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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골삼천踝骨三穿'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 황상의 글 속에 나오는 말로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는 말이다.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독서와 저술에 힘쓰다 보니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뚫렸다는 말이다. 이 말에서 다산이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고 저술에 힘썼는지를 알 수 있다.

다산은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9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그 슬픔의 빈자리를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매일 책을 읽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자 외가 윤선도의 집에서 책을 빌려다 읽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린 다산은 외가 집에 가서 책을 빌려 황소 등에 가득 실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뒷날 우의정과 판서를 역임했던 조선의 대학자 이서구가 젊은 시절 그곳을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3일후 한성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다산을 만났다. 물론 그때에도 여전히 황소 등에 책을 잔뜩 실은 채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서구는 어린 다산의 이 모습을 보고 말을 건넸다.

"전에도 황소 등에 책을 실고 가는 너를 보았는데, 오늘도 이렇게 많은 책들을 실고 가는 걸 보니, 너는 책은 읽지 않고 실고만 다니는 게냐?"
"소인은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어서 외갓집에서 책을 빌려다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빌려온 책을 모두 읽어서 돌려주러 가는 참입니다요. 못 믿으시겠다면 제가 읽은 책을 보시고 물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황소 등에 실린 책들은 유교경전 뿐만이 아니라 제자백가서 등 어려운 책이 많았다. 이서구는 그 책들의 내용을 물었고 척척 대답하는 어린 다산에게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 박상하의 <위인들의 어린 시절 공부법>에서 발췌하여 재구성

경기도 남양주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널리 배우고 옛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란 학자에게 바치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다. 박학호고(博學好古:널리 배우고 옛것을 좋아함)했던 공재 윤두서는 다산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공재의 집안에는 고산 윤선도 이후 책이 많이 보관 되어 있었다. 그 책들은 대개 경제 실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세상을 다스려 나라를 구제할 실학관계 서적이란 뜻이니, 실학자 다산은 이때부터 실학을 집대성하고 많은 저서를 남길 큰 인물로 예견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다산은 15세에 결혼한 뒤 서울 생활을 시작한 후로 많은 신진학자들과 접촉하고 새로운 서울의 문물을 접했다. 그의 연보인 <사암연보>의 16세 조항에 "처음으로 성호선생의 문집을 보았다"라고 기록하고는, "항상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나의 큰 꿈은 대부분 성호를 따르며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배우거나 따름)하던 중의 깨달음이었다'라고 말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부터 성호 이익의 글에 매료되어 평생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큰 뜻을 품고 열심히 책을 읽고 학문에 정진했던 다산.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500여권이나 됐던 수많은 명저들을 남겼던 다산에게도 그만의 독서법이 있었다.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

안계환의 <다산의 독서전략>에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은 '정독精讀'과 '질서疾書'와 '초서抄書'다.

정독이란 글을 아주 꼼꼼하고 세세하게 읽는 것을 말한다. 한 장을 읽더라도 깊이 생각하면서 내용을 정밀하게 따져서 읽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철저하게 근본을 밝혀내는 독서법이다. '글에 집중하고 한 가지 사실을 공부할 때는 관련된 다양한 다른 책들을 함께 읽어 균형된 시각을 갖되, 그 중 대표되는 책을 여러 번 깊이 읽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한다'고 다산은 말한다.

이러한 다산의 독서법은 자신의 자식이었던 정학유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어도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읽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읽다가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관련된 다른 책들을 뒤적여 반드시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하느니라. 또한 그 뜻을 알게 되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어 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거라."

질서란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적어가며 읽는 것을 말한다. 즉 메모하며 책을 읽는 방법이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때면 메모지를 갖추어 두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재빨리 적어야 한다. 질서는 독서를 할 때 중요한 질문과 기록을 강조하고, 학문의 바탕을 세우고 주견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독서법이다. 다산은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쉴 새 없이 붓을 들어 메모하고 또 시를 지었다. 특히 경전 공부를 할 때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얻게 되면 그 순간 놓치지 않고 메모하고 기록했다고 한다.

초서란 책을 읽다가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이를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 글에서 초서의 방법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독서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한번 쭉 읽고 버려둔다면 나중에 다시 필요한 부분을 찾을 때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모름지기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일이 있거든 가려서 뽑아서 따로 정리해 두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것을 초서(抄書)라고 하는 것이다. 허나 책에서 나한테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는 일이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먼저 마음속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한 내용인지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곧 나의 학문에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하는 것이란다. 그래야 마음속의 기준에 따라 책에서 얻을 것과 버릴 것을 정하는 데 곤란을 겪지 않을 것이야. 이런 학문의 중요한 방법에 대해서는 앞서 누누이 말했는데 너희가 필시 잊어버린 게로구나. 책 한 권을 얻었다면 네 학문에 보탬이 되는 것만을 뽑아서 모아둘 것이며 그렇지 않는 것은 하나 같이 눈에 두지 말아야 한단다. 이렇게 하면 100권의 책도 열흘간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초서는 이처럼 주제를 정하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며 이를 조직함으로써 자신만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다산은 초서를 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목적이 분명해야 텍스트에 대한 경중을 구별 할 수 있고 취사선택도 쉬워진다. 베껴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산은 초서를 할 때 주제정하기 - 목차정하기 - 뽑아서 적기 - 엮어서 연결하기의 4단계를 거쳤는데, 거기에 경험을 버무리면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태그:#교육,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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