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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행량 때문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운전사들은 풀 숲이나 노상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버스 운행량 때문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운전사들은 풀 숲이나 노상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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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도권 광역급행버스를 모는 운전사 박광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여름에는 버스를 끌고 그늘을 찾아 가로수 밑에서 땀을 닦고 쉽니다. 또 겨울에는 추위에 덜덜덜 떨면서 코트까지 입고 차 안에서 쉽니다. 때문에 여름에는 더위에 지치고, 겨울에는 감기몸살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왜 차고지에 들어가 휴게실에서 쉬지 않느냐고요? 자의든 타의든 차고지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회사 측이 할당하는 근무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종점에서 종점을 오가는 걸 소위 '탕'이라고 하는데요, 회사가 정해준 탕 수를 채우려면 차고지에 들어갈 시간도 빠듯합니다. 그 20분 정도를 아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한 바퀴라도 더 돌려야 이득이니 운전사들만 죽어납니다. 물론 회사 측은 운전사들이 귀찮아서 쉬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차고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럼 운전사들은 어디서 쉬냐고요? 차고지 전에 있는 아파트 단지 둘레나 공원에서 버스를 세워놓고 놓고 쉽니다. 볼일은 어떻게 하냐고요? 가로수나 아파트 풀숲에서 해결을 합니다. 다 큰 어른들이 노상에서 일을 보는 겁니다(관련기사 : 지린내, 똥파리... 사람이 쓰는 곳 맞아?).

그럴 때마다 내 아내나 내 딸내미가 여기를 지나가다가 보면 얼마나 민망할까? 아파트 주민이나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 냄새도 많이 날텐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는 아파트 상가 화장실 등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운전사들이 들락날락하니 화장실 문에 열쇠를 채워 버렸습니다.

화장실도 못 가는데, 사기업이라 어쩔 수 없다?

참다 못한 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경기도청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며칠 전 인권위는 "사기업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경기도로 넘기겠다"면서 지켜보자고 하더군요. 경기도청은 "차고지에 들어와서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당 운수업체에 요청하여 차후 동일한 불편사항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사실 괜찮습니다. 노사합의에 의한 하루 근로시간이 18시간 36분인데 19시간 넘게 일을 더 시켜도, 명절이든 휴가든 가족 나들이든 회장님의 특별 명에 의해 이틀 이상 운전수는 절대로 쉬지 못해도, 제가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회사의 미움을 받아 근로일수에 차별대우 받아도, 회사 관계자가 앞장서서 왕따를 시키는 것도 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돈벌이의 도구가 되어 인격이 무시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우리 운전사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사 관계자한테, 우리 운전사들 화장실과 휴게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했더니 "회사를 위해 시에 민원을 넣어서 1단지 주변에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고 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세상에 어떤 지자체가 특정한 회사를 위해 운전사 화장실을 지어주나요?"라고 했더니 아무 소리도 못 하더군요.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리 운전사도 개, 돼지 같은 짐승이 아닌 사람입니다.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고 10분도 아니고 5분을 쉬어도 좋으니 맘 편하게 차고지에서 쉬고 싶습니다. 이런 바람이 우리한테는 과분한가요?


태그:#버스운전, #쉴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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