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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나는 CDP를 가지고 있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음반 한 장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으며 동그랗고 귀엽다. 3년 전에 이 CDP를 구입하기 위해 세 군데의 전자상가를 뒤적여야 했고, 겨우 하나 남은 상품을 가져 올 수 있었다. 가수는 끊임없이 컴백과 함께 '음반'을 발표하는데, 그 음반은 모두 어떻게 사용되고 있길래 CDP의 수요가 이렇게나 미미한 걸까.

3년전에 직접 구입한 CDP. 아직도 잘 쓰고 있다.
 3년전에 직접 구입한 CDP. 아직도 잘 쓰고 있다.
ⓒ 배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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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CDP를 가지고 있다는 건 CD가 있다는 것이고, 조금 구식인 방법으로 노래를 듣는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면 굉장히 신기해한다. '아직도 CDP로 노래를 듣냐'는 반응도 있고, 심지어는 CDP를 처음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묘한 뿌듯함을 느낀다. 물론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은 400곡 가까이 되고, 이를 매일같이 듣지만 CDP로 음악을 듣는 것은 투박한 기계에서 나오는 진동이 음악에 더해진다. 그리고 나는 트랙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나에게 친숙했고, 노래를 즐겨 불렀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직접 사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의 폭을 넓혀갔고, 지금은 클래식, 재즈, 팝송 등을 가리지 않고 듣는다. 요즘 같이 음원시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음원을 가지는 것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단순하고 편리하기만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좀 더 그럴듯한 방법으로 음악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더욱 그들의 목소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CDP는 나에게 일종의 고집이기도 하며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초심을 다잡게 해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아날로그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요즘 휴대폰에 부착된 카메라의 기능이 점점 발달하고, 화소 또한 디지털 카메라 수준이 되어가면서 주위에선 카메라를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최근까지만 해도 유행하듯 DSLR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째서 그 묵직한 무게의 카메라를 휴대폰 속에 쏙 집어넣어 버린 걸까. 예전엔 사람들이 발 벗고 찾아다니던 이러한 풍류가 이제는 말도 안 되게 단일화 되었고, 단순화 되었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너도 나도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져만 간다. 사진으로 자신의 내면이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게임 성적, 입은 옷, 염색한 머리 등 흔적으로 남겨둘 이유조차 없는 일들을 찍는 것이다.

다들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담긴 두꺼운 사진앨범 몇 개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지 않았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하는 것이 사진을 남기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때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보았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어쨌든 사람들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사진을 좀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되었다.

클래식 수동카메라인 '미놀타 하이매틱 7S'이다. 사진 매니아층에게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piffcamera.co.kr/shop/shop.php?SN=goodslist&cid=13700300000000)
▲ 미놀타 하이매틱 7S 클래식 수동카메라인 '미놀타 하이매틱 7S'이다. 사진 매니아층에게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piffcamera.co.kr/shop/shop.php?SN=goodslist&cid=13700300000000)
ⓒ 피프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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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과거로 돌아가자면, 클래식 카메라가 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온 집중을 다 해야 하고, 그만큼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카메라다. 지금 이 카메라를 사용하기엔 너무나 까다롭고, 특히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이 번거롭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클래식 카메라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다. 구조나 기능의 조화를 따졌음은 물론이고, 외관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것이 클래식 카메라가 아직까지도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 클래식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훨씬 진중해 보이고, 가치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이유로 다시 음반 얘기를 해보자면, 이제는 거의 생산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던 LP판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이목을 끈다. 그 동그란 판 하나가 음악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 그 자체를 느끼기 위한 자세로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LP판을 통해 음악을 들으려면 축음기가 필요하다. 클래식 카메라처럼 축음기 또한 아름다운 외관 자체만으로 작품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 LP판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조용필'이다. 사람들은 그의 19집을 LP판으로 사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의 음악성과, LP판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다. 단순하고 편리한 것도 좋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에 더 애정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는 것, 사진을 찍는 것, 이러한 일이 나에겐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 걸까.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 사진, 그 외의 다른 문화들 역시 너무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를 즐기는 방법은 창작에서 감상까지의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우연히, 언젠가 CDP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저 사람은 음악을 진정으로 느끼는 고리타분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해도 좋다.


태그:#클래식카메라, #CD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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