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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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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맥도날드의 마이크 퀸란 대표이사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편지는 '공장형 사육이 고기와 계란을 공급하는 동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할 것'과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사육방식을 개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맥도날드는 매년 계란 10억 개와 소고기 5억 파운드 이상을 소비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또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동물을 보다 인도적으로 대하도록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 대기업에게 '헨리 스피라'라는 한 개인이 보낸 편지였다.

맥도날드에게 납품하는 업체의 닭들은 일생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할 수 없는 공간에 방치돼 가혹한 취급을 받으며 사육됐고,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목이 잘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베이컨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건조한 우리에서 평생 동안 이동하지 못하게 하면서 암퇘지를 사육하는 곳도 있었다. 계란은 일생을 닭장에서 보내면서 오로지 알을 낳다가 죽는 암탉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소들에게는 불도장으로 안면에 낙인을 찍고, 도축은 '거꾸로 매달기'가 행해졌다.

거꾸로 매달기
소처럼 큰 동물을 도축하는 도살장은 동물의 뒷다리 하나를 사슬로 감아서 거꾸로 매단 후 작업을 했다. 그래야 동물의 상부가 바닥으로 향한다. 그런 상태에서 인후를 잘라내 도축한다.

수송아지는 대략 900킬로그램이 나가기 때문에 한쪽 다리로 거꾸로 매달게 되면 어떠한 충격과 고통을 느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중에서
헨리는 꼬박 5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맥도날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마침내 헨리는 직접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맥도날드의 주식을 몇 주 산 후, 1994년 정기총회에서 전 주주가 투표해야 하는 주주 의견사항을 제출했다. 납품업체에게 다음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이었다.

1.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법: 동물을 기르고 먹이고 수송할 때는 몸과 행동을 최소한 제한해야 한다.
2. 수의사의 개별적인 치료: 동물은 필요할 때 수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3. 인도적인 도살: 신속하고 인도적인 죽음을 보장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346쪽)

당시 가축이 개별적인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현대적 동물 생산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내용이었다. 헨리의 제안이 주주에게 넘어가면 맥도날드로서는 탐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맥도날드는 장문의 법률 의견에 근거해 1994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위임장에 따라 제출된 이 제안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헨리는 즉각 항의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맥도날드는 그제야 전향적인 자세로 헨리의 의견을 검토했다. 그리고 1994년 2월, 마침내 협상이 타결됐다.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난 싸움이었다. 헨리 스피라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세계적인 기업 맥도날드를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사실 헨리가 살아온 삶을 읽어보면, 왜 맥도날드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의 삶은 피터 싱어에 의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란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치밀하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가'에서 '동물운동가'로

처음부터 헨리가 동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흑인의 시민권을 위해 일하는 인권운동가였다. 1950년대에는 연방수사국이 조직적으로 흑인들의 권리를 부정하면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지원하는 사실을 고발했다.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엄혹했던 냉전시대의 연방수사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았고, 여러모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55세가 될 때까지 헨리는 동물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는 개나 고양이를 길러본 적도 없었다. 그는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가 어디인지, 이 고기가 어떻게 생산됐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1973년 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우연히 입양하면서 달라졌다.

동물해방운동에서 조금이라도 배운 게 있다면, 강제로 확인하기 전까지 차별을 깨닫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이 알아야 했다는 것이다. 동물해방운동은 사람들의 도덕적 지평을 확장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됐던 관행들이 이제는 감내하기 힘든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저자의 다른 책 <동물해방> 중에서)

그는 동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칠게나마 비교할 만한 존재들이라면 인종, 성별, 혹은 생물종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의 권리는 동등해야 마땅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본격적으로 동물들을 위해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까지의 동물 운동은 잔인한 행태를 고발하며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형태였다. 이를테면 학대받거나 부상당한 개의 사진과 사례를 나열하며 장황하게 상황의 잔인함을 부각하는 식이었다. 그는 이런 방식의 운동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좀 더 효과적인 운동방식을 고민했다.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실천'과 '성과'였다.

