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님께.

요 며칠 거제의 저도가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내렸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가 놀던 저도로 휴가를 가신 덕분입니다. 저도는 '청해대(靑海臺, 바다의 청와대)'라는 이름의 대통령 전용 별장이 있던 곳인데 청해대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아버님이신 박정희 대통령님 시절 지어졌지요.

저도는 격무에 지친 대통령님의 몸과 마음에 안식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섬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 나고 자라 섬에서 살았고 여전히 섬들만을 떠도는 '섬 여행자'인 나는 섬이 주는 위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심신의 모든 피로를 푸시고 활력을 얻어 오시길 기원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저도에서 휴가 보내는 소회를 밝히셨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그리움이 없겠습니까.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겠지요. 저도 땅 곳곳, 고인이 되신 부모님과의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을 테니까요.

대통령님께서는 또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셨습니다. 변함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저도 자연생태계의 모습에 감탄하시는 소회를 들으니 자연을 사랑하시는 대통령님의 순정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 그런데 저는 저도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 옵니다. 저도의 슬픈 운명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저도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원주민들이 쫓겨난 비운의 섬입니다. 1920년부터 저도는 일본군의 통신소와 탄약고로 사용되었지요. 해방이 되자 잠시 원주민들이 들어와 살았지만 이내 다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54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섬은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972년에는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해군은 함정으로 모래를 실어다 200미터의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인공 백사장에도 대통령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어 있겠지요.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장소가 누구에게는 한이 깃든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가 대통령의 별장이 되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섬에서 쫓겨난 원주민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제도의 어민들 또한 오랜 세월 많은 손해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대대로 어로를 하며 살았던 저도 일대 바다가 출입금지 구역이 되면서 어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밥줄이 끊긴 것이지요. 어린 박근혜 대통령님과 가족들이 화목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어민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저도를 방문할 때면 저도와 가까운 장목면 유호리 마을 일대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습니다. 거기다 마을의 집들은 불빛 하나 새어나가지 못하게 등화관제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대통령님 가족의 휴가를 위해 주민들은 자기 집에서 감옥같은 생활을 했던 것이지요.

1975년 저도는 행정구역이 아예 거제군에서 해군통제본부가 있는 진해시로 편입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다 1993년 11월 19일 대통령령에 의거 청해대 시설이 해제되면서 같은 해 12월 1일 행정구역도 다시 거제시 장목면으로 환원되었습니다. 청해대는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됐지만 저도는 여전히 국방부가 소유, 관리하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섬 '저도'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거제 시민들은 수차에 걸쳐 저도의 거제시 반환을 요구해 왔습니다. 또 거제권 관광개발계획에 저도를 포함시켜 개발이 가능하도록 시설물과 관리권을 거제시로 이양해 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저도는 여전히 거제 시민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즉에 거제 시민들에게 돌려주지 못한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도 큽니다.

결자해지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께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휴가를 마치시고 저도를 떠나실 때 부디 저도를 거제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십시오. 그동안 어업권 제약 때문에 피해를 봤던 거제의 어민들 피해도 보상을 해주십시오. 그러면 국민들은 섬과 자연과 어민들을 사랑하는 대통령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2013년 8월 1일 강제윤 합장

덧붙이는 글 | 강제윤은 시인, 에세이스트, 섬여행가입니다. <통영은 맛있다><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섬을 걷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태그:#저도, #박근혜
댓글9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