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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아래 시커먼 탄가루 가라앉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습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먹는 도시락, 어떤 삶의 맛이 날까요?
▲ 식사 희미한 불빛 아래 시커먼 탄가루 가라앉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습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먹는 도시락, 어떤 삶의 맛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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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 벤또 뚜껑 물 한 모금에 가족들 얼굴 떠올고. - 태백석탄박물관 화제(畵題) 중에서

갱도 입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베이터 앞입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그 아래 예쁘장한 아이가 간절히 기도하는 그림이 낯익습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립니다. 세 아들과 아내가 망설임 없이 어두운 갱도를 향합니다.

엘리베이터 안, 빨간 불빛이 유난히 빛납니다. 불빛이 숨 가쁘게 숫자를 바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높아집니다. 지하 갱도로 내려가는 깊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공포의 숫자'입니다. 실제로는 고작 3층에서 내려가는 길인데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니 깊은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살기위해 어둠속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안전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입니다.
▲ 안전 살기위해 어둠속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안전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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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이 숨 가쁘게 숫자를 바꿉니다. ‘공포의 숫자’입니다. 리베이터가 지하 400미터를 지나 끝없이 내려갑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숫자가 멈췄습니다.
▲ 지하 불빛이 숨 가쁘게 숫자를 바꿉니다. ‘공포의 숫자’입니다. 리베이터가 지하 400미터를 지나 끝없이 내려갑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숫자가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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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제 손을 꽉 움켜쥡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400미터를 지나 끝없이 내려갑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숫자가 멈춥니다. 문이 열리고 어둡고 좁은 갱도가 눈앞에 길게 펼쳐집니다. 지하 특유의 습한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옵니다. '체험갱도관'에 도착했습니다. 막내 표정이 굳어집니다.

곧 울음보 터뜨릴 기세입니다. 막내가 갱도에 발 들이자마자 다짜고짜 집에 가자고 조릅니다. 애써 달래며 긴 터널을 지났습니다. 얼마쯤 걸었을까요? 희미한 불빛 아래 양은 도시락 먹는 광부가 보입니다. 마네킹으로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 참 안쓰러워 보입니다.

지하 900미터에서 먹는 도시락, 어떤 삶의 맛이 날까요?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의 삶, 참 팍팍해 보입니다. 갱도 지나며 어둠속 삶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 구석이 아려옵니다. 삶의 짐 지고 깊은 어둠에서 희망을 캐는 아버지 모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첫새벽 어둠 뚫고 여섯 시간 내리 달려 태백시에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에 닿았습니다.
▲ 태백석탄박물관 첫새벽 어둠 뚫고 여섯 시간 내리 달려 태백시에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에 닿았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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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최고 성수기... 도로 막혀 개고생?

지난 8일 오전 4시, 곤히 잠든 세 아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금쪽같은 3일간의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이번 여행, 그야말로 대장정입니다. 좀 달려야하죠. 남쪽 끝 전남 여수에서 출발해 남한 최북단 강원도 화천까지 가야 합니다. 집 떠나기 전 사람들로부터 불편한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다양하고 심각한 목소리를 대충 묶으면 두 종류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굳이 그 먼 곳까지 가서 휴가 보내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과 "여름휴가 최고 성수기라 오고가며 도로가 꽉꽉 막혀 개고생 한다"는 타박이었죠. 안타깝지만 저는 두 의견에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굳이 해답 찾을 필요 없었고요. 그야말로 '닥치고 달려'보자 다짐했지요. 길 떠나는데 거리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더군요. 어딘가 떠난다는 자체가 이미 휴가 아닐까요? 또, 교통체증이 심하다는데 남보다 조금 일찍 부지런을 떨면 그만입니다. 하여, 시답잖은 고민 멀리 던져버리고 태백으로 향했습니다.

‘검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 벤또 뚜껑 물 한 모금에 가족들 얼굴 떠올고’ -태백석탄박물관 화제(畵題) 중에서 -
▲ 삶 ‘검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 벤또 뚜껑 물 한 모금에 가족들 얼굴 떠올고’ -태백석탄박물관 화제(畵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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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삶의 희망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 막장사람들 어둠속에서 삶의 희망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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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 닿기 전에 태백시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둘러 볼 참입니다. 때문에 첫새벽 어둠 뚫고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여섯 시간을 내리 달리니 오전 10시 30분, 머리가 조금 어지러울 즈음 박물관 밑 주차장에 닿더군요. 아침 굻고 줄기차게 달린 터라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식사시간입니다. 뱃속에 뭔가 채워야 제대로 눈 뜨고 구경이라도 할 판입니다. 천리 길 힘차게 달려온 차 옆에 자리를 펴고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 먹습니다. 당연히 아이들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입속에 밀어 넣습니다.

