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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6월 18일 청와대를 방문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에어컨 가동 중단으로 저커버그가 땀을 흘리자 "지금 너무 더우시죠"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 6월 18일 청와대를 방문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에어컨 가동 중단으로 저커버그가 땀을 흘리자 "지금 너무 더우시죠"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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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전기 아껴쓰면 좋은 거 아닌가요?"

'블랙아웃(광역정전) 공포감'을 조성해온 전력위기 경보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에 수긍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온 국민이 절전 운동에 동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나쁠 게 없다는 것이죠.(관련기사: 비리만 터지면 '전력 위기'... 이게 다 청와대 에어컨 탓? )

맞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아끼자는 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더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절전 생활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동안 에너지는 엉뚱한 데서 새고 있었고, 정부가 그걸 덮으려고 '블랙아웃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예비력 부족'하면 블랙아웃? '송전선 관리'가 문제

이미 국회에선 1년 넘게 이런 의혹을 계속 제기해 왔습니다. 바로 전정희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관, 김영창 아주대 교수 등이 제기해온 전력계통제어시스템(EMS) 문제가 그것입니다.

전력거래소가 이미 10여 년 전 수백억 원을 들여 블랙아웃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들여와 놓고도 제대로 활용 못 해 에너지를 낭비했고 2년 전 9.15 순환 정전 사태도 불렀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국민이 전기를 마구 써서 전력위기가 온 게 아니라 정부가 시스템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는 거죠.

마침 지난 23일 국회에 열린 간담회에서도 '전광판 예비력'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전력회사가 블랙아웃 막겠다고 길거리 전광판에 예비전력을 표시하고 예비력 모자란다고 비상벨을 울리냐"는 것이죠.

미국 럿거스 대학에서 '미국 대정전(블랙아웃)의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현수 박사(연세대 빈곤문제국제개발원)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대정전은 예비력 부족이 아니라 전력계통 신뢰도 문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2003년 8월 미국 북동부를 암흑에 빠뜨린 대정전도 EMS가 고장 난 상태에서 송전선 탈락으로 발생한 과부하를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현수 박사는 "예비력은 안정적으로 계통운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전력회사별로 예비력 기준을 갖고 운영할 뿐 대정전 예방과 관련하여 대외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경우는 없다"고 말합니다.

국회 추천 EMS기술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영창 교수는 한 술 더 떠 "예비력을 400만kW 이상 확보해야 안심할 수 있다는 건 EMS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전력거래소 임원들이 대정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엉터리 수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EMS 송전선 감시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송전선로 부족이 과부하로 이어져 미국 같은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기술 장벽 뒤에 숨은 '전력 마피아'에 면죄부 줘선 안돼

9.15 정전 사태 이후 지하철역 등 공공시설 곳곳에는 '전력위기'를 내세워 에어컨 끄기 등 절전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안내문이 붙고 있다.
 9.15 정전 사태 이후 지하철역 등 공공시설 곳곳에는 '전력위기'를 내세워 에어컨 끄기 등 절전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안내문이 붙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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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용이 어렵습니다. 그동안 EMS 문제가 언론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죠. 그래도 이 보도가 나간 뒤 한 독자가 "전력정책과 규제기구들이 전력망과 그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지 흥미롭게 보여주는 기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전력 예비력 개념과 계산 방식을 둘러싼 양쪽의 상반된 시각이 '과학기술학적 관점에서 흥미진진한 사례'라는 겁니다. 그래도 이분은 이 분야에서 배경지식이 있는 축에 들 겁니다.   

문제는 기술이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정부와 국회 쪽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만한 전문가 집단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전문성도 문제지만 각 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들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거래소 등에서 연구용역을 받는 상황에서 이른바 '전력 마피아'가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전정희 의원이 수십억 원이 필요한 외국 전문가 검증을 요구했을까요.

이는 원전 부품 비리 온상으로 떠오른 '원전 마피아'와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정부와 공기업, 민간기업,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 끈끈한 유착이 온갖 불합리한 관행과 비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죠. 원전 비리 못지않게 전력 계통 문제에도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번엔 선을 분명하게 긋겠습니다. 자발적 절전, 필요합니다. 탈원전 시대에 대비해서라도 미리미리 절전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평소 몸에 익은 절전 습관 탓에 청와대 에어컨을 끄는 거라면 상관없습니다. 다만 예비력 부족과 '블랙아웃 공포감'을 절전을 활용하는 건 곤란합니다. 자칫 '전력 마피아'와 '원전 마피아'들에게 훌륭한 면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전력위기, #블랙아웃, #예비력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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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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