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3 16:55최종 업데이트 23.11.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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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비뿐만 아니라 섬의 물가는 대부분 비싸다. 그동안 정부는 섬 주민들을 위해 생활연료 해상운송비 예산을 지원해 왔으나 내년 예산 전액이 사라져 버렸다. ⓒ 강제윤


이른 추위가 찾아왔다. 올겨울 섬들은 더 추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대다수가 노인들뿐인 섬 주민들은 겨울에도 보일러를 돌리지 못하고 산다. 겨우 전기장판 하나 틀어놓고 냉골에 웅크려 밤잠을 잔다. 낮에도 집이 추워 노인당으로 가서 지낸다. 수입이 적어 기름값, 가스값 등 생활 연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연료비뿐만 아니라 섬의 물가는 대부분 비싸다. 현지에서 나는 물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육지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내륙은 산간벽지 지방이라도 차량 운반비만 붙지만 섬은 해상 운반비가 추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생필품이야 절약하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난방과 취사 등 생활 연료비는 비싸도 안 쓸 수 없다.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는 섬 주민들을 위해 가스, 기름, 연탄 등 생활연료 해상운송비 예산을 지원해 왔다. 그나마 고단한 섬살이를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내년은 정부 지원 예산 전액이 사라져 버렸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 심사 과정에서 해양수산부의 해상운송비 지원과 내용이 행정안전부 연료운반선 건조사업과 중복된다며 예산 16억 원을 전액 삭감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재부의 예산 삭감 이유는 타당하지 않다.

중복되지 않는 예산을 예산중복 이유로 전액 삭감

행안부가 섬 지역에 가스, 석유 등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연료운반선 건조사업 예산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보령시, 군산시, 통영시, 제주특별자치도, 옹진군과 신안군 등 섬이 있는 6개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해 7척의 연료 운반선이 건조됐다. 이들 지자체 섬은 운반선으로 생활 연료가 운반되어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행안부의 연료 운반선 건조사업은 2020년에 이미 완결된 사업이다.

그런데 행안부의 연료운반선 건조 사업비를 받지 못한 섬이 여전히 많다. 울릉군, 완도군, 진도군, 강화군, 거제시, 남해군, 부안군 등에 속한 수많은 섬이 남아 있다. 이들 섬에 연료운반선 건조 사업비가 지원될 계획도 전혀 없다. 해수부의 생활연료 해상 운송비 예산은 행안부의 연료운반선 건조사업 예산을 받은 섬들이 아니라 행안부 예산 혜택을 받지 못한 섬들을 위해 세워진 예산이다.

그러니 기재부가 2020년에 완결된 예산을 두고 예산이 중복된다고 판단한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따라서 중복되지도 않는 예산을 예산중복이란 이유로 전액 삭감시킨 기재부는 섬지역 생활연료 해상운송비 예산을 되살려야 마땅하다.

최근 기재부는 생활연료 해상운송비뿐만 아니라 내년도 여객선 준공영제 예산도 올해의 33억 원보다 8억 원이나 줄어든 25억 원으로 삭감시킨 바 있다. 기재부의 섬 지역 예산 삭감이 약자인 섬사람들은 함부로 대해도 좋다는 섬에 대한 차별적 시선 때문이 아니길 바란다. 긴축 예산 기조 속에서 강자들의 예산은 삭감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들 예산만 삭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해상영토 수호하는 섬 주민들
 

섬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 소중한 해상영토인 배타적경제수역이나 지하자원의 보고인 대륙붕 등을 잃게 될 수 있다. 1980년 987개였던 유인도가 2023년 현재는 463개밖에 남지 않았다. ⓒ 강제윤


우리 섬들은 육상영토보다 4.5배나 넓은 해상 영토의 중심에 있다. 섬 주민들이 있어서 해상영토가 지켜지고 있다. 국제해양법의 헌장이라 불리는 UN해양법협약 121조 3항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섬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면 소중한 해상영토인 배타적경제수역이나 지하자원의 보고인 대륙붕 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섬 주민들은 해상영토를 수호하는 해상 민병대인 셈이다.

그런데 월급을 주고 대우해도 모자랄 섬 주민들을 언제까지 차별하고 소외시킬 것인가? 섬 생활이 고달프면 주민들은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섬을 떠나게 된다. 지난 40년 동안 유인도가 524개나 줄었다. 1980년 987개였던 유인도가 2023년 현재는 463개밖에 남지 않았다.

유인도를 없애는 것은 우리 해상 영토를 없애는 일이다. 기재부가 섬 주민에 대한 예산을 삭감시키는 일이 바로 해상 영토를 없애는 일에 다름 아니다. 해상 영토를 없앴다는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기재부는 섬에 대한 예산을 삭감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액시켜야 마땅하다. 생활연료 해상운송비 예산을 즉각 되살려 놓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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