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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팀을 '전차군단'으로 언급할 만큼, 독일은 철도 기술의 선진국이다. 특히 오랫동안 독일은 지정학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동서유럽의 교착점이 되었던 지역이라 19세기 초반부터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철도가 발달했다. 이는 지멘스(Siemens) 및 당시 독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철도 기술의 발전과 석탄이 주력이 된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독일의 고속철도인 ICE는 개발도상국에서 도입하고 싶은 기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인츠역 파행 사태

마인츠 중앙역으로 향하는 S-Bahn의 운행취소를 알리는 독일철도의 공문. 8월 30일까지 마인츠 중앙역으로 향하는 S8은 비스바덴으로 우회하여 운행한다.
 마인츠 중앙역으로 향하는 S-Bahn의 운행취소를 알리는 독일철도의 공문. 8월 30일까지 마인츠 중앙역으로 향하는 S8은 비스바덴으로 우회하여 운행한다.
ⓒ 독일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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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일 철도에 긴축정책이 적용되면서 최근 파행 운행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 12일  마인츠 역으로 향하는 열차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해서, 마인츠 주민들과 이곳으로 향하는 독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관련 열차들이 30일까지 축소 운행 계획을 밝힌 상태다. 특히 마인츠역의 경우 금융도시인 프랑크푸르트와 에스반(S-Bahn, 서울 지하철 1호선 국철과 비슷한 개념)이 연계돼 이곳으로 통근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표면적인 원인은 마인츠 중앙역에 근무하는 3명의 휴가간 노동자와 병가를 낸 5명의 노동자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총 15명의 노동자들은 주로 선로신호 및 변경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안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와 관련돼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자유민주당(FDP)의원이자 사무총장(Generalsekretär)인 패트릭 되어링(Patrick Döring)의 경우 노동자들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했다. 하지만, 독일 철도교통노동조합(EVG: Eisenbahn und Verkehrsgewerkschaft) 의장인 알렉산더 키르히너(Alexander Kirchner)는 "동료들의 휴가가 시급하다"며 복귀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키르히너 의장은 마인츠뿐만 아니라 독일 주요 전철역사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언급하며, 독일철도 주식회사(Deutsche Bahn AG: 이하 독일 철도) 수뇌부에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이를 보는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어떨까? 대다수 언론의 경우 독일 철도의 긴축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독일 야당인 사회민주당(SPD)과 동맹90/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여당인 기민당(CDU)을 압박하고 있다.  9월 22일에 있을 총선과 맞물려서, 두 야당은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특위를 더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휴가 간 노동자의 복귀보다는 독일 철도의 인력확충 문제 및 재정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긴축정책으로 인한 서비스 저하 및 고장 사례 증가가 불만을 키우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베를린도 지난 2010년-2011년 겨울 에스반의 파행운행으로 몸살을 겪었다. 승객들은 영하 15도 추위에 플랫폼에서 벌벌 떨며 20분 간 전철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베를린 에스반 파행사태는 마인츠 역의 인력문제와 비교해 차이가 있다. 파행 이유가 한파로 인한 기술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도 근원을 따지면 독일 철도의 긴축정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성격이 아예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뉴스프로그램인 '타게샤우(Tageschau)'는 12일 방송에서 이 문제를 첫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2011년 겨울, 베를린의 기억

2010년- 2011년 겨울의 기억으로 인해, 매년 겨울이 되면 필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에스반보다는 지하철이나 전차 혹은 버스를 이용한다. 에스반의 불규칙적인 운행과 달리 지하철이나 버스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지하철 역 및 정류장에 게시된 승차시간에 맞게 잘 도착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이유는 관리주체에 있다. 독일 철도가 관리하는 에스반과 달리 지하철, 전차 및 버스는 베를린 교통국(BVG, Berliner Verkehrsbetriebe)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1년 겨울 열차파행사태로 인해 베를린 주민들은 에스반 계약 주체를 베를린 교통국으로 바꾸라고 탄원했지만, 이미 행정적으로 독일 철도와 2017년 12월 14일까지 계약을 연장한 상황이라 요구를 관철시킬 수 없었다.

