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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그냥 야채, 과일만 팔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토마토 2개, 사과 1개, 바나나 2개, 양배추 1/6, 프로콜리 1/2, 당근 2/3로 묶어서 4000원에 판매하는 '해독주스 키트'를 준비했다"며 세트메뉴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는 소량이 필요한데도 일반 가격의 정량에 맞춰 식품을 살 수밖에 없는 1인가구를 주된 소비층을 삼고 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그냥 야채, 과일만 팔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토마토 2개, 사과 1개, 바나나 2개, 양배추 1/6, 프로콜리 1/2, 당근 2/3로 묶어서 4000원에 판매하는 '해독주스 키트'를 준비했다"며 세트메뉴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는 소량이 필요한데도 일반 가격의 정량에 맞춰 식품을 살 수밖에 없는 1인가구를 주된 소비층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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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야채가게 주인 유재인씨 인터뷰 유재인씨는 개인주의야채가게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주어진 대로 삶을 살지 않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해지면 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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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1+1)보다 일 나누기 십(1÷10)을 지향합니다."

13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 조그마한 좌판이 꾸려졌다. 꽃무늬 돗자리에 놓인 파, 양배추, 당근, 사과 앞으로 '개인주의야채가게'라고 적힌 입간판이 보였다. 입간판 너머에는 한 젊은 처자가 잡지를 깔고 앉은 채 좌판을 지키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치맛자락을 여민 것이 어지간한 자세가 아니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는 말 그대로 개인을 위한 야채가게다. 소량이 필요한데도 일반 가게의 정량에 맞춰 식품을 살 수밖에 없는 1인가구를 주된 소비층으로 삼고 있다. 가격은 '1/n+100원'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10개가 붙어 있는 2500원짜리 바나나 한 송이를 10등분 해 1개 당 350원에 판다. 양배추, 단호박 같은 것은 잘라서 나눠 팔기도 하고, 청양고추와 마늘은 1개씩 살 수도 있다. 야채는 근처 서교시장, 과일은 상수역 부근의 과일가게에서 구해 온다.

지난 7월 26일에 처음 문을 열어, 매주 화·금·일요일에만 장사를 하는 이 가게는 시각예술작가인 유재인(29)씨가 생각해 낸 프로젝트다. 화요일과 금요일엔 오후 6시~9시, 일요일엔 낮 12시~오후 5시 영업을 한다. 좌판을 펴는 것부터 장사, 회계, 마감까지 모두 유씨가 한다.

유씨를 만난 13일엔 아침부터 비가 내려 장사를 못하다가 비가 그쳐 오후 5~7시 가게가 열렸다. 100일 프로젝트인 개인주의야채가게는 11월 3일까지 장사를 할 예정이다.

"대형마트의 원 플러스 원이 싼 것처럼 보이지만 1인가구 입장에선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돼 별 의미가 없죠. 혼자 사는 사람에겐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것보다는 하나를 10명이서 나눠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개인주의야채가게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밥 한 끼라도 싱싱한 재료로, 잘 해 먹자는 응원과 위로가 담겨 있는 프로젝트예요."

손님 없어도 유유자적... "장사가 중요한 것 아냐"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서 야채와 과일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유씨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밥 먹기가 힘들어서 못 먹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서 야채와 과일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유씨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밥 먹기가 힘들어서 못 먹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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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야채가게는 유씨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작업실 생활 중 남은 식재료를 떠올리며 유씨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후각적 고통과 함께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매번 유씨를 괴롭혔다.

"혼자 사는 사람이 요리를 한 번 할 때, 대파는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필요한데 살 때는 한 단을 사야 해요. 그렇게 되면 다음엔 신선하지 않은 재료로 음식을 하거나, 상한 재료를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요. 식재료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을 소비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혼자 사는 사람은 소비자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거죠."

유씨 옆에 놓인 주머니에 수첩 크기의 장부 2개가 보였다. 하나는 야채와 과일을 산 기록,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판매한 기록이 담겨 있는 장부다. 앞의 것엔 25만7000원, 뒤의 것엔 22만9000원이 적혀 있었다. 한 달하고 반 정도 장사를 한 지금까지 약 3만 원의 적자다.

정작 유씨는 "장사가 잘 안 되는 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며 적자를 면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호기심에 '힐끗' 가게를 쳐다봤지만 유씨의 시선은 건너편 고깃집의 텔레비전 혹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접속한 휴대폰을 향해있다. 호객행위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명색이 야채가게인데 '물건 파는 그림'조차 나오지 않으니 기자는 안절부절 할 수밖에. 반대로 유씨는 유유자적이었다.

"하루에 2000원어치 판 날도 있고, 2만원 넘게 판 날도 있지만 저에게는 장사가 잘 되고 안 되고가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에요. 개인주의야채가게라는 100일 동안의 실험을 통해 그 필요성이 알려지길 바라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가구의 소외'라는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100일 후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해요."

