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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로 가는 끔찍한 3등석 열차

여지없이 죄다 깨진 유리창과 온통 때 투성이인 좌석, 도대체 어떻게 굴러는 가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여기저기 벌어진 열차 바닥과 그 틈 사이로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는 바퀴벌레들. 아부심벨의 여운이 채 가기도 전에 탄 3등석 열차는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과 꼭 닮아있었고 난 여기가 현재의 이집트 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집트의 3등석 기차.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떠올린다
 이집트의 3등석 기차.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떠올린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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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연히 한 대의 기차 안에 1등석과 3등석이 객차별로 구분돼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기차는 열차 전체가 1등석이거나 3등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더운 열사의 사막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창구직원에게 제일 빠른 열차표를 요구했더니, 그는 그저 "나인, 나인"을 외쳐댔고, 결국 나의 무지가 내 몸을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탑승하게 만들었다.

아스완까지는 3시간 반. 다행히 룩소르가 출발 역이라 빈 자리는 많았던 탓에 조금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열차에 올랐다. 그러나 30분 마다 한 번씩 정차한 기차는 출발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좌석은 물론 팔걸이에 팔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사람과 짐으로 가득 찼다. 아니 애초에 팔걸이가 부서지지 않은 의자는 없었다.

열차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조금씩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는 열차 안 열기를 식히기 힘들다고 판단한 건지 어느 정도 달리더니 아예 출입문을 활짝 연 채 달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냄새는 조금씩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매캐한 사막의 모래뿐.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열린 문을 등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저 서있었고,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이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동양에서 온 작은 여행자에게 꽂혔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의 맞은편 좌석에 한 군인이 탔고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가방을 끌어안고 꼼짝 못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제법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넸다.

"여행 중이야?"
"응. 너는 군인?"
"관광객이 이 열차를 탄 건 처음 봐. 근데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람들은 단지 동양인을 보는 게 신기할 뿐이야."

그는 흔들리는 내 눈빛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듯 친절한 말투로 이런 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불안한 시선을 고정할 곳이 생겼고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잔뜩 긴장한 어깨를 늘어뜨리고 그와 꽤 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이집트에 대해서. 그렇게 3시간이 조금 지나 나는 왕의 잠든 도시 룩소르에 도착했다.

이집트의 산 역사를 만나다

기차역에서 나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만난 나셀. 자기 아버지가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가격과 시설을 확인 한 뒤 그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이집트에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걸어 다니면서 숙소를 찾는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룩소르 신전이 도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룩소르
 룩소르 신전이 도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룩소르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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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경주와도 같은 도시인 룩소르는 지나가다 손으로 짚은 벽조차 수 천년 전의 유물일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야외 박물관이나 다름 없는 유서 깊은 도시다.

룩소르 한가운데를 흐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는데 해가 뜨는 동쪽은 주로 왕들의 생활 터전으로 사용되어 지금도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 동쪽의 유적 중에 유독 유명세를 치르는 건물이 있는데 영화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에 나왔던 카르낙 신전(Karnak Temple) 이다.

카르낙 신전 입구에 사열해 있는 스핑크스
 카르낙 신전 입구에 사열해 있는 스핑크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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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전인 카르낙 신전은 그 거대함을 뽐내듯 입구부터 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수십 개 씩 늘어서 있었다. 이집트의 태양신 아문(Amun)에게 바치기 위해 지어진 카르낙 신전은 고대 이집트 12왕조 때부터 약 2000년에 걸쳐서 파라오에 오른 여러 왕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커져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원래는 이 카르낙 신전에서부터 룩소르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룩소르 신전까지 이르는 3km 거리 내내 이 스핑크스가 늘어서 있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과 도시의 개발에 파묻혀 지금은 겨우 20여개 정도만 남아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수천년 째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람세스 2세와 왕비
 수천년 째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람세스 2세와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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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꽤 많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의 손길을 거쳐간 모양인데 사열된 스핑크스를 지나치니 어쩐지 낯익은 석상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바로 아부심벨을 건설한 람세스 2세와 그의 왕비다. 수천년째 같은 자리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애틋하다고 해야 할까. 왕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유독 남달랐음은 분명한 듯하다.

카르낙신전의 하이라이트 대열주
 카르낙신전의 하이라이트 대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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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가 다른 고대 문명과 달리 유독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도굴꾼과 외세에 의해 그렇게 많은 약탈을 당하고도 여전히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유물이 남아있다는 점과 고대 이집트인들 특유의 미적 감각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고 군데군데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 것이 오히려 이것이 설정이 아니고 역사임을 증명하지만 원래는 천정이 있었음이 분명한 수십 미터 높이의 대열주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현실인지 영화 속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아찔하다.

