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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내버스 2차 파업을 앞두고 송하진 전주시장이 긴급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당시 송 시장은 "버스노조와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시내버스 수입금의 투명성 확보 및 재정지원체계 일원화를 위해 시내버스 현금인식 요금함 도입을 비롯해 환승정류장 조성, 회차지 정비(이동식 화장실 정비 및 휴게실 개선), 유개승강장 및 행선지 LED표시판 설치, 시내버스 보조금 지원조례 제정 등 전주시내버스 운영과 서비스 개선을 위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난 2013년 7월, 전주시내버스의 운영은 개선됐을까?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체불임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버스기사의 삶이라며 절규했던 버스기사들의 노동환경은 개선됐을까?

기자는 지난 13일 '초복' 전주의 대표적인 종점 회차지를 돌며 버스기사들이 이용하는 화장실과 휴게실 등을 둘러봤다. 가장 말초적이면서 기본적인 생리현상이 이루어지는 화장실 환경을 둘러보면 버스기사들의 현재 삶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버스기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전주대 종점 회차지
 전주대 종점 회차지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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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한 번 이용해 보실래요?

전주권 대표적 회차지는 평화동 교도소 옆에 있는 종점과 전주대 종점, 통계청 종점, 송천동 농수산시장 종점이다. 이곳은 평소에도 시내버스 10대 이상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이들 회차지에는 주차장과 식당 등이 마련되어 있다.

농수산 시장 종점을 제외하고 3곳의 종점에는 컨테이너 휴게실도 마련되어 있다. 이들 휴게실에는 다행히 에어컨이 있었지만, 그 외 버스기사들을 위한 배려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전주대 종점에 있는 컨테이너 휴게실
 전주대 종점에 있는 컨테이너 휴게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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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 한쪽에는 TV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유선이나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항상 꺼져 있었다. 통계청 종점의 경우, 대부분의 기사들이 식당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다면 이곳들의 화장실은 어떨까? 전주대 종점과 통계청 종점은 기사식당 안에 있어 관리가 됐지만, 교도소 종점의 화장실은 들어가자마자 지린내가 진동했다. 소변기에 묻은 찌든 때는 화장실이 전혀 관리가 안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주시내버스의 종점은 전주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에서 맡아 관리를 한다.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종점은 위원회에서 고용한 관리자가 약 3일에 한번 반씩 돌며 청소를 맡고 있다. 관리위원회 관리자는 "종점 화장실이 더러운 것은 인정한다. 한 사람이 여러 곳을 관리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가장 큰 종점 중 하나인 교도소(평화동) 종점 화장실
 전주에서 가장 큰 종점 중 하나인 교도소(평화동) 종점 화장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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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여객에서 10년 이상 운전을 한 박명목(가명)씨는 "어딜 가나 버스기사들은 천대받는다. 전주시에 민원도 넣고 불편함을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평화동 종점 회차지에 있는 휴게실 내부 모습. 멀리 TV가 있지만 안테나 등이 없어 나오지 않는다.
 평화동 종점 회차지에 있는 휴게실 내부 모습. 멀리 TV가 있지만 안테나 등이 없어 나오지 않는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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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전주대, 통계청 종점과 비슷한 규모지만, 송천동 농수산시장 종점은 휴게실과 화장실이 없어 버스기사들의 불편함이 큰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12년차 버스기사 김웅진(가명)씨는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만족을 느낀 적이 없다. 전주대와 교도소 종점은 주차장이 좁고, 이곳은 와서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생리현상은 농수산시장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해결했지만, 이마저도 오후 9시면 문을 닫아 생리현상을 해결할 길이 막막해진다.