바위에 화약 넣을 구멍 뚫는데 쓰던 ‘착암기’는 기관총처럼 보입니다.압축공기로 움직이는 휴대용 채탄기계 ‘콜픽’은 얼핏 보면 총으로 착각하겠더군요.
▲ 착암기 바위에 화약 넣을 구멍 뚫는데 쓰던 ‘착암기’는 기관총처럼 보입니다.압축공기로 움직이는 휴대용 채탄기계 ‘콜픽’은 얼핏 보면 총으로 착각하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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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은 광산구호대가 출동하는 모습 결코 고 싶지 않겠지요. 지금도 강원도 태백 장성, 삼척 도계, 전남 화순 영업소에서는 약 800여명의 광부들이 지하 900미터에서 30도에 가까운 더위와 싸우며 석탄을 캐고 있습니다.
▲ 광산구호대 광부들은 광산구호대가 출동하는 모습 결코 고 싶지 않겠지요. 지금도 강원도 태백 장성, 삼척 도계, 전남 화순 영업소에서는 약 800여명의 광부들이 지하 900미터에서 30도에 가까운 더위와 싸우며 석탄을 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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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앙상한 볼,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휴가인 만큼 그럴싸한 곳에 돗자리 펴고 느긋하게 음식 맛보면 좋았을 텐데 마땅한 장소가 없습니다. 또, 특별히 움직일 마음도 안 생깁니다. 때문에 그 자리에 눌러앉아 대충 식사를 했는데 다행히 기온은 도와줍니다. 한 여름인데도 박물관 주변은 참 시원하더군요.

밥 먹은 곳이 해발 800미터입니다. 춥지는 않더라도 더위가 올라오다 지칠 만한 높이입니다. 음식 양껏 먹은 후, 석탄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오르막길, 무더위에 걸었더라면 짜증깨나 날 경사인데 크게 덥지 않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상쾌합니다. 한 여름에 상쾌한 기분 맛보니 특별합니다.

그렇게 두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눈부신 보석도 구경했습니다. 오래된 화석도 만져봤고요. 지구 밖에서 날아온 신기한 운석도 만났습니다. 신기하고 즐거운 추억이었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는데 박물관 벽에서 만난 광부 모습입니다.

핏방울보다 진한 땀방울이 ‘소금꽃’으로 피던 곳입니다.
▲ 작업 핏방울보다 진한 땀방울이 ‘소금꽃’으로 피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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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부들은 전사(戰士)로 불렸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광부들 위령탑에도 ‘산업전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 위령탑 당시 광부들은 전사(戰士)로 불렸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광부들 위령탑에도 ‘산업전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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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캐는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한 조각인데 광부의 앙상한 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렵던 시절 전쟁 같은 삶을 살아냈던 아버지 모습이 벽에 박혀 있더군요. 당시 광부들은 전사(戰士)로 불렸더군요. 탄광에서 쓰던 도구들도 흡사 무기 같았습니다.

바위에 화약 넣을 구멍 뚫는데 쓰던 '착암기'는 기관총처럼 보였고 압축공기로 움직이는 휴대용 채탄기계 '콜픽'은 얼핏 보면 총으로 착각하겠더군요. 탄광에서 사고로 죽은 광부들 위령탑에도 '산업전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석탄은 전쟁터 총알 같았나 봅니다.

핏방울보다 진한 땀방울이 ‘소금꽃’으로 피던 곳입니다.
▲ 작업 핏방울보다 진한 땀방울이 ‘소금꽃’으로 피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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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시커먼 구덩이 속, 전쟁터로 서슴없이 내려갔습니다. 하루의 먹을거리와 미래의 희망,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묵묵히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광부 아버지들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시커먼 구덩이 속, 전쟁터로 서슴없이 내려갔습니다. 하루의 먹을거리와 미래의 희망,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묵묵히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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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인생' 눈물겹도록 긍정적인 표현

화려한 보석과 신기한 화석들 속에 검은 석탄 캐는 광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갱도에서 희미한 불빛 아래 시커먼 탄가루 가라앉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었습니다. 땀 흘려 캐낸 석탄으로 선진국이라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얼굴에 검은색 석탄 자국 선명한 아버지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들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시커먼 구덩이 속, 전쟁터로 서슴없이 내려갔습니다. 하루의 먹을거리와 미래의 희망,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묵묵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던 게지요.

핏방울보다 진한 땀방울이 '소금꽃'으로 피던 곳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내려왔습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엘리베이터 앞 그림 속 주인공 이름이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어린 사무엘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광부 아버지들은 사무엘이 기도하는 모습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마음 알 길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빗대 '막장인생'이라 말합니다. 저에게 '막장'은 이제껏 부정적이던 개념이었죠. 하지만 박물관 나선 이후 눈물겹도록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강원도 태백 장성, 삼척 도계, 전남 화순 영업소에서는 약 800여 명의 광부들이 지하 900미터에서 30도에 가까운 더위와 싸우며 석탄을 캐고 있습니다. 깊은 곳, 어둠속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태그:#태백석탄박물관, #강원도, #광부, #탄광,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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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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