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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 이승만 시대 가혹한 경찰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64쪽, 16,000원 
*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 병영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91쪽, 16,000원
 *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 이승만 시대 가혹한 경찰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64쪽, 16,000원 *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 병영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91쪽, 16,000원
ⓒ 유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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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 이승만 시대 가혹한 경찰국가>와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 병영국가>의 저자인 임영태 선생은 1978년 대학에 입학했다. 집 형편을 생각하면 그는 반드시 국립대학에 가야 했지만, 서울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립대학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그의 세 살 아래 여동생은 고등학교도 못 갔다. 어머니가 "오빠를 대학에 보내야 하니 네가 양보하라"고 하셨다는 걸 임영태 선생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동생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부끄러움, 미안함, 죄책감, 안쓰러움…….
임영태 선생이 여동생에게 진 빚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후 그의 여동생은 마산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서울로 왔는데, 그때 마침 임영태 선생이 시위를 주동해서 감옥에 가는 바람에 옥바라지를 고스란히 도맡았다. 그의 여동생은 당시 직장에서 주야 2교대 근무를 했는데, 야간 근무를 한 주에는 그에게 교도소로 면회 와서 수발을 들어주었다. 당시 갓 스무 살이던 임영태 선생의 여동생은 교도소에서 그를 면회하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지금도 임영태 선생은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 근무 당시 임영태 선생을 만났다. 당시 그는 진실위 보고서 발간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고 한국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의 발간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진실위 보고서의 한 자, 한 줄은 그의 꼼꼼한 심혈을 기울인 손질과 정성을 통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임영태 선생은 구로와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관계했다. 교도소를 오가는 그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한국현대사에 관한 글을 쓰는 현장의 역사가였다. 그런 임영태 선생이 지난 7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관한 책,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 이승만 시대 가혹한 경찰국가>와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 병영국가>, 2권을 발간했다. 지난 주말(3일) 노동운동가이며 재야역사가인 임영태 선생을 만났다. 다음은 임 선생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승만 찬양자들, '이념' 편향에 빠져 외눈으로 역사 본다


저자 임영태
 저자 임영태
ⓒ 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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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어느 수구언론에서 이승만을 일컬어 "거대한 생애"나 "건국의 아버지"로 크게 특집으로 다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승만 시대, 특별히 한국전쟁기와 50년대를 "부패하고 부조리한 세상이었"고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세상을 불신했"으며 "내 부모님 세대는 불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다" 고 적었다. 이승만에 대해 이런 엇갈린 평가가 제기되는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이승만 찬양자들은 '이념의 편향'에 빠져 역사를 외눈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승만의 가장 주요한 공적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성공했으나 북한은 낙후한 '실패국가'가 됐으니,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극단적인 반공이념주의에 빠진 잘못된 역사 해석이다. 이승만은 좌익척결이라는 명목으로 4.3 제주사건, 여순사건 등에서 숱한 민간인을 불법 학살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나아가 6.25 전쟁 시기에는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 학살했고,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수만 명이 굶어죽고 얼어 죽는 인간지옥의 참상을 연출했다. 이승만의 민주주의 파괴행위와 인권탄압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 같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이승만의 공적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념편향의 사고 때문이다."   

- 일본 극우정치인들이나 우리나라 뉴라이트 측에선 일제식민지 지배가 한국인들의 삶을 나아지게 했다고 종종 강변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뉴라이트 가운데는 유수의 대학 교수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그들은 주로 일제시대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일제시대 한국의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인의 삶이 나아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질을 망각한 역사왜곡이다. 일제시대 한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점이다. 일제가 한국인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의 산업화를 추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세력들은 이런 사실은 망각, 누락, 왜곡, 축소한 채 숫자놀음만 벌인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해방 후 친일파들이 이승만 정권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과도 맥락이 닿는다. 이들은 친일파든 뭐든 중요한 것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은 '건국절', '이승만 국부론', '반공국가론', '박정희의 근대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 왜곡의 출발점이다. 통계와 숫자를 동원한 엄밀한 학문적 검증 행위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정치적, 이념적 선전행위다."

