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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 오리온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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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5개 부문상을 받은 영화 <양들의 침묵>은 토머스 해리스의 동명 소설 <양들의 침묵>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는 원래 범죄전문기자였다.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소설은 영상화하지 못한다는 기존 관념이 무너졌다.

영화는 FBI 초보 수사관 스탈링이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탈링은 버팔로 빌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이자 연쇄살인마인 렉터와 만나게 된다. 렉터는 감옥 안에서 스탈링을 기다린다. 그는 사람을 먹을 때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유지되는, 침착한 살인마다.

스탈링은 감옥 안에서 편안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그를 마주하자 소름이 돋았다. 정신과 의사였다는 그의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스탈링은 그와 대화하는 내내 취조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렉터는 순식간에 스탈링을 간파하고 쥐락펴락한다.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경고대로 가지 않으려는 스탈링과 스탈링을 제 쪽으로 유도하는 렉터 간의 기싸움이 팽팽했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스탈링과 렉터
▲ 영화 <양들의 침묵> 중에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스탈링과 렉터
ⓒ 오리온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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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와 스탈링의 대화는 주로 창살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숨통을 조이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창살이 보이지 않게 되고, 감옥이라는 공간이 무의미해진다. 등장인물과 시선을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범죄자가 되고, 렉터가 되고, 스탈링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클로즈업을 함으로서 렉터의 침착함, 누군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과 스탈링의 두려움, 호기심 등이 잘 표현될 수 있었다.

영화가 전개 되는 내내 렉터가 스탈링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렉터는 감옥에 수감된 다른 죄수에게 치욕스러운 말을 들은 스탈링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만남이 늘어갈수록 스탈링에 대해 이야기 듣기를 원하고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하나 둘 풀어간다.

살인마 한니발 렉터
▲ 영화 <양들의 침묵> 중에서 살인마 한니발 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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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와 스탈링의 마지막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렉터는 스탈링에게 고향을 떠난 이유를 묻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제목인 양들의 침묵의 의미가 나온다. 죽어가는 양들의 울음소리, 한 마리의 양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힘들어지자 결국 양을 죽이고 도망치는 스탈링, 후에 계속 들리는 양의 울음소리. 렉터는 스탈링에게 사건을 해결하면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파일을 주고받으면서 렉터는 스탈링의 손가락을 스친다. 이 과정에서 렉터가 스탈링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고 그녀와 진정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스탈링에게 양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스탈링에게 상원의원의 딸을 구하는 것은 양을 구하는 것과 같다. 버팔로 빌에게 잡혀 있는 그녀를 구한다면 죄책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버팔로 빌을 잡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더 이상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렉터가 감옥에서 도주하는 장면은 숨이 막혔다. 아무렇지 않게 경관 둘을 해치우고 머리를 써서 탈출하는 렉터는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됐다. 버팔로 빌과 스탈링의 추격전 역시 그랬다. 허탕을 치는 FBI와 예기치 못하게 버팔로 빌을 마주하게 된 스탈링의 모습이 대조되면서부터 긴장이 시작되었다. 스탈링이 벌벌 떨며 버팔로를 찾으러 다닐 때는 장면 하나 하나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스탈링을 농락하다가 총을 맞는 빌의 최후는 통쾌했다.

수사 중인 스탈링
▲ 영화 <양들의 침묵> 중에서 수사 중인 스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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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빌의 나방은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준다. 영화 포스터에도 나온 나방은 여자가 되고 싶었던 빌과 맞물려 형상화가 잘 되었다.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마침내 나방으로 변화한다.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빌은 변화를 꾀하여 여자를 죽이고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든다. 그것을 입게 되면서 비로소 여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금도 물론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금보다 훨씬 이전인 그 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버팔로 빌이 연쇄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 사회 시선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는 스탈링과 렉터가 전화 통화를 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렉터가 도주했지만 스탈링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쌓은 신뢰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렉터가 스탈링을 찾아올 리는 없다고 믿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영화였다. 렉터의 존재감이 가장 크지만 실제로 20여 분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만큼 렉터를 잘 형상화했다. 실제 살인범과 사건을 따와 렉터에게 대입해서 그런지 더 현실성이 있었다. 전체적인 캐릭터에 일관성이 있었고, 버팔로 빌 사건 해결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놓고 긴장감 있게 잘 흘러갔던 것 같다.


태그:#영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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