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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

지난 8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아 민주당이 내놓은 논평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는 좋은 것이고 통치는 나쁜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기 쉽다. 과연 그럴까? 통치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민주적 통치이고 다른 하나는 비민주적 통치다. 민주적 통치란 정치가 통치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비민주적 통치란 1인 혹은 소수의 특정 계급이 통치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통치는 거의 모두 이러한 비민주적 통치였지만, 근대 이후에도 비민주적 통치는 적지 않았다. 파시즘·나치즘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한 인민민주주의도 여기에 속하며 이 경우에는 주로 전위정당의 지배가 이루어진다. 정당은 원래 대중의 의사를 수렴,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데 반해, 전위정당은 대중의 의사를 자기가 미리 헤아리고 규정하면서 앞장서 이들을 이끌고 가는 정당을 말한다. 공산당은 바로 대표적인 전위정당이다.

비민주적 통치라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는 왕조였던 만큼 비민주적 통치기였지만, 세종대왕의 치세는 역대 가장 훌륭한 통치로 꼽히고 있다. 심지어 세종대왕을 성군으로까지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현대사회에 와서는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비민주적 통치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문제는 현대의 민주적 통치에서도 점점 정치가 약화되거나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관료적 지배 혹은 관료적 통치가 나타나고 결국 행정국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수한 관료체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여의도 정치'를 혐오한다고 한 바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민생과 외교에만 몰두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 우수한 관료체제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 행정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민주국가에서 정치가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리도 25년 전까지 경험한 바 있는 권위주의, 개발독재 혹은 발전국가를 들 수 있다. 당시 우리는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삼고 효과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면서 기술관료 중심의 행정 위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심지어 정치 자체를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억압하였다. 개발독재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복잡한 국내외 문제를 원활히 통제하려는 차원에서 국가의 기능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를 폄하, 약화시킬 위험성이 커진다.

특히 행정기관이 더 효율적이고 과학적이 되면 될수록 모든 것이 철저히 국가 관료기구에 속박되어 심지어 관료들 자신들도 나중에는 조직과 기율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일찍이 J.S.밀이나 토크빌이 이를 우려한 바 있고, 또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이를 실감 나게 묘사한 바 있다. 또, 나치즘·파시즘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민주주의 사회 자체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 명제 현실화

우리의 경우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권위주의 정치체제 하에서는 정치를 대신하여 '행정'이 국가를 이끌어갔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는 명제가 현실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대통령이 통치를 주도하였지만, 권력의 하수인 또는 실질적 권력 담당자로서 기술 관료와 더불어 정보부(후일 안기부, 국정원)와 보안사 같은 국가보위 기구들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죽하면 민주화운동 세력이 국가를 거대한 억압기구라고 규정하기까지 하였겠는가? 당시 정당은 심하게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꾸미기 위한 간판에 지나지 않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야당은 존립할 수 있었지만, 정치 자체가 통치의 주변부에 머물러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여당은 국민에게서 '거수기'라고 무시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유신당시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열렸을 때 식전행사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쨍하고 해뜰 날'이라는 곡이 연주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곡이 선택된 데에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노래였고 여기에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가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공화당이 오죽했으면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다리는' 식의 신세 한탄했겠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나돌기도 하였다. 정치가 질식되어 있던 유신 당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통치의 중심에 서는 정치적 지배가 실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있으며, 정치 논리가 통치의 핵심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외견상으로는 정치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이끌어가고 있지만, 사실은 정치의 실력 부족, 능력부족으로 오히려 관료에 끌려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국정감사 한창 진행 중이지만, 해마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언론으로부터 항상 '겉핥기식 국감'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예산 심의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해 국회의원 중 정부가 제출하는 방대한 예산서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호통을 쳐 행정부를 대단히 견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박근헤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헤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우리 정치권은 스스로를 정치세력으로만 인식할 뿐 통치자로서의 의식 자체가 매우 약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는 대단히 관심이 크고 예민하지만 '통치'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별다른 의식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확한 직분과 역할을 잘 모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은 통치기관을 3권으로 분립시켰다. 정치를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국가를 통치하라는 국민의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 즉 통치는 뒷전인 채 오로지 정치 그것도 당리당략만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권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정치과잉'이 통치를 약화시켰다는 관점에서 정치를 죄악시하면서 행정적인 통치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의도 정치'를 과도하게 폄하, 매도하면서 이와는 거리를 두려는 통치권 다시 말해 대통령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성장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주의나 신자유주의 또는 국가적 관점만을 중시하는 국가주의적 성향이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전자는 이명박 대통령,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조건 대통령을 추종하는 여당 의원들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오히려 권력자의 통치수단으로 전락한 자기 모습에 만족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측은한 심경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통치', 오늘날 한국 정치의 숨김없는 자화상

이렇게 한편에서는 정치논리에 빠져서 통치를 소홀히 하는 현상, 한편으로는 이와는 반대로 '정치과잉'의 부작용을 비난하면서 통치만을 중시하는 현상, 이러한 두 개의 상반된 현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숨김없는 자화상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결국 '정치적 통치'다.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가 최고의 통치원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윤여준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자신은 여의도 정치를 혐오하기 때문에 정치와 거리를 두고 민생만 살핀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문제는 정치를 무시하고는 민생을 살릴 수도 없거니와, 그 자체가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 놓고 볼 때, 좋은 통치만 하면 되지 그 과정과 방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시대에는 정치가 좋은 통치의 출발점이요 핵심이라는 점을 모르거나 망각하면 결과적으로 민주정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치가 통치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 또 좋은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러한 참다운 민주정치를 하루 속히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태그:#윤여준, #민주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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