전주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농수산시장 회차지는 농수산시장으로부터 주차장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농수산물시장이 허가를 안 해줘서 컨테이너 휴게실을 못 놓고 있는 상황인데, 계속 요구하다가 회차지 사용을 못하게 하면 곤란하니 눈치가 보여 말을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천동 농수산시장 종점 회차지. 이곳은 농수산시장으로부터 무상으로 빌려 운영되고 있다. 휴게실 등이 없어 버스기사들이 큰 불편을 느끼는 곳 중 하나다.
 송천동 농수산시장 종점 회차지. 이곳은 농수산시장으로부터 무상으로 빌려 운영되고 있다. 휴게실 등이 없어 버스기사들이 큰 불편을 느끼는 곳 중 하나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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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들은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얼마나 천시받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이날 만난 버스기사들은 기자에게 "어딜 가나 버스기사는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을 버릇처럼 말했다.

"저녁마다 모기 때문에 죽겠어요"

효자동 농협공판장 종점은 회차지가 마련돼 있지 않아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종점 인근에는 족구장이 있어, 퇴근 후 저녁에는 족구동호회 회원들의 차 때문에 버스 주차에 애를 먹는다. 15년차 버스기사 이정웅(가명)씨는 "도로변에 주차를 하다 보니 사고의 위험성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효자동 농협공판장 종점의 휴게실은 가장 최근에 설치됐지만 냉난방 시설이 없어 버스기사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효자동 농협공판장 종점의 휴게실은 가장 최근에 설치됐지만 냉난방 시설이 없어 버스기사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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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최근 전주시가 컨테이너 휴게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에어컨 등을 설치하지 않아 대부분의 기사들이 밖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이정웅씨는 "기자도 보면 알겠지만, 누가 이곳에서 쉬겠나"라고 말했다. 휴게실 안에 소파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 먼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농협공판장 휴게실 내부 모습. 먼지가 쌓여있다.
 농협공판장 휴게실 내부 모습. 먼지가 쌓여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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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가 어서 오라고 인사하는 화장실"

전주권 주요 종점들이 이처럼 관리가 부실한 상황에서 군소 종점들의 상황은 어떨까? 비전대 종점과 35사단 앞 종점을 가봤다.

이곳에는 버스기사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두 곳 모두 문을 연 순간 구토가 나오려고 했다. 각종 오물로 인해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다. 버스기사들이 자신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버스기사는 "똥파리가 어서 오십시오라고 하는 곳"이라고 화장실을 표현했다.

비전대 종점 회차지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 내부 모습
 비전대 종점 회차지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 내부 모습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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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사단 종점은 공터에 버스를 주차해야 하는데, 도로 옆에 있다 보니 오가는 승용차와 충돌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비전대 종점은 학교 측에서 조만간 작은 시설을 마련하기로 했고 사단 앞은 부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35사단 앞 이동식 화장실 내부 모습. 문을 연 순간 구토를 했다.
 35사단 앞 이동식 화장실 내부 모습. 문을 연 순간 구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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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가 대신 청소도 해주고 보조금도 주고"

이날 둘러본 종점들은 하나 같이 관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주시에 따르면 종점 화장실 및 회차지 관리는 관리위원회 소관이다. 그러나 시내버스는 대중교통으로 전주시가 지도·감독을 해야 하지만 관리위원회의 부실 관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전주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8월경 각 종점 청소를 전주시에서 할 예정이다"면서 "관리를 잘하라고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버스기사들의 편리를 위해 회차지 청결유지에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전주시가 청소를 해준다고 해서 관리위원회가 신경을 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마땅히 민간버스회사가 담당해야 할 몫을 왜 전주시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나.

전주시가 한 해 전주시내버스 5개 회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약 120억. 버스파업 이후 부실한 버스회사들에 대한 자정노력이 곳곳에서 제기되며 보조금은 민간버스회사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주시가 보다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도 오랫동안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전주시가 대신 회차지와 화장실 청소를 해준다는 것은 철저한 지도·감독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다.

이날 전주 버스종점 회차지를 둘러본 결과, 버스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민간버스회사의 부실운영과 이를 지도·감독해야 할 전주시가 제대로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빚은 합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기자는 전주시 관계자에게 8월 예정된 종점 청소와 관련된 계획안을 요구했지만, 이 관계자는 "아직 결재가 나지 않았다"면서 계획안 공개를 거절했다. 8월 예정된 종점 청소도 미정이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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