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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척결'이라는 구호 하에 국민을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반민주적인 작태까지 저질러 놓고도 대북심리전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국정원이 스스로를 정권보위부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원리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한 헌법유린 사태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지난 5일 배재대학교(대전광역시 도마동) 교수 17명이 발표한 시국선언문 중 일부다. 시국선언문 초안을 쓰고 참여교수를 모으는 일은 주도한 이는 이 대학의 김종서 법학과 교수다. 헌법을 전공한 그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또 수년 째 대전충남민언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정원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파괴의 결정판"

김종서 교수
 김종서 교수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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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찾은 그의 연구실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듯 수많은 자료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헌법유린', '민주주의 파괴의 결정판' 등의 표현으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데 열중했다. 헌법을 연구해온 학자에게 '헌법유린' 이라는 단어보다 강도 높은 단어가 있을까?

그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국정원이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을 해체할 것인지 아니면 개선할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라며 "유지할 경우에도 '민주적 통제아래 두느냐 마느냐가 핵심쟁점'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대통령의 입에서 국정원 근본개혁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같은 처방이 나와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의 유일한 감독자인 대통령이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방조이자 묵인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의 국정원 선거개입 보도에 대해서는 "조중동과 방송을 봐서는 시국선언이나 수만 명이 모이는 촛불집회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며 "2008년 촛불집회 때 언론보도를 생각해보면 매우 소극적인 보도 행태"라고 지적했다.  

주요 사안 때마다 시국선언에 참여해온 그는 "이전 시국선언과 이번 건을 비교하면 사안의 중대성이 다르다"며 "국정원을 그대로 둘 경우 매번 헌법유린 사태가 재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시국선언을 조직하게 된 배경은?
"2008년 광우병 논란이 있을 때도 시국선언을 했다. 지금은 광우병과는 달리 대표적인 권력기관중 하나인 정보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민주주의 유린사태다. 선거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선거에 개입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MB 정부 때 있었던 민주주의 파괴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미래를 위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고민 끝에 급히 시국선언을 추진하게 됐다"

- 배재대에서 이틀 만에 17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조직했나?
"특별히 조직한 것은 없다. 우리 대학에는 민교협 같은 단체가 없다. 그래서 지난 2일 시국선언문 초안을 써서 3일 새벽 전체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틀 후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니 전날 밤까지 명단 취합을 마감하겠다고 밝혔다. 메일을 보내고 이틀 동안 메일을 받은 것 외에 공을 들인 게 없다"

- 당초 몇 명의 교수가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나. 예상했던 것보다 어떤가?
"2008년 광우병 문제로 시국선언을 할 때보다는 참여 인원이 적다. 하지만 광우병 때에는 학기 중이었고 시간이 넉넉했다. 이번에는 방학인데다 급히 추진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제가 잘 모르는 분들까지 동참했다. 시국선언문 발표 이후에도 뒤늦게 알고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면에서 적은 인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사태 자체가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대전시민들이 지난 18일 저녁 대전역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대전시민들이 지난 18일 저녁 대전역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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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기도 했다. 시국선언에 이어 촛불집회에까지 참여한 이유는?
"시국선언문 쓰면서 이게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을 공부한 입장에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 이야기도 듣고, 직접 내 얘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이 땡볕에서 민주주의를 살리려고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 헌법을 연구해 온 학자 입장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왜 심각한 지 좀 더 설명해 달라.
"헌법이 중요한 원리는 권력분립이다. 견제를 통해 권력 남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것은 헌법의 균형 축을 무너뜨린 것이다.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국정원을 대통령이 혼자 좌지우지하고 있는 거 아니냐. 게다가 국정원은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개입했다. 이는 헌법의 권력분립의 틀을 깬 것이다. 헌법유린이다. 더구나 한국의 정보기관은 5.16 군사쿠테타로 탄생해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오는 동안 늘 정치공작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런데도 정보기관 개혁은 늘 지지부진했다"

- 어떻게 정보기관을 개혁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분명한 사실부터 보자. 검찰수사결과를 보면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있었다. 비밀조직이 사이버 선거개입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선거자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는 문제다. 선거가 무효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부정선거임에는 틀림없다. 이같은 부정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를 밝혀야 하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국정원은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국정원을 해체할 것인지, 아니면 개선할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만약 그냥 둔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통제할 건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회에 의한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국정원이 뭘하는 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알 수 없다. 지금처럼 국회에서 예산을 통으로 주면서도 활동 내용이 장막과 비밀에 감춰져 있는 방식으로는 매번 헌법유린 사태가 재발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을 민주적 통제아래 두느냐 마느냐가 핵심쟁점이다."

- 예전에도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것으로 안다. 이전 시국선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참여했던 시국선언 중 기억나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의 시국선언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광우병 논란 때다. 이번 건과 비교하면 사안의 중대성이 다르다. 탄핵이나 불기소 문제는 법 해석상의 문제다. 하지만 이번 건은 헌법의 틀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번 시국선언의 경우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는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안은 훨씬 중대한 반면 과거 시국선언 때보다 오히려 제약을 받는 면이 많다고 본다"

- 정국은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에서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 문제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회의록 존재 유무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덮을 수 있는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다른 것으로 사안을 덮을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과 조중동, 촛불집회·시국선언 철저하게 외면" 

김종서 교수
 김종서 교수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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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충남민언련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의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보도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 회의록을 놓고 여야가 대립한다는 보도가 있을 뿐 조중동과 방송을 봐서는 시국선언이나 수만 명이 모이는 촛불집회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답답하기도 하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언론보도를 생각해보면 매우 소극적인 보도행태다. 국민들이 사안에 대해 근본적인 관점과 접근 가능성이 그만큼 막혀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이런 면을 잘 제기해줘야 하는데 NLL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국정원 문제에 대한 해법은 뭐라고 보나?

"우선은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국정조사는 별 기대할 게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국가기관의 영향력으로 벗어나 있는, 민간인이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진상규명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현 정부가 다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책임자 및 관련자 처벌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기관과 재벌의 범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관련 책임자는 물론 일선 행위자, 예를 들면 댓글을 단 국정원 여직원까지 처벌해야 한다.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것은 면책사유가 안 된다. 꼬리 자르기나 상징적 처벌은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정원 개혁문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국정원을 없애지 않고 유지하더라도 국회에 의한 통제가 가능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책임지고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국정원 근본개혁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방안에 대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유일한 감독자인데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방조이자 묵인일수 있다. 지금처럼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사건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 시국선언문을 보면 '부끄러운 광경을 제자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라는 표현이 있다. 좁게는 학교 제자들, 넓게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는 학생이 거의 없다. 인터넷뉴스도 연예뉴스 위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권리, 인권과 밀접한 관련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학생들이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쟁점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관심을 갖고 특정 사안에 대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태그:#김종서, #법학과 교수, #시국선언, #국가정보원,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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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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