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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가운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비를 맞으며 24명의 노동자를 표시한 자그마한 영전사진을 모시고 있다. '함께 살자','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던 절규는 공권력의 무차별 폭력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막을 내렸었다.

뜨거운 여름, 비 한번 내리지 않던 그해 평택 공장 농성은 끝이 났었다. 그리고 연이은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 사회에 확인시켜 주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자 대한문에 천막을 치고 분향소를 차린 이후로 죽음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회계조작에 의한 정리해고 의혹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민주당의 국정조사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복을 입은 노동자를 구속하고 분향소를 철거한 자리에 화단을 설치하고 경찰들이 밤낮으로 지키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대한문 앞은 집회 및 시위가 불허되며 종교인들과 국회의원들까지도 경찰에게 조롱당하고 있다.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은폐, 축소를 저지른 경찰은 정권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민주주의 기본인 집회, 시위의 자유도 폭력적으로 탄압해 왔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대전충남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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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노조가 회의를 한다는데 참석인원과 내용을 알고 싶다고 한다. '잘 모르지만 알아도 알려 줄 수 없다 했더니'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5월 말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경찰이 빨갱이라고 불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괜히 평상시 친한 척 했던 관계였을 것이다.

경찰 고위층과 그 윗선은 빠른 정보를 원한다. 경찰관들끼리도 정보를 먼저 알기 위한 과잉충성과 내부 경쟁 속에 서로 다투기도 한다. 경찰 분류에 의해 직업이 '전문시위꾼'인 나는 경찰들을 자주 상대 하게 되는데, 처음 보는 경찰도 혈연, 학연, 연고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경찰: "제가 00고등학교 몇기예요?"
나 : "그런데요."
경찰 : "00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나 : "그런데요."
경찰 : "알고 계시라고요."
나 : "어쩌라고요! 선배 대접받고 싶으시면 경찰을 그만두던지 내가 이일을 그만두었을 때나 고려해보시죠? 제 성격 못 들으셨나요?"

경찰서마다 고등학교 선배와 고향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고등학교 동창생이 전화해서 말하기를 '선배소리 안 들어도 좋으니 욕만 하지 말라' 했다고 전해 준다. 민주정부 10년 정권이나 현재의 경찰 선배들은 등장하고 사라진다.

국정원불법대선개입규탄 촛불문화제에서 후배를 만났다. "나라가 시끄러우니까 얼굴을 보네요, 음! 나라는 항상 시끄러웠는데... 민주정부 10년은 이 정도는 아니었죠? 국정원이 선거 개입을 하고 등등... 원하는 대답 대신 노무현 정부 때도 국정원 직원이 사무실로 전화 왔길래, 이거 민간인 사찰 아니냐고 하니까? 뒤에서 하는 것 보다는 좋은 것 아니냐?"라고 대답해 황당해 했던 일과, 지역 모일간지 편집장으로부터 국정원 지역담당자가 얼굴 보자고 해서 거부한 적이 있다고 전해 주었다.

현재의 국정원이 저지른 모든 정치현안 개입과 댓글, 대통령선거 개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여서 양비론처럼 비추어 지는 것이 부담 되었다. 하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정원, 경찰 같은 국가 폭압기구를 개혁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나는 말했다. 후배는 상기된 얼굴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은 순진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말에 "대통령은 순진한 것도 큰 잘못이야. 최고 직위에 있는 권력자의 역할이란 관점에서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노동귀족으로 매도당했던 노동자들의 생존권,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침해당한 사실이 그 정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 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나 노동현안문제로 서울 상경시 경찰은 사무실이나, 집, 공장을 에워싸고 거주 이동의 자유를 침해했었고 심지어 톨게이트와 휴게소에 대한 검문, 검색 강화를 통한 봉쇄와 위협까지 있었다. 집회에 대한 불법적인 신고제를 비롯해서 집회 장소에 경찰 병력을 사전 배치하여 집회 참가자들을 모이지 못하게 했던 기억은 소위 민주정부 10년의 역사에도 존재 했던 것이다. 

어떤 정권하에서도 집회, 시위, 표현, 사상, 학문의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이 정권의 성향에 따라 갑자기 폭압적이고 정치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장악한 자들이 개혁을 외치면서도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존속시켜 왔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와 시민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는, 계급적 차이에 따라 인식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인권은 어떤 정권, 어떤 체제에서도 보편타당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변천사처럼 민주주의가 정권에 따라 좌우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머리 위, 등 뒤, 작업장 내부, 일상을 감시하고 있는 CCTV, 개인신상정보노출 등에 무감각해진 인권 감수성은, 국가정보원, 검-경을 비롯한 이 사회의 지배계급들의 잘못된 행위도 둔감하게 만들고 있다.

인권에 대한 일상적인 의식 함양을 기르고 저항하는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지켜 줄 때, 촛불은 인민들에 의해 더욱 확산 될 것이다. 인권은 밥이 되어야 하고 보편타당해야 한다.

인권은 투쟁으로 쟁취되고 만들어져 왔다.

덧붙이는 글 | 오임술님은 민주노총대전본부 조직국장입니다.

이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동자인권, #기본적 인권, #인권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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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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