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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역의 많은 문화유적 중에서도 문화재가 많은 도시가 원주이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역사유적부터 불교유적, 유교유적 등 그 성격도 다양하다.

알려진 폐사지를 둘러보고 나서 비두리 귀부 및 이수를 찾았다. 현재 도로변에 보호각 속에 있는 이 귀부는 원래는 후용리 마을의 용바위골에 있던 것을 인근에 법당을 세우면서 옮겨갔다가, 비두리 마을 주민의 건의에 따라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비두리 귀부 및 이수
▲ 비두리 귀부 보호각 비두리 귀부 및 이수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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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바닥돌 위로 거북받침을 두었고, 그 위로 비몸이 사라진 채 머릿돌인 이수만 놓여 있다. 귀부는 머리가 뒤로 바짝 돌려져 비를 바라다 보는 형상이어서 매우 독특하다. 등에는 2중의 육각무늬가 가득 차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비 몸이 사라져 비를 세운 시기나 그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알 수 없다.

비두리 귀부 및 이수
▲ 비두리 귀부 및 이수 비두리 귀부 및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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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두리 귀부 및 이수
▲ 비두리 귀부 및 이수 비두리 귀부 및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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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수법이 아주 우수하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역의 조각들은 우수한 장인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로 가는 도중 조린 묘가 있다. 그 무덤 아래 기슭에 묘갈이 있었으며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다. 안내문이 없어 관련 책자를 찾아보니 그러한 내용이 있다. 조각은 잘 갖추어진 전형적인 형식이다.

이제 흥법사지를 가기 전 100미터 정도쯤에 길 옆에 큰 느티나무가 서 있고 김제남 신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 21호)가 있다.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선조 임금의 장인이었던 김제남(1562~1613)의 신도비이다.

김제남 신도비
▲ 김제남 신도비 김제남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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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은 선조 18년(1585)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활동을 시작하였고,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에는 이조좌랑에까지 올랐다. 둘째 딸이 선조의 둘째 비인 인목왕후로 채택되자 연흥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광해군 5년(1613)에는 인목왕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채 사약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후에야 명예가 회복되어 그를 위한 사당을 지었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는 귀부 위에 비 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렸는데 귀부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다.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김제남 신도비
▲ 김제남 신도비 김제남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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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는 의민공 사우라 하여 김제남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 이곳에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김제남 묘소가 있는데 무덤 앞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있다. 또한 비석을 받치던 비부만이 남아 있다.

김제남 묘소
▲ 김제남 묘소 김제남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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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시내에도 볼 유적들이 많다. 원주역사박물관을 갔다. 먼저 야외에는 일산동 오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5호)이 있었는데 이 석탑은 원래 1962년 5월 원주시 중앙동 하동리라는 곳의 절터에 있었던 것을 원성군청 청사 뜰 강원감영(문루및선화당) 공원에 잠시 옮겼다가 현 위치에 세운 것이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일산동 오층석탑
▲ 일산동 오층석탑 일산동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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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동 석불좌상(강원도유형문화재 4호)은 일산동 탑 옆으로 2구의 불상이 있는데 모두 머리 부분이 없어져 새로 보수한 것이다. 체구는 단정한 편이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윤곽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평행 옷주름은 다소 도식화되었다. 조각수법으로 보아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산동 석불좌상
▲ 일산동 석불좌상 일산동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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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전시실에 들어가면 봉산동석불좌상(강원도유형문화재 68호)이 있는데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지만 손과 얼굴이 많이 깨져 있다. 대좌는 3단의 8각 연화대좌인데 가운데단은 8각으로 각 면에 천인상이 새겨져 있고, 맨 윗단은 연꽃이 핀 모양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봉산동석불좌상
▲ 봉산동석불좌상 봉산동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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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석불상으로 추정된다. 이외 학산동 철조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야외에는 외에도 전통가옥과 각종 석조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제 봉산동 당간지주(강원도 유형문화재 49호)를 찾아 나섰다.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 내에 서 있던 것이라 하나 현재는 절터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봉산동 당간지주
▲ 봉산동 당간지주 봉산동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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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기둥 한쪽이 파손되어 1980년 4월 30일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주변에 있는 신선암을 찾았는데 여기는 잘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다. 신선암으로 가는 길목 오른쪽으로 움푹 들어간 자리에 석조보살입상이 있다.

석조보살입상
▲ 석조보살입상 석조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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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보살입상은 전 천황사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 원주 역사박물관 석조보살입상 석조보살입상은 전 천황사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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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조보살입상의 얼굴은 다소 알아 볼 수 없고 몸은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 머리 위에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것은 보관으로 양측으로는 나선모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원주역사박물관 야외에도 유사한 양식의 석조보살 입상이 있다.

나의 발자취를 남긴 전국의 유적들은 많으나 강원도는 지역적 거리가 있어서인지 늘 아쉬움이 남는 그런 곳이다. 볼거리가 많고 역사가 깊은 원주로 한번 답사를 가는 것도 추천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25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원주문화재, #봉산동당간지주, #일산동석불, #원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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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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