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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이례적으로 낮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는 물가상황과 관련해서는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억제되었던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봄. 물가목표를 하회하고 있는 CPI상승률을 평활화(이런 변동이나 불연속성을 약하게 하거나 제거하여 매끄럽게 하는 조작하는 것)하는 효과가 있는 데다 중기적 관점에서도 추후 물가압력이 높아질 때 공공요금 인상을 이연(신용거래에서 기한이 도래하여도 결제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기한을 연장해 가는 것을 말함)할 수 있는 여력을 비축할 수 있기 때문임. 아울러, 최근 부각되고 있는 공공부채 부담의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임."(2013년도 제11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지난 2일 발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 내용 일부다. 지난 8개월 동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대로 낮아졌기 때문에 그 동안 묶여 있던 공공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권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회의록이 공개되고 공공요금 인상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여론이 비등하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그런 논의는 있었지만 일부의 의견이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요금 인상의 적기?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에서 기관보고를 마친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현오석 부총리.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에서 기관보고를 마친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현오석 부총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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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행 총재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사록 전반에서 공공요금인상을 주장하는 내용들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고, 의결사항에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앞서 한국은행이 밝힌 물가안정목표가 소비자물가 상승률 2.5%-3.5% 내외임을 감안할 때, 공공요금을 올려서 소비자 물가 인상을 유도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또 "관련부서에서는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황에서는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고 답변하였음"이라고 밝히고 있어 공공요금 인상을 두고 관련 기관들과 협의가 있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하다.

회의록 발표 후 경제지를 주축으로 난데없는 '디플레이션 우려'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기사 대부분은 저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저성장을 고착시켜 경제가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담고 있다. 일본과 같은 장기적인 저성장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정부 정책을 주문한 기사들은 하나 같이 저물가 대책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을 통해서 물가를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자는 금통위 회의를 뒷받침하는 기사들이다.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된 지난 2일 이후 각종 공공요금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3일 KBS는 임시이사회를 열어 TV 수신료를 현행 2500원에서 4800원으로 인상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누적 적자 해소와 프로그램 질 향상을 위한 조치라는 이유를 들었다. 국민연금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 보험료 단계적 인상을 다수안으로 채택했다.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혐료율을 향후 13∼14%까지 올리겠다는 것이 인상안의 주내용이었고 재정안정화 방안의 일환이라는 것이 인상안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뿐만 아니다. 정부는 500조원에 육박하는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요금의 원가보상율을 적정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비즈는 지난 4일 보도에서 "공공기관 중 부채규모가 큰 한국토지주택공사나 한전, 한국가스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의 공공요금을 적정화시켜야 한다"는 기재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추진 사실을 전한 바 있다. 4년 동안 동결되었던 연탄값도 5%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적자를 물값 인상으로 채운다니...

"무슨 과일값이 이렇게 비싸? 갈치나 고등어는 또 어떻고. 돈 1~2만원으로는 쓸 게 없어"

정부의 저물가 하소연과 달리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국제 유가가 하향 추세하라는 하지만 휘발윳값은 1리당 1900원대 중간에 머물러 있다. 계절적 요인으로 야채값이 많이 내렸다고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공공요금을 올려서라도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된다는 한국은행과 정부의 발상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손가락질 받기 딱 좋은 탁상행정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렸다. 자고나면 기록을 갱신하는 휘발윳값. 명절이 다가오면 장보기가 겁나던 5년이었다. 불경기에 물가가 내린다는 경제 상식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로 OECD 국가의 평균 물가는 0.5% 상승했다. 미국 0.3%, 일본 1.4%, 9%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던 중국도 0.7% 하락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8% 상승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2008년∼2010년 3년간 물가 상승률 평균 3.5%에 달했고 2011년에 이어 2012년 하반기까지 가파른 물가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비록 8개월간 오름세가 꺾였다고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고착화된 고물가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상승곡선이 완만해 졌을 뿐이다. 계절적 요인으로 값이 내린 야채류나 하락한 국제 유가에 힘입어 가격이 낮아진 공산품은 언제라도 다시 폭등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저물가로 접어들었으니 이 기회에 공공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은행이나, 저물가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높인다고 강변하는 언론들. 기다렸다는 듯 국민연금에서 연탄값까지 인상안을 꺼내드는 정부. 실물 경기, 서민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공공요금 인상만 해도 그렇다. 인상안이 거론되는 공공요금 대부분은 누적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적자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방만한 경영이다.  4대강 사업으로 부채 13.2조원(2012.6월 기준)을 안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와 관련 서승환 국토부장관은 적자 해소를 위해 물값 인상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은 또 어떤가? 한전의 적자해소와 블랙아웃을 막겠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네 차례 19.6%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4대강 사업이 없었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건실한 공기업으로 평가되던 한국수자원공사가 빚더미에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한전의 누적적자는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을 기업에 퍼줬기 때문이다. 연말만 되면 수천만원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들. 아무런 자구책도 내놓지 않고 오로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누적적자를 메우겠다며 너도나도 팔 걷어붙이는 모양새는 시쳇말로 국민들을 봉으로 보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산층 70%를 목표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각종 경제지표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별반 다름이 없다. 자영업자들의 도산과 서민들의 빈호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늘어지고 있다. 8개월간 물가 인상률 1% 유지. 서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거리임에 틀림없지만 늘어나지 않는 수입으로 인해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청와대 남대문 출장소라고 비난 받았던 한국은행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물가안정이다. 이 사명을 망각하고 물가인상을 부추기는 공공요금 인상 권고안을 내놓다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이 논리에 편승한 정부의 움직임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공공요금 인상 운운하기 전에 지난 정부에서 방만하게 운영되었던 공기업의 대대적인 손질이 먼저다. 이명박 정부 2기를 산다는 건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태그:#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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