단순히 돌을 깎아 기둥을 만든 것 뿐 아니라 겉을 장식할 다양한 문양을 덧붙이고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기괴한 무늬를 새겨 놓았는데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를 해석할 수 있을까?

대열주에 새겨진 벽화
 대열주에 새겨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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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내는 돌을 사용했다는 벽화
 색깔을 내는 돌을 사용했다는 벽화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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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크고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이 많지만 카르낙 신전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은 드문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커져만 가는 호기심과 의문들. 아, 이토록 완벽한 시간여행을 그만두고 어디로 또 떠나야 한단 말인가. 발걸음을 돌리는 내 등 뒤로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석상들 때문에라도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뚜껑을 열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석상등
 금방이라도 뚜껑을 열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석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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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잠든 도시

다음날, 사람이 살지 않고 오로지 사막 뿐인 룩소르 서쪽은 어떻게 둘러봐야 하나 방법을 알아보던 나는 결국 승합차 투어를 선택했다. 40도를 훌쩍 넘는 사막 한가운데를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생각도 들거니와 무엇보다 왕들이 잠든 서쪽 모습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동쪽과 달리, 해가 지는 룩소르의 서쪽은 왕들이 잠든 곳이다. 강을 중심으로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의 땅을 나누어 둔 것만 봐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유독 사후세계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 같다. 애초에 역대 왕들의 무덤을 모두 한데 모아 네크로폴리스를 만든 유례가 없으니까 말이다.

죽은 자의 도시,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길
 죽은 자의 도시,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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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출발한 투어 차량은 쓸데 없는 기념품 가게를 거쳐 가이드의 이야기 때문에 궁금증으로 심장이 터져버릴 즈음이 돼서야 첫 번째 목적지인 왕가의 계곡에 도착했다. 그런데 왕가의 계곡에 들어서기 전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더니 가이드가 한마디 던진다.

"여기는 촬영이 금지돼 있어. 카메라 들고 들어가는 것도 안돼."

수많은 신화와 영화가 완성된 왕가의 계곡에서 촬영이 금지된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덕분에 가이드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서 들어야 했다.

왕가의 계곡 입구에는 1~62까지 무덤의 번호가 매겨진 숫자와 각 무덤에 해당하는 왕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 숫자는 발굴이 된 순서라고 한다. 이집트 왕조 초기에 대형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에서 지금처럼 동굴로 바뀐 이유가 너무 크고 눈에 띄어 도굴 당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고.

이 무덤들이 고고학자에 의해서 발굴 되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집으로 사용하고 있거나 도굴당한 후였다고 하니 왕들의 막강한 권력도 인간의 욕심을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유일하게 매장했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발견된 무덤이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이었다고 하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왕의 무덤을 발굴하던 노동자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동굴들
 왕의 무덤을 발굴하던 노동자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동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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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2개의 무덤은 모양도 길이도 제각각인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길이는 바로 왕의 수명을 뜻한다고 한다. 즉 왕이 즉위할 때부터 땅을 파기 시작해서 죽으면 그 즉시 멈추고 그 끝에 왕의 미라가 든 관을 묻었다는 얘긴데 이 모든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죽은 왕이 신들이 속한 세계로 가기 위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무덤 안에 벽화로 남겨 죽은 왕이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낸 건 오이디푸스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왕가의 계곡 입장권으로는 총 3개의 무덤을 들어가 볼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들으면 들을수록 오래된 전래동화처럼 깊게 빠져드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테라스 모양이 특이한 하쳅수트 장제전
 테라스 모양이 특이한 하쳅수트 장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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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왕가의 계곡 절벽을 넘으니 또 하나의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이집트 최초의 여자 파라오 하쳅수트가 만든 이 건물은 절벽 너머 왕가의 계곡에 그토록 묻히고 싶어했던 그녀의 집념이 만들어낸 것이란다. 정식 명칭은 하쳅수트 장제전이라고 하는데 장제전(Mortuary Temple)은 고대 이집트에서 국왕의 영혼을 제사하던 숭배전으로, 국왕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 백성을 보살피고 이대 대한 관존의 예의로 공양의식을 진행하던 곳이라고 한다.

크고 웅장함을 내세웠던 다른 신전들과 달리 테라스식으로 지어져 정교함을 자랑하는 하쳅수트 장제전에는 기둥마다 하쳅수트의 동상이 세워져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상당 부분 파손돼 있었다.

목이 달아나고 없는 하쳅수트의 석상
 목이 달아나고 없는 하쳅수트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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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사정이 있다. 하쳅수트의 사후에 왕이 된 투르모스 3세는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계모인 하쳅수트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마는데, 이 어린 왕은 자기가 왕이 되자마자 하쳅수트와 관련된 모든 신전과 동상을 파괴했다고 한다.

