을 피해 몰래 술을 마시다 생긴 소동을 묘사한 그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그림을 보자 마자 인물의 표정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나왔다. 정말 탁월한 묘사를 하여 볼 수록 재미있다. 내용과 그림 출처:간송문화85호 22쪽, 123쪽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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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벽(1730~?)은 영조년간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생동안 어진을 비롯한 100여점의 초상화를 그려 국수(國手)로 일컬어졌다.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별명이 '변고양이' '변닭'이었다. 고양이는 노인을 상징하고 국화는 은일을 대표한다고 한다. 내용과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21쪽 122쪽
▲ 변상벽 '국정추묘' 변상벽(1730~?)은 영조년간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생동안 어진을 비롯한 100여점의 초상화를 그려 국수(國手)로 일컬어졌다.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별명이 '변고양이' '변닭'이었다. 고양이는 노인을 상징하고 국화는 은일을 대표한다고 한다. 내용과 그림출처:간송문화85호 21쪽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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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에도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김희겸의 '연호대란' 김후신의 '통음대쾌' 이의양, 이인문, 정홍래, 진재해 등의 그림들은 이 사람들 직업이 전문화가인 '화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문을 여는데 선잠로 입구 횡단보도 정도에서는 세 시간 기다리고, 성북파출소 앞에서는 1시간 반 정도 기다린다고 보면 된다. 이번 가을전시회는 내일 모레까지 한다. 다녀온 후 북악산을 보면 이제 김득신이 함께 생각날 것이다.


태그:#2013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 #진경시대화원전, #간송미술관, #김득신 북악산, #도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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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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