100일 동안의 실험... 혼자 사는 사람도 싱싱한 재료로 잘먹자 프로젝트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서 좌판을 펼친 뒤 판매할 야채와 과일의 가격을 적고 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서 좌판을 펼친 뒤 판매할 야채와 과일의 가격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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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라고 하는 세트메뉴는 개인주의야채가게만의 브랜드다. 예를 들어 감자 1개, 가지 1개, 단호박1/4, 토마토 1개를 묶어 2000원에 파는 식이다. 이 조합은 구워서 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일명 '구지가(龜旨歌) 키트'다. 마지막 구절이 "구워서 먹으리"인 고대가요 <구지가>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가격도 '조금' 싸다. 감자와 가지가 450원이고, 토마토가 400원, 단호박1/4개가 750원이니 50원 할인된 금액이다.

이날 유씨는 야심작 '해독주스 키트'를 선보였다. 해독주스 키트는 토마토 2개, 사과 1개, 바나나 2개, 양배추 1/6, 프로콜리 1/2, 당근 2/3로 구성돼 4000원에 판매된다. 해독주스가 다이어트를 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식사 대용으로 인기란다. 해독주스 키트를 사간 한 손님은 주스 제조 후기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 손님에 따르면 4000원 가격에 주스 7잔이 나온단다.

유씨는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토마토를 삶고, 여기에 사과, 바나나를 넣어 갈아주면 해독주스가 완성된다"며 "야채는 생으로 먹으면 10%, 삶아서 먹으면 60%, 갈아서 먹으면 80% 이상 영양소의 신체 흡수율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사엔 관심이 없더니 갑자기 전문가의 후광을 내뿜는다. 평소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블로그를 뒤지며 얻은 내공이다.

"그냥 야채, 과일만 팔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묶어서 팔고 있죠. 사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꾸리면서 망원시장에 생긴 홈플러스를 보고 왜 시장은 잘 안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통시장에서도 해독주스 키트를 팔면 젊은 사람들도 찾아가고, 장사가 잘 되지 않을까요(웃음)?"

'일일 호스트' 지원자도 생기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
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매출 장부를 정리하고 있다.
유씨는 "한달 반동안 야채와 과일을 사는 데 25만7000원이 들었고, 판매 금액이 22만9000으로 약 3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판매금액이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아니다며 100일 동안 개인주의야채가게라는 실험을 통해 그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 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매출 장부를 정리하고 있다. 유씨는 "한달 반동안 야채와 과일을 사는 데 25만7000원이 들었고, 판매 금액이 22만9000으로 약 3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판매금액이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아니다며 100일 동안 개인주의야채가게라는 실험을 통해 그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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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일일 호스트를 맡게 된 유주영씨에게 가게 운영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예술작가 유재인씨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앞 가게에서 일일 호스트를 맡게 된 유주영씨에게 가게 운영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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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야채가게의 주된 고객은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알고 찾아와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다. 나름의 마니아층도 생겨 장사를 대신 해보고 싶다는 이들까지 생겼다. 현재 추석 이후 27, 29일, 다음달 1일 총 네 차례 '일일 호스트단'이 꾸려졌다.

27일 일일 호스트를 맡기로 한 유주영씨가 이날 가게를 찾았다. 그 역시 1인가구다. 유주영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주의야채가게를 알게 됐고 혼자 사는 입장에서 매우 반가웠다"며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어 일일 호스트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인 유재인씨는 일일 호스트 유주영씨에게 이날 장부까지 펼쳐 보이며 인수인계를 했다.

이날 두 시간 동안 매출은 손님 두 명에 6900원. 그나마 이 6900원도 기자가 2900원(바나나 6개, 토마토 2개), 24일 일일 호스트를 하기로 한 유주영씨가 4000원(해독주스 키트) 매상을 올려줘 기록한 액수다.

주인 유씨는 "기자님이 오셔서 장사가 잘 안 됐나봐요"라면서도 바나나와 토마토 위로 청양고추 3개를 얹어줬다. 해독주스 키트를 산 유주영씨에겐 "기자님과 달리 요리를 해 드실 것 같으니까"라며 비닐봉지에 감자 몇 알을 더 담았다.

유씨는 100일 동안의 장사를 마친 뒤 개인주의야채가게 이야기를 조그마한 책으로 묶을 생각이다. 가게를 지나던 한 아저씨가 "소꿉장난 하냐"고 말했던 소소한 이야기부터 개인주의야채가게에 담긴 진지한 의미까지, 100일의 기록이 책에 담길 예정이다.

"자본주의 논리로 보면 사실 개인주의야채가게는 쓸모없는 짓이죠. 하지만 트위터에서 '우리 동네에도 개인주의야채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람, 해독주스 키트를 사간 후 주스 제조 후기를 사진으로 보내준 사람도 있었어요. 여기 좌판에 앉아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교감을 하고 있는 걸 느낍니다. 100일 동안의 이 실험, 무언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태그:#개인주의야채가게, #유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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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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