- 책에서 지금도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이 헌법위에 군림하면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좀 더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의 인권이 유린되고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경찰과 정보기관의 사찰과 탄압이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정신의 훼손행위에 해당된다. 이러한 인권탄압의 최일선에는 항상 국가의 정보기관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과 방첩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경찰,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와 경찰이 그것이다. 이들 국가기관은 형식적으로는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법의 통제를 벗어나 활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국가보안법 또한 형식적으로는 헌법 아래 존재하는 여러 법률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면서 '헌법 위의 존재'처럼 군림해왔다.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빌려다가 만들었고, 무엇보다 처벌대상에 대한 정의와 처벌규정이 모호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 뒤 이승만 정권 아래서 개악되었고, 박정희 군사 정권 아래서는 반공법과 함께 존재했으며, 전두환 정권 시절 반공법과 통합되면서 개악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민주화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몇몇 조항들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져 개정과정을 거쳤으나 끝내 폐기되지 않고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가 됐지만 아직도 이를 거부하는 수구냉전세력이 있다."

- 이승만과 이승만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과 한국사회에 남긴 유산은 무엇이라고 평가하나?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일차적으로 친일파 미청산과 극단적인 반공주의와 민중학살을 지적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북한의 침략을 막지 못했고, 전쟁이 발발하자 국민을 두고 도망쳤다. 전쟁과 함께 국민보도연맹원을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국민방위군사건으로 수만 명의 청장년 목숨을 잃게 만들었으며, 공산군 토벌 과정에서 대량의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학살했다. 또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무하고 생활을 보살피기 보다는 정권유지를 위한 권력투쟁에만 골몰했다. 그리고 끝내는 국민의 저항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이 한국사회에 남긴 부정적인 유산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파괴와 30여 년 간이나 지속될 군부정권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이다. 무력을 동원한 박정희, 전두환의 권력탈취 사고는 이승만에게서 시작되었다. 이승만이 그처럼 헌정파괴와 불법적인 장기집권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후에 군부가 감히 불법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 한국경제, 한국사회는 더 나아졌다

- "박정희 시절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산다. 박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선의의 독재였다"라고 강변하던 외교관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박정희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정희의 공을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제발전을 이야기한다. 결과적이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한국경제가 이 정도로 클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발전이 반드시 '박정희의 역할'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경제개발을 지상의 과제로 삼고 군사작전식으로 해치우는 인적·물적 동원체제가 구축됐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작전식 동원체제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권 탄압, 국가주도의 편중적 자원배분과 관료주도의 불공정한 경쟁관행, 선성장 후분배 원칙에 따른 부의 불평등 분배 등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합법적인 정부를 불법으로 뒤집은 군사 쿠데타,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정치행태, 중앙정보부에 의한 공작정치와 일상적인 인권탄압, 삼선개헌과 유신이라는 헌정파괴를 일삼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은 박정희의 공로라기보다는 국민의 공로다. 우리 국민은 박정희 말고도 그 뒤에 여러 대통령을 만났다. 그 대통령들이 박정희 예찬론자들이 말하듯이 모두 박정희처럼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날로 발전했다.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에도 한국경제는, 한국사회는 나빠지지 않았고 더 나아졌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선의의 독재' 운운은 정말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박정희는 냉혹한 독재자였고, 인권 탄압자였고, 권력에 눈먼 권력의 화신이었다. 선의의 독재 운운하는 사람들이 정말이지 그 시대의 역사기록을 약간이라도 읽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시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고 해서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연좌제'라고 목을 높여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설득력이 있다고 보나?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육친의 딸이다. 그런 사실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독재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교통사고를 내서 어떤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가해자 가족이 사망자 가족에게 가서 사죄하는 것이 상식이다. 설령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법적으로 잘못이 없더라도 사과하고 미안해하고 위로하려 애쓴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 시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건 안했건 상관없이 박정희 유신통치로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나? 물론 그러한 행위는 박정희 유신통치가 잘못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체제에 대해 사과한 것을 보지 못했다. 5.16 쿠데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친의 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신체제나 5.16 쿠데타, 그 밖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힐 필요가 있다. 정치지도자의 역사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지도자, 특히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국민들의 평가대상이다.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도 민주적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유신체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면서 유신체제로 한국 민주주의를 엉망으로 만든 박정희의 육친의 딸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시대의 인권유린과 반민주적인 정치행위에 대해 국민들에게 언급해야 할 것이다."

