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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그녀
▲ 동심, 튼튼하게 자라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엄마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그녀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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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첫 학기 방학을 하루 앞둔 날 아침, 큰녀석이 등교거부를 선언했습니다. 배가 많이 아파 학교에 가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때문에 '나 학교 안 다니고 싶다'라는 폭탄 발언까지 내뱉었습니다. 출근을 앞두고 한시가 바쁜 엄마에게. 무사히 한 학기가 마무리 되나보다 하며 기쁨에 한껏 부풀었던 엄마의 가슴은 뭔가가 후비는 듯한 걱정과 근심덩어리로 콱 막히고, 머리 속은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분주해졌습니다.

"그럼,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해서 보건실에 다녀오거나 하면 되지." 

그러나 큰놈이 원하는 답은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도 안 나을 것 같은 배야."
"그럼 어떻게 하지? 엄마가 휴가 낼 수도 없고. 하루만 참으면 학교 안 가는 방학인데."
"엄마 그러게요. 난 내일이 기다려지는데, 오늘은 싫다구요. 오늘 장기자랑, 그거 때문에 지금부터 배가 너무도 아프다구요." 

헉, 며칠 전부터 장기자랑에서 친구와 노래 부르고 춤춘다고 좋아하던 녀석이 막상 닥치니 헤쳐나갈 일이 걱정되었나 봅니다.

"에이, 그냥 맘 편하게 재밌게 하면 되잖아. 뭐, 꼭 잘 할 필요가 있나? 재밌으면 되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회유와 기분전환에도 불구하고 큰녀석은 1학년 등교 이래 첫 눈물을 흘리며 학교로 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장기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큰 문제는 그 녀석이 무사히 장기자랑을 마치고 돌아와 기분좋게 재잘거리며 돌아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서서히 퍼지고 있는, 꽤 오래되어 공기와 접촉해 말라버린 '그놈'에게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목욕을 하자고 해도 계속 시간만 끄는 큰녀석. 엄마는 그것이 방학을 앞두고 걱정거리였던 장기자랑을 무사히 마친 흥분감 때문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겨우겨우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긴 순간, 말라서 작게 붙어 있는 작은 덩어리들을 보고 엄마는 겨우 깨달았습니다. 오늘이 큰녀석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는 것을. 앗, 그 순간 작은 덩어리를 본 둘째가 외쳤습니다.

"언니! 언니 똥, 똥 쌌어?"

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틀켜버린 순간, 큰녀석은 울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엄마도 동생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큰녀석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버렸습니다.

 
엄마의 비밀을 불어버린 우리가족의 여름휴가지
▲ 송이집 엄마의 비밀을 불어버린 우리가족의 여름휴가지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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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방학과 동시에 휴양림으로 휴가를 떠나 가족들이 모두 원하고 원하던 그 '송이집'에서 첫날 밤을 보내려고 누웠을 때 큰녀석이 물었습니다.

"엄마, 왜 난 8살인데 응가를…."

자기 자신에게 많이 실망한 목소리입니다.

"어… 뭐, 속이 안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위로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엄마, 이 순간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이거 엄마의 비밀 이야기인데. 너랑 나랑만 알아야 하는 거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은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바지에 응가를 하고 와서 할머니한테 혼났어. 엄마는 널 안 혼냈지만, 할머니는 수돗가로 데리고 가셔서 수세미로 씻겨주시면서 엉덩이를 때리셨거든. 그땐 엄마도 너무 속상했어."

이 녀석 공감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시큰둥합니다. 그래서 좀 더 최근의 일을 밝히기로 결심을….

"근데 말이야, 또 한 가지를 말하면 말야…. 엄마 대학원 시험 보러 가던 날 있잖아. 어, 그래 그래 그러니까 엄마가 어른일 때지. 그때 대전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 타기 전에 커피를 한잔 쭉 마셨거든. 그리고 차에 탔는데 배가 너무너무 아픈 거야. 2시간을 참고 또 참고 하다가 서울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가기 직전에 바지에 그만…."
"하하하, 엄마가요?!"

이 녀석 '100% 공감'에 진짜냐고 물으며 엄마 얼굴을 만졌다가 뒤로 누워 꺄르르 넘어갑니다(치, 그렇다 뭐. 하지만 엄마 그때 대학원 시험 잘 보고 합격해서 공부하고, 이제 졸업까지 한다 뭐).

"에이, 이 녀석아 웃지만 말고 듣던 얘기 잘 들어봐. 엄마도 그랬고, 이모도(다소곳하고 여성스럽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 다니는, 아이들이 최고 좋아하는 막내이모입니다) 그런적 있대. 아마 사람들은 모두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걸? 하지만 이건 너랑 나랑만 아는 비밀이다. 특히, 아빠한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이방에서의 휴가 첫날 밤, 큰녀석이 슬쩍 물은 한마디에 엄마는 다 말해버렸습니다. 정말 별로 부딪히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고 또 불쾌한 그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일은 아니라는것.

다만,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나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큰녀석의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녀석의 기분이 좋아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엄마를 보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 녀석. 누구에게 '불'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가족인터뷰' 응모글입니다.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태그:#가족인터뷰, #송이집,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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