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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세계를 바꾸다>의 표지.
 <설탕, 세계를 바꾸다>의 표지.
ⓒ 검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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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청소년의 하루 평균 당분 섭취량은 69.6g으로 국민 평균(61.4g)보다 13%나 많았으며 이는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음료수를 통한 섭취였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달콤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은 이제 역사 속의 이야기일 뿐, 오늘날에는 흔하게 접하게 되거나 오히려 과하게 섭취하여 당뇨병에 걸리는 일이 잦아졌다.

설탕이 처음 발견된 시기에도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맛보는 것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을까? 설탕이 세계에 퍼지게 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게 된 이야기가 <설탕, 세계를 바꾸다>에 담겨있다.

'하얀 금'이라 불리던 설탕, 세계를 사로잡다

설탕이 발견되기 이전까지의 수천년 역사를 '벌꿀의 시대'라고 본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벌꿀을 채집하는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7000년 경 스페인의 한 바위그림에 나와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유럽에서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했고, 벌들이 전혀 없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단풍나무나 과일에서 얻은 시료를 감미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설탕이 발견되면서 인류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누구나 갈망하던 달콤함을 맛보게 된 인류는 음식에서 또 다른 쾌락을 얻는 일이 가능해졌다. 또한 인류는 설탕의 재배와 관리를 위해서 다양한 대륙을 항해하면서 섬과 대륙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식도 확장시킬 수 있었다. 국가-대륙간의 교역도 활발해졌으며 그것을 계기로 문화와 사상의 교환도 빈번해졌다. 발견 당시 '하얀 금'이라 불리던 설탕이 불러온 역사의 전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오랜시간 동안 설탕의 채취를 위한 농업이 잔혹한 노동에 의해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설탕은 노예제가 확산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한편으로, 그것으로 야기된 지구 규모의 연결은 또한 인간의 자유를 향한 가장 강력한 사상들을 키웠다"고 적었다.

<설탕, 세계를 바꾸다>는 책의 제목에 간결하게 정리된 것처럼, 설탕을 발견한 인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이기도 했지만 또한 설탕의 새하얀 색과는 정반대로 매우 어두운 것이기도 했다.

'노예제'를 확산시킨 직접적인 원인이 설탕?

본문에서는 사탕수수의 기원이 호주 북쪽의 뉴기니 섬이었다고 말한다. 5천년 전 이 섬에 사는 인간들에 의해 처음 경작된 이 작물은 기원 후 1100년경 하와이에 당도하며 아시아 내륙까지 천천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설탕에 관한 최초의 직접적인 기록은 인도이며,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의식들에 공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라고도 덧붙인다.

설탕의 발견으로 유럽의 사람들은 무슬림과 교역하며 정보와 지식을 나누었다. 설탕이라는 당시에는 신비한 물질을 교역으로 얻으면서 동시에 무슬림에게서 사탕수수 재배법과 설탕 정제법 등의 기술을 습득한 것이었다.

문제는 사탕수수는 베어내면 금세 마르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가급적 24시간 안에 끓는 통에 수숫대를 집어넣지 않으면 수확물은 금세 엉망이 되어버린다. 사탕수수는 무겁기에 교역을 위해 배로 운반하려면 작은 설탕으로 만들어야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선 최소 50여명에서 수백명에 이르는 대규모 노동자 무리가 필요했다.

1500년에 최초의 유럽 선박이 브라질에 당도했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페드로 카브랄(Pedro Cabral, 1467~1520)은 고국 포르투갈에 공급할 향신료를 구매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항해하려고 분투하고 있었는데, 해류는 대신에 그를 브라질로 이끌었다.

똑같은 강력한 해류로 인해 대서양을 넘어 브라질로 노예를 쉽게 데려올 수 있었고 이후 400여 년 동안 300만여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브라질로 끌려왔다. 속설에 따르면 "설탕이 없었다면 브라질이 없었을 것이고, 노예가 없었다면 설탕이 없었을 것이고, 앙골라가 없었다면 노예가 없었을 것이다." (본문 46쪽 중에서)

넓은 경작지에 큰 규모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이를 끓여서 설탕으로 추출하는 기구를 공장식으로 설치한다. 또한 사탕수수와 정제된 설탕을 운반하는 일에도 많은 손이 필요했다. 본문에서는 쿠바 인근의 섬에 이러한 설탕 플렌테이션들을 건설하며, 노예로 충원된 사람들 일부는 가까운 아프리카에서 구매했다고 적어놓았다.