2010년-2011년 에스반 파행사태의 표면적인 원인은 예기치 않은 폭설이었다. 2011년 1월 10일 자 <슈피겔>에 따르면 이로 인해 1200건의 동력모터 고장사태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 갈아야 할 열차 바퀴의 부족사태로 인해 1134량의 객차 중 426량만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초 에스반 순환선의 경우 출퇴근시간 매 5분 간격에서 10분 간격으로, 평시에는 매 10분 간격에서 20분 간격으로 긴급운행 되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베를린 에스반 전철. 왼쪽이 구형 480모델(BVG-Baureihe 480), 오른쪽이 신형 481모델(DB-Baureihe 481)이다. 481모델은 2009년 당시 바퀴 및 브레이크 시스템 문제로 부품 교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비인력의 부족 및 폭설과 한파로 인한 고장으로 2009년-2010년 및 2010년-2011년 겨울, 에스반은 파행운행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운행이 정상화됐지만 여전히 481모델 정비인력이 부족해 순환선의 경우 구형인 480모델의 운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베를린 에스반 전철. 왼쪽이 구형 480모델(BVG-Baureihe 480), 오른쪽이 신형 481모델(DB-Baureihe 481)이다. 481모델은 2009년 당시 바퀴 및 브레이크 시스템 문제로 부품 교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비인력의 부족 및 폭설과 한파로 인한 고장으로 2009년-2010년 및 2010년-2011년 겨울, 에스반은 파행운행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운행이 정상화됐지만 여전히 481모델 정비인력이 부족해 순환선의 경우 구형인 480모델의 운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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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2005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철도는 긴축정책을 바탕으로 7개 차량기지 중 3개 기지를 폐쇄한다.(이 중 프리드리히스펠데 차량기지는 2009년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이로 인해 총 인력은 2003년과 비교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최신 전철모델이었던 481형 열차(Baureihe 481)의 바퀴정비를 담당할 정비인원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2009년의 경우에는 이 열차의 브레이크 교체도 필요했는데, 겨우 260량의 열차만 교체가 완료된 상황이었다. 결국 2009년-2010년 겨울에 파행운행을 겪었고, 2010년-2011년 겨울에도 똑같이 파행운행을 겪었다.

당시 객차부족사태는 이용률이 낮았던 S45 및 S85노선 운행이 중단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순환선 열차를 보면 최신형인 481형 열차가 줄어든 대신, 구형인 480형 열차운행이 부쩍 늘어났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에스반 베를린의 손해도 2009년 9200만 유로, 2010년 2억 2220만 유로로 정점을 찍었다. 다행히 순환선 및 남북 및 동서 에스반 운행은 2011년-2012년에는 원활히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복구는 이번 초여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실추된 독일철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마인츠 및 베를린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독일 철도의 예산 및 인원감축이 열차운행에 있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여객 소비자 단체인 프로반(Fahrgastverband Pro Bahn)의 마티아스 오멘(Matthias Oomen)은 12일 방영된 '타게샤우' 인터뷰에서 현재 이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독일 철도의 주인인 독일 연방정부에 있다고 언급했다.(독일은 16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이다.) 2011년부터 독일철도는 수익을 얻든 손해를 입든 매년 100% 주주인 연방정부에 약 5억 유로(약 7500억) 정도를 배당했다.

배당금으로 인한 추가 손해는 독일철도가 긴축정책을 펼치게 된 요인이 되었으며, 이는 편제인원의 축소 및 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졌다. 오멘씨는 더 나아가 "노동자 휴가 복귀를 재촉하기에 앞서 패트릭 되어링을 위시한 정치인들이 긴급복귀를 해서 배당금을 철도투자를 위해 제대로 처리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한편에서는 철도 노동력 공급 문제로 접근하는 전문가도 있다. SCI교통의 컨설턴트 마리아 레넨(Maria Leenen)은 ARD와의 인터뷰에서 통일 이후 1994년 헬무트 콜의 기민당-자민당 연립정권이 서독의 독일 연방철도(Deutsche Bundesbahn)와 동독의 독일 제국철도(Deutsche Reichsbahn)를 주식회사의 형태로 합병했을 때 인력이 남아돌았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남아도는 인력으로 인해 젊은 인력들에 대한 충원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근무자의 평균연령 및 병가 건수를 증가시키는 문제를 가져왔다는 것. 또한 철도관제사의 경우 항공관제사처럼 고도의 직업훈련이 필요한데, 항공관제사와 비교해서 1/3수준의 월급을 받는데다가 근무시간도 더 많아 이에 대한 처우개선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마인츠 역 사태로 인해 8월 14일 독일철도와 철도노동조합의 긴급회의가 있었다. 철도노동조합의장 알렉산더 키르히너는 이번 회의는 성공적이라고 언급했으며, 10월 15일까지 독일철도 내 400개 조직에 대한 감사가 실시되고,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11월 4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인원편제 및 충원이 다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현재 없지만, 5억 유로의 배당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현재 도로투자에 집중된 교통정책을 어떻게 개선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과 마인츠 역 사태로 실추된 독일 철도가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태그:#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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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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