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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5년 4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기업이 2류라면 행정은 3류고, 정치는 4류다."

당시 취임한 지 2년이 조금 지났던 김영삼 대통령이 이 말을 전해 듣고 결코 유쾌했을 리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감정을 직접 드러낸 적은 없었다. 여야 정치인들도 이에 대해 직접 항변한 사람은 없었다. 결국, 우리 정치인들은 스스로 4류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 삼성은 전자부문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얼마나 변했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4류이거나 아니면 더 후퇴하여 5류로 전락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정치는 왜 늘 이 모양인가?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학자의 수만큼 이론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국민이 자유롭고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이런 정치 본연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심하게 말해 정반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걸림돌... 왜? 

현 정치는 국리민복(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아울러 이르는 말)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파당적 기득권을 지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최근만 해도 NLL 대화록을 놓고 몇 달째 싸우고 있어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점잖은 정치인들을 까마귀 떼에 비유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왜 백로가 까마귀 노는 데 가려고 하느냐?"라고 말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치와 정치인의 솔직한 초상화 아닌가.

그러면 우리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한 번 살펴보자. 조선왕조 시절 유교 가부장적 질서가 만든 이른바 가산주의(家産主義)로부터 많은 문제가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유교적 질서와 정치 문화는 대가족 중심, 향촌 중심의 지역 공동체에서 긍정적 기능을 했던 점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오늘의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원래 이념과 철학은 완전히 사라진 채 오로지 명망가를 중심으로 뭉친 패거리적 연고정치라는 타락한 정치행태가 지금까지 잔존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가산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이성계가 조선조를 건국한 후 책봉한 개국공신 집안이 세습적으로 정치권력을 갖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훈구세력이 되면서 파당정치의 시초가 되었다. 또 다른 견해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정치의 중요한 단위 혹은 기준으로서 가문이 설정된 데서 기인한다. 결국, 파당적 정치 사회를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의견이다. 어쨌든 조선조가 건국된 1392년 즉 14세기 말에 우리 정치에서 파당적인 기득권 구조가 시작되었다면, 600년 넘는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는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에 피난 가 있던 당시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던 국회의 간선으로는 재선될 가망이 없던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위해 군을 동원하는 등 무리하게 일을 벌였던 것이다.

이러한 파동을 겪는 과정에서 여야당 모두가 소위 '전업 정치인'들을 대거 충원, 정당정치라는 이름하에 보스 중심의 파벌 정치가 등장하였다. 전업정치인들이란 직업적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다른 직업은 가져본 적 없이 사회생활을 정치활동에서 시작하여 정당의 보스가 제공하는 정치자금으로 생계도 유지하고 활동도 하는 등 정치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은 사람을 의미한다.

전업정치인들은 오로지 보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일도 해내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민주화 이전에는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야당의 행사장을 습격, 난장판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당시 대다수 국민들은 그 배후에 여당이나 정부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야당의 전당대회나 선거후보 공천 발표가 있을 때에도 쇠몽둥이나 빈 유리병이 난무하고 심지어 도끼까지 들고 나오는 등 당 내부적으로도 살기등등한 싸움을 벌이는 일이 빈번이 일어났다. 이들 전업 정치인들은 당시 평균적으로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로서 자기 보스를 위해 이런 일을 했던 것이다.

건국 초기 정치인들 중에는 과거 양반들 즉 사대부 계층이 가졌던 통치계층의 일원으로서의 자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대의에 헌신했던 자세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자신의 국정철학을 갖고 정치를 국가발전에 연계시키려 노력했다.

이에 반해 전업 정치인들은 대부분 통치층으로서의 자각과 명예심이나 철학을 갖추기는커녕 민주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적 자세와 품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보스의 명령과 파당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대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공공의 가치를 우선 추구한다는 정치 본연의 모습은 완전히 밀려난 채 오로지 당파적 이익,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기득권 정치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 독재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전업정치인 용인

다만 당시 많은 국민들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이들 전업정치인들을 용인하고 나아가 지지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들은 60년대 이후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민주 투사의 위치로 자리매김 받게 되었고, 결국 한국정치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 역시 기본적으로는 전업 정치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업정치인 범주에 들어가는 분들이 대통령 즉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민주화 이후에는 급진적 이념으로 무장한 386세대가 정치에 등장하였다. 이들은 개혁적 의식은 투철했을지 모르지만, 정치행태에 있어서는 패거리 정치 문화를 답습하였다. 어떻게 보면 독선적 이념의 영향으로 패거리적 정치 문화를 더욱 강화·고착시킨 측면까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이후 한국정치는 전업 정치인들에 의한 통치체제였다. 물론 이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집권한 후에는 국정운영에서 능력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전업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강해진 나머지 2000년대 이후에는 정치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이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면 잘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다른 극단의 생각이 풍미했다. 정치 싸움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있던 사람들의 참신성이 부각되어 국민들이 그러한 국가지도자를 뽑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참신성이 국정운영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패거리 정치 문화를 답습함으로써 실패를 되풀이하였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오후 여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라가 사과탄으로 알려진 최루탄을 의장석에 앉아 있던 정의화 국회부의장 앞에서 터뜨리고 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오후 여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라가 사과탄으로 알려진 최루탄을 의장석에 앉아 있던 정의화 국회부의장 앞에서 터뜨리고 있다.
ⓒ 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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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파당적 이익을 앞세워 민주주의 원칙은 무시한 채 극한 대결만을 되풀이 해온 결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도를 넘어 이제 정치는 혐오와 경멸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하였다. 21세기가 10년도 지난 이 시점에서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사당에서 전기톱이 나오고 최루탄까지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 되었든 국민의 눈에는 모두 지도자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번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도 일부 여당 의원들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던 것이다. 국민들이 그런 정치를 보면서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지금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거 10년간 야당을 하던 시절에도 한국 정치의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권력은 여야 두 거대 정당 사이를 오고 갔지만 정치는 파당적, 정파적 이익만 앞세워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불경기를 맞아 민생을 돌보라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오늘 이 시각에도 우리 정치권이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최근 미국의 연방정부가 셧다운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국가부채한도 증액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립이 계속되면서 미국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60%가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닌 제3당이 꼭 필요하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비슷한 시기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의 합동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이 국회의원 모두를 바꾸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미국은 그동안 우리가 의회민주주의 모델로 간주해온 나라중 하나인데, 미국 국민들의 눈에는 정치권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파당적 싸움만 하는 것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같은 조사를 한다면 아마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대안세력이 필요하다, 제3당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60% 이상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은 많이 식었다고 하지만,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안철수 현상'도 바로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정치개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큰 틀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경제문제를 비롯한 긴급한 국내 현안도 한 둘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위기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심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만들고 이를 증폭시켜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이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결국 남은 길은 하나뿐, 국민의 손으로 직접 바꾸는 것이다. 국민 각자가 민주시민으로서의 냉철한 책임의식, 참여의식을 갖고 주권자의 권능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권을 확실하게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정치를 단계적으로 그러나 혁명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정치 개혁은 선거 때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대의정치 체제에서는 결국 정치권이 대안를 제시하면 유권자인 국민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올바른 세력이 등장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밝은 눈을 갖고 지켜보면서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제 이러한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 의원 같은 경우만 해도 아직까지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국민들이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버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치 개혁은 선거 때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거 이전이라도 국민이 혐오하고 불신하는 기존 정치권에 맞서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는 어떤 제3의 세력이 등장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신뢰와 기대를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라고 판단된다면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정치도, 민주주의도, 지도자도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것을 갖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태그:#정치, #대의정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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