- 박정희가 우리 현대사에 남긴 깊고 넓은 그림자는 무엇이라고 평가하나?
"박정희는 18년간이나 한국의 최고 통치자로 존재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의 4대에 걸친 집권기간과 맞먹는 기간이다. 그들이 집권한 20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 박정희가 집권한 18년은 이들 네 명의 대통령이 통치한 시대와도 다르다.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가 잔존하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대통령도 우습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시대에는 그랬다가는 큰일이 났다. 그런 시절 한국을 18년간이나 지배했으니 박정희는 당연히 깊고 넓은 그림자를 남겼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지역에 걸쳐 박정희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18년간이나 되는 오랜 기간을 통치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박정희의 권위가 절대화되어 갔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이 사실 그대로가 아닌 미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박정희 통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덕을 본 사람들도 많았다. 장차관과 고위관료, 정치군인과 정치적 공무원, 어용학자들과 여당 정치인, 고위외교관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박정희 시대에 혜택을 보았다. 경제인, 언론인, 이들의 후손들도 있다. 이들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장악한 지배 엘리트로 살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의 상당부분은 그래서 믿을 게 못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근거해 맹목적으로 박정희의 환상을 좇고 있다.

-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도 국정원의 불법적 선거관여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심각한 사태가 초래되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만들어서 지금 박근혜가 민주주의의 뿌리를 파괴하고 대통령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지금의 국가정보원(국정원)을 똑 같은 차원에서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과거의 중정이나 안기부의 잘못된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정원의 18대 대선개입사건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국정원의 근본적인 제도개혁 방안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의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 진실위에서 가장 소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진실위조사보고서 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장장 5년간 총괄했는데, 당시 진실위보고서 발간작업을 지금 돌아보면서 가장 큰 보람과 한계 또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야기 해주기 바란다.
"진실위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2005년에 출범해서 2010년에 끝난 가장 대표적인 과거사정리기관이다. 진실위는 한국전쟁시기의 불법 민간인학살사건과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인권침해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위원회의 공식 활동 결과인 조사보고서 발간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했다. 나는 조사관들의 보고서 작성과 위원회의 의결 과정을 지켜보았고, 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조사보고서 발간을 책임졌다. 그래서 위원회 활동의 전반을 볼 수 있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현장에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 보람된 시간이었다.

진실위 보고서는 지금도 국회도서관에 등에 가면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역사의 진실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사관들의 노력으로, 위원들과 위원회 소속직원과 주변 관련자들의 도움으로 현대사의 어둠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피해자들의 증언이 오롯이 담겨 있는 조사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다. 위원회의 공식보고서는 귀중한 역사의 기록이며, 위원회가 남긴 활동의 족적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위원회 관련 법안이 여야 타협에 의해 마련되었기에 활동 권한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위원회 활동을 백안시 하는 당시의 보수 여당과 보수언론의 위원회에 대한 음해 공작도 계속되었다. 조사관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했으나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서, 또는 관련 자료나 증거를 찾지 못해서 진실규명을 하지 못한 사건도 적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국정원(중정과 안기부), 기무사, 국방부, 경찰, 검찰 등 과거 가해기관의 비협조적인 태도 또한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다.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기관의 후안무치에 분노를 느껴야 했다.

일부 위원의 비상식적인 행위는 위원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명백한 사실과 분명한 조사결과 앞에서도 이를 부정하기에 급급했던 몇몇의 낯 뜨거운 행위는 역사의 왜곡 현장을 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이명박 정권으로 권력이 교체가 있고 난 뒤 위원회의 활동은 어려움이 컸다. 그럼에도 안병욱 위원장 체제 동안에는 큰 문제없이 위원회 활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영조 위원장이 맡은 마지막 1년간의 위원회 활동은 우리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준 기간이었다. 근거가 충분한 경우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건들이 '진실규명 불능'으로 처리되었고, 어떤 경우는 진실규명으로 결정되었다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뒤집히기도 했다. 활동기간이 연장되는 것이 요구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외면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위원회가 요청한 후속조치('과거사연구재단' 설립,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의 배․보상 특별법 제정, 민간인 집단희생 유해발굴과 안장)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반드시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 임영태 1959년 생. 고교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었고, 유신 말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구로와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관계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판과 인연을 맺어 도서출판 푸른나무 기획실장과 편집주간, 도서출판 들녘 기획위원을 지내며 많은 책을 기획·집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현대사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남북한 현대사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2005~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근무하며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다. 지은 책으로《대한민국사 1945~2008》《대한민국 50년사 1, 2》《북한 50년사 1,2》《인류 이야기 현대편 1~3》《인류 이야기 근대편 1~3》《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공저),《1980년대 한국노동운동사》(공저)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 이승만 시대 가혹한 경찰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64쪽, 16,000원
*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 병영국가, 임영태 지음, 유리창, 391쪽, 16,000원



태그:#암영태, #진실위, #김성수, #박정희,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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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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