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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 아버지 영정
ⓒ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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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8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국일미디어)의 번역자인 내 아버지 김창석씨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전 서대문 송월동 집에서 시작됐다. 올라가는 골목길 구석에 있었던 넓은 집에서 아버지는 갑자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을 시작하셨다. 그 이전에 나온 로망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매혹된 영혼>은 우리 집안에 여유가 있었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번역한 것이었으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을 할 당시에는 집안이 몰락했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대책 없이 번역에 착수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가 번역을 하는 것을 지켜보시기만 했다.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주는 식량으로 우리 식구를 건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식구들의 생활보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계가 주는 황홀경에 빠져 그 방대한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하면서 아버지는 늘 우리말 사전을 옆에다 두고 아버지의 시심(詩心)을 충족하는 역어를 선정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셨다. 아버지는 시인으로서 언어의 사용에 보통 까다로운 분이 아니었다.

또한 아버지가 우리말 사전을 옆에 둬야 할 실제적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한 사람답게 일본어가 더 편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우리말을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아버지에게 '우리말 교본'과 같았다.

아버지는 번역을 한 번 시작하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입버릇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을 하면서 늘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하루 10시간 정도를 꼬박 앉아서 작업하다 보니 나중에는 신장 결석에 걸리기도 하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이 끝난 뒤 아버지는 신장을 하나 잘라내야 했는데, 그 이후로도 30년 이상을 더 사셨다.

치열한 삶 사신 아버지... 편히 쉬십시오

아버지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번역하는 데 쏟은 집중력은 초인적인 것이었다. 나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에 기울인 노력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안다. 직접 옆에서 목도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 그처럼 노력을 기울이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노년에 이를수록 본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셨다. 노년에 이르자 아버지의 재산도 친구도 줄어들었으나 아버지의 행복은 점점 커졌다.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 계시면서까지 아버지께서는 늘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할애한 열정과 노력은 지극히 높은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번역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원전의 생명력만큼 불후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들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물론 다른 분들이 작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본도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정립한 세계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 결실은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도 삶에 대해 어떤 회한도 남기지 않았다는 데에서 드러난다.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싶은 말 한 마디가 있다.

"아버지는 멋있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처럼 자기 소신을 굳게 지킨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태그:#김창석, #마르셀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시인, #평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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