왕이 되고자 했던 여인, 하쳅수트
 왕이 되고자 했던 여인, 하쳅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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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이게 여자의 모습인가 싶은 하쳅수트의 석상은 진짜 왕이 되고 싶었던 하쳅수트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자의 모습으로 새겼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왕가의 계곡에 묻히지 못했다. 이집트 역사상 유일한 여자 파라오로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뇌와 수난은 엄청났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하쳅수트 장제전의 벽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하쳅수트 장제전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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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을 조여오는 뜨거운 열기와 태양만 아니면 훨씬 더 이 '죽은 자'들의 흔적을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짧고 강렬한 인상이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다시 이집트를 찾게 될 이유가 될지도 모르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꼭 겨울에 와야지.

어느덧 투어 차량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사실 왕비의 계곡과 세티 1세의 장제전도 투어코스에 포함되어 있지만 각각 왕가의 계곡, 하쳅수트의 축소판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더위에 지친 모두는 만장일치로 마지막 목적지인 멤논의 거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멤논의 거상
 멤논의 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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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물도 유물도 발견되지 않아 아메노텝 3세의 신전 입구였던 것으로 추정만 되는 이 거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로마시대 한 그리스 시인에서 비롯되었다. 멤논은 우리에게 익숙한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왕인데 왜 뜬금없이 이집트의 이름 없는 거상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수천 년이 흘러 얼굴과 팔이 떨어져 나간 처참한 모습이지만 죽은 자의 도시,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입구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 거상은 왕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였을 것이다. 멋들어진 신전이 세워져있고 그 앞을 지키는 두 개의 거상 그리고 이어지는 왕가의 계곡. 만화 속 이야기 같은 곳에서 소와 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로마시대에 그 모습을 봤던 그 시인은 분명히 그 거룩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조국의 영웅의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하니 두 개의 거상 뒤로 펼쳐진 고대 신전의 모습이 손끝에 닿을 듯하다.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투어는 끝났다. 내가 여행을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스핑크스에서부터 아부심벨에 이어 왕가의 계곡까지, 마치 긴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여전히 나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룩소르에 있지만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날 저녁 나를 숙소로 데려왔던 나셀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다. 자기한테 입장료를 미리 한 번에 사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말에 전날 나셀에게 주었던 입장료보다 실제 입장료가 훨씬 더 쌌던 것.

결국 사기였다. 그는 끝까지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고 보다 못한 숙소의 주인이 와서 초과 청구된 돈을 돌려주고야 일은 마무리 되었다. 그런 기분으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숙소에서 잔일을 하던 소년이 따러 나섰다. 그는 짐짓 웃으며 긴 여정이 될 것이니 빵이 맛있는 곳, 과일이 싼 곳 등을 알려주며 여러가지로 친절을 베풀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이윽고 떠날 시간이 돼 나는 그에게 남아있던 돈을 쥐어 주려 했지만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냥 내가 일하는 속소에 머무는 손님이 웃으면서 떠났으면 좋겠어."

순간 부끄러워진 손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고 나는 팁 대신 소년과 가벼운 포옹을 나누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여자 두 명을 데리고 와. 한 명은 너, 한 명은 나."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고 밝게 웃으며 버스가 멀리 떠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소년. 그렇게 나는 여행 중 가장 뜨거운 안녕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곧이어 소년의 손에 이끌려 샀던 복숭아를 한 입 베어 입안으로 밀어 넣자 잔뜩 긴장했던 가슴이 녹아 내린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복숭아 맛이다.

간략 여행 정보
이집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듯한 느낌이다.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을 동안, 서쪽을 서안으로 나뉘는데 왕가의 계곡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적지는 서안에 위치해있고 시가지는 동안에 형성되어 있다. 동안의 유명한 관광지인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은 시내에 위치해 있어 자전거 만으로도 충분히 관람이 가능하지만 서안의 경우 넓은 사막에 유적지가 흩어져 있어 자력으로 무리니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투어는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합승하는 것이 보통인데 대부분의 투어는 투어비용에 유적지 입장료를 포함시킨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 실제 입장료 보다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하자. 서안 투어를 하는 날은 마땅히 식사를 할 곳이 없으니 도시락은 필수며 뜨거운 태양을 고려해 얼음물을 들고 다니면 큰 힘이 된다. 아래는 동·서안의 유적지.

동안 :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
서안 : 왕가의 계곡, 왕비의 계곡, 하쳅수트 장제전, 세티 1세 장제전, 멤논의 거상

투어는 룩소르의 모든 숙소에서 예약이 가능하며 이집트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태그:#룩소르, #룩소르서안투어, #왕가의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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