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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양세환씨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해 "열두 살 때 잡혀 들어가서 6년을 보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제 삶은 달라졌을거다"고 증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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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양세환입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에는 1982년 4월 입소해서 87년 4월 퇴소했고요. 그 곳은 참...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든 곳인데, 한 달에 두세 명은 꼭 맞아서 심각한 불구가 됐고 심지어는 맞다가 죽기도 했습니다. 제가 열두 살 때 잡혀 들어가서 6년을 보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제 삶은 달라졌을 겁니다.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었을텐데..." - 양세환(남·44)

"저는 거기(형지복지원)에 열네 살 때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인생의 첫 출발점을 거기서 다 보낸 겁니다. 사실 이 자리에 나올까 말까도 굉장히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왔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 시설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못 살았고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다른 교육과정도 하나도 못 거쳤습니다. 이제껏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생각하는데... 평범한 직장생활은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 오민철(가명·남·44)

피해 증언자들은 얼굴을 잘 들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는 사람 외에는 모두 책상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발언하는 사람도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26년 전인 1987년, 원생 한 명이 폭행으로 사망하고 30여 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20여 년이 지났지만 마이크를 잡은 증언자들은 한결같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대책위준비위원회(아래 대책위(준))'는 1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를 진행했다.

대책위(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탈시설정책위원회 등 8개 시민단체가 함께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당시 복지원에서 있었던 피해 증언자 4명과 대책위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국가가 계획적으로 독려한 국가사업 중 하나로, 갓난아이부터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을 비롯한 3500여 명이 수용된 시설이었다. 겉으로는 소위 '부랑자'를 강제 격리해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복지시설이었지만, 실상은 길가와 공원, 지하철역 등에서 경찰에게 끌려온 시민들이 수용됐다.

증언자 양씨에 따르면 복지원 담장은 4미터가 넘었으며,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혔을 경우 경비원들에게 끌려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양씨는 또한 "우리 원생들은 서로를 '소대원'이라고 부르면서 새벽 4시 기상해서 하루 종일 청소하고 강제 노역을 하면서 보내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나이가 벌써 마흔 넷인데 아직도 그 때 기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도 악몽을 꾼다"고 전했다.

입소자들이 시설을 탈출하면서 사건이 알려진 87년 1월, 당시 신민당 진상조사단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복지원이 개소한 이후 12년간 죽은 사람만 513명에 달했지만 명확한 사망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당시 수용된 사람들의 진술에 따르면, 복지원 측은 이렇게 죽은 사람을 복지원 인근에 암매장하거나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한 구당 300~500만 원 등을 주고 팔았다고 한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생활... 강제노역에 시설 내 성폭력까지

▲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이상철씨가 10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정신적?신체적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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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피해자들의 증언도 참혹했다. 오민철씨는 "동성 간 성폭력이 많았다, 나도 그걸 당한 당사자"라고 증언했다. 그는 "내가 운동장에서 있을 때 (당시 원장이었던) 박인근이 와서 성기를 만지고 갔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당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지금 생각하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생활이었다, 저희가 무슨 죄를 지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라고 이야기하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강제 입소한 여성들이 복지원 직원들에게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당시 7세의 나이로, 부산 남포동 시내를 돌아다니다 성인 남성 3,4명에게 끌려 복지원에 들어갔다는 이상우(가명·남·39)씨는 "운동장에서 놀다보면 창문으로 가끔 그런 장면을 봤는데, 이후 여자가 임신하면 강제로 합동결혼식을 시켰다"면서 "복지원은 지옥이었다"고 증언했다. 

마지막 증언자로 나선 이상철(남·50)씨 또한 "당시 복지원에서 허리를 많이 맞았는데, 결국 지금 다발성 척추 협착증 판정을 받고 디스크를 긁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고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복지원은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거기 끌려간 사람들 운명이 너무나 기구하지 않나, 이런 걸 시간이 지났다고 그냥 덮어버리면 같은 역사는 또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준)는 지난 2월 말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흩어져있는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국가기록원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여준민 대책위 활동가는 "피해자 25명을 만나본 결과 당시 기억으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이 두 명 있었고, 수면제 복용과 알콜 중독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대다수였다"며 "이들 모두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지만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인 김명연 상지대 법학과 교수 또한 "국가는 이제라도 당시 사건의 진실을 밝혀 이들이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며 행사를 마무리 했다.

대책위(준)는 오는 24일 정식으로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11월에는 형제복지원과 관련된 학술 규명 작업에 들어간다. 이들은 정부의 진상 규명과 더불어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그:#형제복지원,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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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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