설탕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자연스럽게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섬에 건설된 농장의 규모도 매우 커지게 되었고, 더 많은 설탕 제조를 위해서 엄청난 수의 노동자가 필요했다. 농장주들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던 노예들을 더 많이 데려왔다. 결과적으로 1500년부터 1600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노예의 수는 설탕농장의 영향이 매우 컸다. 사실상 설탕이 노예제의 확산을 부추긴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설탕의 달콤함이 낳은 처참한 삶과 해방의 계기

당시 노예로 일하던 (주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삶이 묘사된 부분은 처참할 정도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땀흘리면서 일하고, 잠시 잠을 자는 숙소조차도 습하고 불결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런 생활환경 때문에 그들은 온갖 병에 걸려서 평균 30세 전후로 사망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일하는 동안에도 채찍을 손에 든 감독관들 때문에 늘 가혹행위와 폭력에 시달리곤 했다. '더 빠른 작업'을 강요당하다가 사탕수수를 으깨는 기계에 팔이 끼어서 절단되는 일도 잦았고, 이에 플렌테이션 섬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의 기록에는 "팔이 없는 노동자를 목격하는 일이 흔했다"고 적혀있다. 정작 노동자들의 기록은 그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혹사당하다 일찍 사망했기에 찾아보기 힘들다고도 저자는 말한다(노예의 삶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국회도서관의 문헌자료와 그림·사진에 의존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노예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하는게 도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는 물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서 설탕 플렌테이션에서도 계약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노동시간은 많고 임금은 낮으면서 이동과 행동에 제약을 크게 받는 등 노동조건은 여전히 열악했다.

사탕수수 설탕은 아프리카인 수백만 명을 노예제의 수렁으로 밀어넣는 한편, 노예무역을 폐지시키기 위한 운동을 조장했다. 쿠바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재배는 1800년대 당시 근대 기술을 이용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새로운 소유주들에 의해 도입되어 시작되었다. 이들 농장주들 가운데 일부는 쿠바 노예들을 해방시키는데 앞장섰다. 이제 사탕무 설탕은 농노 수백만 명을 해방시킬 때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러시아 귀족들에게 확산시킬 근대 농업의 본보기를 마련했다. (본문 134쪽 중에서)

사탕수수 설탕 농업의 증가가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는 노예제를 키우는데 일조했지만, 역설적으로 규모가 더 폭증하면서 '노예제 폐지'와 평등의 사상을 퍼뜨리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지배에 있던 인도로 설탕농업을 위한 계약노동이 확대되자, 우리가 익히 들어보았던 이름인 '간디'가 무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설탕이 바꾼 인류의 역사

영국에 설탕이 처음 건너온 지 100년 만인 1700년대가 되어 영국인 1명이 소비하는 설탕의 양은 18파운드가 되어 450%나 증가한다. 바야흐로 영국과 유럽에 설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설탕은 부자들의 식습관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음식이자 필수품이 되었으며, 영국 최하층 노동자들의 기본식단이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설탕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사탕수수의 설탕은 다른 감미료에 의해서 대체되는 중이지만 이 물질은 영원히 남을 궤적을 우리 역사에 남긴 셈이다.

매일 우리는 설탕이 탄생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세계에는 아프리카인들 후예들이 카리브해 지역과 브라질, 미국, 캐나다에 살고 있고 인도인 고용 계약 노동자들의 손자·손녀들이 카리브해 섬들과 아메리카 도시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 안에서 중국인, 필리핀인, 한국인 아이들이 하와이 인구를 구성한다. (본문 144쪽 중에서)

노예제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제 사라진 역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도미니카공화국 같은 지역에서는 혹독한 상황에 놓인 설탕 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세계는 점차 평등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본문의 표현처럼 이는 "아주 쓰디쓴 고통의 대가로 얻은 달콤한 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이 보여준 설탕의 발견과 인류가 겪은 역사는, 달콤함을 원하는 욕망이 자제력을 잃은 부와 만나면서 빚어낸 '노예제'라는 어두운 단면을 비추고 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성적인 사상의 전파로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 과정도 보여준다. 우리의 식탁과 입맛 뿐만 아니라, 설탕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크게 뒤흔들었다. <설탕, 세계를 바꾸다>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로 우리는 역사가 주는 깨달음과 반성을 얻을 수 있다. '달콤함 뒤에는 씁쓸함이 숨어있다'는 교훈도 함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설탕, 세계를 바꾸다>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씀 | 설배환 옮김 | 검은소 | 2013.09. | 1만4000원)



설탕, 세계를 바꾸다 - 마법, 향신료, 노예, 자유, 과학이 얽힌 세계사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지음, 설배환 옮김, 검둥소(2013)


태그:#설탕, #설탕, 세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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