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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현장에서 철근 연결을 하는 작업자들. 웅덩이로 내려오는 사다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울산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현장에서 철근 연결을 하는 작업자들. 웅덩이로 내려오는 사다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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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오후 1시, 울산 남구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 현장. 수은주는 32도를 가리켰다. 연일 38도에서 내려오지 않던 최고 기온이 20일에는 34도로 떨어졌다. 21일에는 여기에서 2도 더 떨어진 셈이다. 고사동은 지난 8일 오후 2시 기온이 40도까지 올라 역대 최고 폭염을 기록했다. 

'울산 고사동 40도'는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이곳 건설 현장에 오니 왜 그토록 더운지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건설현장 바로 옆에는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SK에너지가 있다. 일년 365일 연료를 때며 공장을 가동하니 그 열이 옆 건설현장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산을 깍아 흙만 보이는 1만여 평의 황량한 건설현장은 내리쬐는 태양열이 복사돼 체감온도를 더 높였다.

폭염에도 일하는 건설노동자

울산 남구 고사동 480-6번지 오후 1시, 막 점심식사를 마친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내리 쬐는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한쪽에서는 철근을 연결하는 사람, 또 한쪽엔 망치질을 하는 목수들이 삼삼오오 짝을 맞춰 묵묵히 일했다.

이곳은 국내 최대 수소가스 공급업체인 (주)덕양이 1000억 원을 들여 3만3000㎡ 부지에 수소가스 시간당 5만N㎥, 탄산 하루 300t, 스팀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건설하는 현장이다.

지난 6월 27일 착공식을 가졌으니 공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다. 50여 명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사상 최고로 덥다는 올 여름 두 달을 이곳에서 고스란히 보낸 셈이다.

현장 소장 김씨가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장 소장 김씨가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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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데, 폭염이 유독 심한 날에는 오전 6시 출근해 오후 4시에 마치기도 한다. 1시간 일하고 10분 휴식, 폭염이 심할 때는 30분 일하고 10분을 쉰다.

건설현장을 둘러본 지 한 시간이 흘렀다. 작업자들이 급히 천막이 설치된 휴게실로 향했다.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김아무개(55)씨는 목수일을 한 지 27년 됐다고 했다. 그는 "덥지 않느냐"는 질문에 "언론에서 고사동이 40도라고 하던데, 우리에게는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여름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겨울과 여름 중 언제가 일 하기 낫느냐"는 질문에 "겨울에는 장갑을 끼고 옷을 두껍게 입으면 견딜 수 있는데, 여름은 맥을 못추니 힘들다"며 "처음 일하러 오는 사람은 나무를 들고 10미터만 움직여도 맥을 못추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목수 기술자들은 하루 일당으로 17만 원 가량 받는다고 한다. 현장소장 김아무개(53)씨는 "울산의 임금이 1만 원 높고, 부산 등에서는 16만 원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언론에 '고사동 40도'라는 보도가 나온 후 일손이 모자라 부산 쪽 작업자를 구하려 해도 쉽지가 않단다. 김 소장은 "언론에서 너무 겁을 줘 울산에 일하러 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천막으로 오가는 시간을 빼면 막상 그늘에 앉아 쉬는 시간은 5분 가량. 어떤 이는 담배를 두 대 연달아 피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한 일용직은 "하루 7만 원을 받는데, 직업소개소를 통해 왔기 때문에 1만 원을 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목수에 비해 임금 차이가 나는데 서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건설현장이든 어디든 다 마찬가지 아니냐, 기술이 없으니 임금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목수 김씨는 "하루 17만 원을 받으면 꽤 큰돈을 모으겠다"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일년 365일 중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240일을 채우기 힘들다"며 "세금과 건강보험 등 각종 공과금을 제하면 실제로 손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현장 옆에 있는 SK에너지
 울산 남구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현장 옆에 있는 SK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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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형편이라고 한다. 울산 곳곳에는 건설 현장이 있어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산과 대구 등 다른 도시는 건설경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휴식시간이 끝났다. 다시 현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작업복 뒤에는 하얀 소금꽃이 펴 있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때는 며칠 휴무를 하면 안 될까? 현장 소장에게 물으니 그는 "건설현장은 공사기간이 정해져 있어 공기를 맞추려면 쉬는 날이 없다"며 "수소가스를 생산하는 특수장비를 장착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그때까지 공사를 끝내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염이 심할 때는 잠시 일을 멈추고 노동자 전체가 휴게실에서 안전관리 교육을 받는다"며 "올해는 특히 더운 날이 이어져 힘들었는데, 대신 비가 오지 않아 근근히 공사기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모 안 쓰면 현장 출입 불가

현장 소장의 안내로 건설현장 곳곳을 둘러 봤다. 기자도 예외 없이 안전모를 써야 했다. 곳곳에서 '안전'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10분간 쉴 수 있는 휴게실도 '5분안전교육장'이라고 씌어 있었다. 휴식시간을 맞아 담배를 한 대 피려 해도 안전관리자가 옆에 앉아 안전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곳은 다른 건설현장에 비해 작업 환경이 양호한 편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남여 구분이 된 화장실을 갖췄고 세면시설도 있다. 식사는 에어콘이 나오는 큰 컨테이너 박스 휴게실에서 하는, 점심은 뷔페형이다.

5분 휴게실에는 소금이 비치돼 있다. 소금통에는 "나트륨과 포도당 성분이 많아 전해질을 공급한다"고 적혀 있다. 안전관리자는 때때로 이 소금을 작업자에게 권한다.  

현장소장은 "이곳은 다른 현장보다 작업시설이 양호한 편이다"며 "점심을 땅바닥에서 먹는 현장도 있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고사동 건설현장에 마련된 간이 휴게실. 5분 안전교육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울산 남구 고사동 건설현장에 마련된 간이 휴게실. 5분 안전교육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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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 현장에 마련된 화장실. 남여 구분이 됐다
 울산 고사동 수소공장 건설 현장에 마련된 화장실. 남여 구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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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곳곳에 안전망이 설치돼 있다. 현장 소장은 "안전망을 하나 치는데 100만 원이 든다"며 "하지만 돌이 굴러와 혹시 작업자가 다치면 더 큰 손실을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종종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러 오는데, 외국인근로자에게는 특별안전교육을 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한다"며 "의사소통이 어렵다보니 사고가 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곧 울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폭염이 다소 수그러든다고 한다. 건설현장 곳곳을 둘러보다 문득 '40도 폭염에서 일한 건설현장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울산 고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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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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