잔인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신문을 발행하는 것도 이상했고, 다음 달에도 잔인한 소식을 전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적한 잔인한 행위들은 계속 늘어났고, 생체실험 반대 단체의 기금은 증가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동물에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일을 그렇게 하는지 내가 보기에는 상식에 반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병폐를 알리고, 그들을 화나게 만들고, 실망을 선사하는 게 중요할까? 지금 하는 활동이 다음 달에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라니, 정말 멋진 일이었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124쪽)

마침내 1975년, 비로소 그는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구체적이었고 신중했으며 치밀했다. 첫 번째 목표는 자연사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서는 고양이의 후각을 파괴했고, 성기의 신경을 잘라 촉각을 둔화시켰고, 뇌의 일부를 제거했다. 이후 사지가 절단된 고양이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성행동에 따라 결과가 기록됐다. 인류에게도, 동물에게도 의미 없는 실험이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행해지고 있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당최 이해하기 힘든 실험이었기 때문에 박물관이 금방 흔들렸으리라 예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는 동물을 옹호하는 운동이 성공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정치인들과 여론이 동물에 관련된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았고, 과학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2년 동안 이어지다가 꾸준함과 세밀한 전략을 앞세운 헨리의 승리로 마무리가 됐다. 자연사박물관 측으로부터 실험의 완전정지와 예산삭감을 약속받았다. 헨리는 이 사건을 '동물권리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라 표현했다.

후로 헨리는 화장품 회사들의 토끼 실험 중지, 반수치사량(피검 집단의 절반이 죽을 때까지 물질의 치사량을 측정하는 실험) 검사의 축소, 거대 계란 생산 회사의 사육환경 개선 등을 일궈냈다. 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동물에게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는 모든 곳과 싸웠다. 사면위원회의 동물을 이용한 고문실험과 헬렌 켈러 재단의 사냥 행사도 그에게는 동물해방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모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냈다. 아무리 숭고한 목적으로 포장됐더라도, 그의 시야에서 빗겨날 수는 없었다.

헨리가 말하는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법'

확실히 헨리는 영감이 넘쳤고 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당연히 성과도 탁월했다. 수많은 대담과 기사에서 그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본인이 썼던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독려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쓰는 방법이지, 방법을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본문에서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생각하며 내일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무엇보다 현실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라."
"주제가 여론에 약한지, 겪는 고통이 큰지, 변화의 전망이 있는지에 따라 운동의 목표를 정하라."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잡아라. 한걸음씩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켜라. 인식을 제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확보하라. 추축은 결코 하지 말라. 매체나 대중을 절대 속이지 말라. 신뢰를 유지하며 문제를 과장하거나 자극하지 말라."
"세상을 성자와 악인으로 구분하지 말라."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화를 해보고 협력을 모색하라. 문제와 해결책을 함께 개진하라. 최선의 방법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목표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대결을 불사하라. 합의한 대화 통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반대편을 수세로 몰기 위해서 대중의 인식 높이기 운동을 마련하라."
"관료주의를 피하라."
"법률 제정이나 소송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정이 있다. 운동을 계획하기 전에도, 운동을 계속하는 경우에도 과연 효과가 있을지 자문하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계획한 대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계획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꾸준히 타진하고, 목표를 선별하고, 이룰 수 있는 목적을 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신뢰를 유지하고, 대안이 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반대편과 논의할 준비를 하고, 말이 안 통하면 대결을 하는 것 등 모든 게 하나로 집약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효과가 있는가?'다.

저자가 헨리 스피라 평전을 쓴 진짜 이유

저자 피터 싱어는 자신이 헨리의 평전을 쓴 이유로 두 가지 가정에 대한 반감을 들었다. 그 가정이란, 첫째로 개인은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생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헨리는 어떻게 해야 최대한 영향을 끼칠지 끈질기게 지성을 사용해 고민했기 때문에 매년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드레이즈 실험, 반수치사량, 비인도적 도살, 안면낙인에서 벗어났다. 이는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고 헨리의 인생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인생이란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임종이 가까웠을 때 일생 동안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족스럽게 뒤돌아볼 수 있다면, 이는 의미 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충분히 찾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헨리의 경험이 바로 그렇다. 헨리는 생각하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회도 없었다.

헨리는 '살면서 그가 이룬 게 무엇인지 요약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몇 가지 생각을 밀어붙였습니다. 행동주의는 결과를 지향해야 하며, 승리할 수 있으며, 시청과도 싸울 수 있으며, 자기가 차별받는 게 싫다면 타인이 차별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어해야 하며,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죠. <뉴욕타임스>의 기자 한 명이 묘비명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내게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나는 조금씩 천천히 진척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403쪽)

그렇다. 개인은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인생은 유의미하다. 헨리 스피라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덧붙이는 글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오월의 봄 펴냄, 2013.07, 1만6천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철학자 피터 싱어가 쓴 동물운동가 헨리 스피라 평전

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오월의봄(2013)


태그:#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헨리 스피라, #피터 싱어,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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