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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된 신체'는 지난 수십 년간 SF소설과 영화의 주요소재로 쓰였다. 우리는 한 번 손상되면 복구하기 힘든 생체 기관을 더욱 강하고 튼튼한 금속 혹은 세라믹 재질로 대체한 모습을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로, 어쩌면 그러한 광경을 현실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당장 나와 가족·친구와 직장동료들의 몸에 기계화된 신체가 장착된다면? 우리에겐 낯선 상상이지만, 과학자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됐다.

인류사와 함께 발달한 도구... 인공조직까지 등장

<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의 표지.
 <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의 표지.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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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짧은 역사에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해왔다. 더 멀리 던지고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기록을 남기고 더 멀리서도 듣기 위해서 인류는 다양한 물건을 개발했다. 도구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발전됐으며, 최근에는 빠른 처리 속도와 방대한 정보 저장을 가능하게 만든 컴퓨터와 인터넷망의 보급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정보공학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초소형화된 전자칩과 회로를 생체에 적합하게 만들어 몸에 이식할 수 있게 됐다. 그 예로는 인공심장조직·인공심장박동기·인공심장제세동기가 있으며 장애인의 청력이나 시력을 향상시켜주는 인공 달팽이관과 인공 망막도 이에 해당된다. 뇌속에 이식된 인공조직은 파킨슨병의 회복을 돕고, 인공췌장은 당뇨병 환자에게 필요한 인슐린 배출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20년 전부터 발전해 온 '생명정보학'이라는 분야로, 생물학과 컴퓨터과학이 결합된 학문을 일컫는다. 저자는 생명정보학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 간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인간과 기계 사이에 공생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궁금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상상 속에서 떠올리는 것처럼, 우리의 두뇌에 직접 연결한 기계장치나 치료가 아닌 '강화'를 목적으로 한 신체기관도 개발될 것인가.

저자인 장 델베크는 신경정신의학 전문의로서, 신체와 뇌의 보철기구가 오늘날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차근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생명정보학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가게 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점은 무엇인지 냉철하게 짚어낸다.

치료와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인공생체기관, 더 이상 공상 아냐

최초로 성공을 거둔 인공감각기관은 1970년대의 '인공달팽이관'이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하여 외부의 데이터(발생된 소리)를 신체기관 내부(뇌의 신경계)까지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제는 소형으로 제작되어 하나의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7000명이 이식수술을 받고 있다. 심장병 환자를 위한 인공심장박동기 역시 의학계에 큰 도움이 돼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적합한' 형태의 인공감각기관을 만드는 것이 어려움이라고 장 델베크는 말한다. 지나치게 인공적이라면 뇌를 비롯한 생체에서 '이물질'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크로전자공학 기술 덕분에 전극 침을 비롯한 장치들을 1밀리미터 미만의 초소형화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발생되는 전극으로 신경의 손상이 유발되는 등의 문제도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호르몬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인공 감각기관에 필요한 전기공급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해마(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같은 대뇌 영역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뉴로칩(neurochip)'에 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만약 이 기술이 완성된다면 사고 등으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겪거나 기억력 장애를 앓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돼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치료의 목적을 넘어서 '강화형 인간'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부 운동선수들이 능력 강화를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처럼,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생체보철기구를 사용하려는 것. 이식된 칩을 통해서 고도의 지능이나 특별한 기억력, 비범한 지각능력을 갖추려는 꿈은 더 이상 SF영화가 아니라 과학계에서 시작된 일로 보인다.

신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 지식의 한계와 윤리적 문제도 고려해야

"존 채핀의 연구팀은 쥐의 뇌세포에 전극을 심음으로써, 정상적으로는 감각모(예민하고 긴 수염)에 의해 야기되는 지각을 가상으로 유도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활성화되는 세포에 따라 쥐가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로봇보다 훨씬 더 다루기 쉬운 '원격조종' 쥐를 마침내 만들어낸 것이다!" (본문 48P중에서)

본문에 따르면, 마이크로칩을 뇌에 삽입해 뉴런이 보내고 받을 신호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조작하는 기술이 이미 개발된 상태다. 물론 이 기술은 특정 동물의 조작하려는 일 자체가 의도는 아니었고, 뉴런의 신호를 해독한 다음 하반신 마비환자가 걸을 수 있도록 하려는 치료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이러한 실험과 결과물은 윤리적인 벽에 부딪힌다. 신체가 조종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그 제어력을 누가 쥐고있는가'라는 물음을 낳는다. 물론 누군가는 마이크로칩의 삽입이 수많은 은행카드와 신분증명서를 대체할 방안이며, 납치 등의 긴급한 상황에서 위치파악이 쉬워지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시스템이 어쩌면 감시와 통제를 위한 창살없는 감옥이 돼버리진 않을까.

저자 장 델베크는 이런 기술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고문'의 재현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밝히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질병과 육체의 한계를 극복할 혁신적인 도구이지만, 반드시 장밋빛 미래만을 가져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보철기구를 통한 치료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기술의 위험과 장단점을 단순히 결산하는 것으로 따질 수 없다"며 이러한 기술의 개발에 앞서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와 윤리적인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장 델베크가 열거한 생체공학의 발달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그의 주장에도 동의한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늘 개발자가 바란 것처럼 긍정적인 영향만 가져다주지 않았던 사례는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영화 속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임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술의 발달이 빠르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으며, 편리함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 (장 델베크 씀 | 김성희 옮김 | 알마 | 2013.08. | 8000원)



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

장델베크 지음, 김성희 옮김, 알마(2013)


태그:#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 #인공감각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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