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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여야 의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제작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의 표지.
▲ 국정원이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 지난 6월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여야 의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제작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의 표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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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 2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회의록과 녹음기록물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공개를 국가기록원에 요구하는 자료제출요구안을 의결했다. 여야는 요구안에서 "자료 일체를 열람·공개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간 NLL 관련 대화의 진상이 무엇인지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 가운데 여야가 각자 원하는 내용만 앞세워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을 경우 핵심 쟁점인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해 회의록을 둘러싼 논란이 더 가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논란의 끝'이 아닌 '새로운 공방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회의록을 둘러싼 네 가지 쟁점을 정리해 봤다.

[쟁점 ①] 회의록 작성 시기, 2007년 10월 vs. 2008년 1월

'회의록'을 둘러싼 논란 중 가장 핵심으로 떠오른 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언제 만들었냐 하는 것이다. 작성 시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회의록의 진위 여부 때문이다.

국정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발췌본을 비교해보면 일부 내용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사실이 확인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에도 일부 왜곡이나 과장이 있을 수 있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질문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 과거 참여정부 인사들의 설명은 제각각이다.

국정원이 공개한 정상회담 회의록은 작성 시점을 '2008년 1월3일'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2007년 10월 청와대에 제출한 것은 중간 제작본이고, 완성본은 2008년 1월 제작해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8년 1월 생산된 것이 최종본이자 유일한 원본'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자료는 2007년 10월에 청와대와 국정원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하고, 국정원에 1부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폐기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원장의 주장은 "2007년 10월 대화록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당연히 완성본이었다"는 것.

그런데 김 전 원장은 국정원이 지난 5일 "2008년 1월본에 (김만복 원장의) 친필 서명이 있었다"고 반박하고 나선 이후 언론 접촉을 끊었다. 김 전 원장은 "소모적인 정쟁에 휘말릴 것 같아서 더 이상 나서지 않고 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낸 뒤 일체 통화나 문자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이 지난달 2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화록이 작성된 시기는 회담 직후 일주일 이내"라고 밝힌 것처럼,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참여정부의 거의 모든 인사들이 회의록 작성의 시기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2007년 10월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원장의 무대응은 새로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 김 전 원장과는 또 다른 주장을 했다.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후 국정원이 회담 녹음파일을 풀어 녹취록 2부를 작성, 1부는 청와대에 보내고 다른 1부는 자체 보관했다고 전했다.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이후 청와대와 국정원은 녹취록에 기초해 정상회담과 관련된 다른 자료들까지 참고해 각각 회의록 전문을 완성했고, 이어 서로 회의록을 비교한 뒤 내용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원내수석부대표의 주장에 대해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국장은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보고서 등에 기초해 대통령 의견 등을 반영해 최종 대화록을 완성한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와 국정원이 각각 (대화록) 완성본을 만든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쟁점 ②] 회의록 '2급 비밀'로 격하는 언제, 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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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비밀 생산·보관 규정에 따라 2급 비밀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를 두고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국가안보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게 국정원이 밝힌 공개 이유다. 또 지난 6년간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비밀문서 유지의 필요성도 없어졌다고 전문 공개이유를 덧붙였다.

대통령기록물은 기밀의 정도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된다. '일반기록물'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일반인의 열람이 가능한 등급이고, '비밀기록물'은 차기 대통령,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등 비밀취급인가권자에게 열람이 허용된다. 최고 등급의 보호를 받고 있는 '지정기록물'은 해당 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만 최대 30년간 열람이 가능하다. '지정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2/3이상 찬성 또는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

공공기록물은 2급 비밀로 분류된다. 대통령 지정기록물보다 공개가 쉽기는 하지만 이 또한 공개가 녹록지 않다. 이 부분에 논란이 있는데, 바로 국정원장이 판단해서 공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함께 공공기록물을 일반문서로 전환하는 과정이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문재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검찰이 국정원의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던 것은 문서의 생산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며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가 제공한 녹음파일을 풀어서 대화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대통령기록물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국정원의 입장은 공개한 회의록은 자신들이 생산했으니 공공기록물이고 이를 다시 일반문서로 전환하는 것은 기관장인 국정원장의 재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쓴 회담록 전문을 갖고 있다,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회담록'은 우리가 만들었으니 생산자는 국정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주장은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회의록'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인데 같은 내용의 문서를 국정원에서 보관한다고 해서 공공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건 사실 억지에 가깝다.

국정원은 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청와대 보고용'이 아니라 '정보수집용'이었다는 근거로 "(정상회담 녹음에 사용한) 디지털 녹음기는 원래 우리 것이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의원이 "정상회담을 녹음한 녹음기가 자기들 것이었다는 국정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국정원은 다시 "국정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국정원이 회의록의 기밀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한 시점도 논란거리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달 24일 회의록을 국정원 보안규정에 따라 일반문서로 해제해 공개했다. 이는 생산 당시 1급 비밀이던 회의록이 이명박 정부에서 2급으로 보안단계가 하향조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 원장은 지난달 25일, 회의록의 기밀등급이 조종된 시기에 대해 "2009년 3월 2급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가 밝힌 2009월 3월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다. 때문에 원 전 원장이 NLL을 국내정치 개입 소재로 활용키 위해 등급을 낮췄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쟁점 ③] 회의록 공개 이명박-박근혜 정부 합작품인가?

지난해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취지로 발언했다고 주장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처음 본 시기에 대해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던 2009년 즈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10·4 정상회담 1주년을 즈음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록을 가져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국정원의 발췌록 보고서가 청와대에 올라갔고, 작성 시점에 대해선 "2급 비밀 공공기록물로 낮춰진 시점을 고려하면 2009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용을 보고 노한 이 전 대통령이 원본을 요청했고, 보고에 앞서 비서관 신분으로 일독했다"며 "2010년에도 이 전 대통령이 재요청해 그 과정에서 내용보고를 들어 숙지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대북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이철우 의원의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 16일 JTBC와 한 인터뷰에서 "10·4 정상회담 1주년인 2008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관계가 잘못됐다고 비판 하자, 이 대통령이 10·4선언이 뭔지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의 NLL발언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당시 발언을 문제 삼으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물밑에 가라앉았던 회의록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해 18대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정문헌 의원이 국감장에서 'NLL 폭로'를 한 지난해 10월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논의가 한창 급물살을 타던 때였다.

여론조사 결과, 3자 대결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우세가 예상됐지만, 문-안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봇물을 이루던 시기였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단일화에 대해 '결국은 조직을 가진 문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문 후보와 민주당에 큰 생채기를 내면서 동시에 대선판을 뒤흔들 이슈가 새누리당에게 절실히 필요했고, 그 이슈를 정문헌 의원이 대선 두 달 전에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정 의원 폭로 시점과 정국 흐름을 종합하면 회의록은 MB정권 내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공유하고 있었으며 대선 기간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 활용됐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했다"는 김무성 의원의 '셀프자백'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회의록 공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쳐 이어진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쟁점 ④] 김장수 실장, 윤병세 장관의 침묵은 '포기발언 없었다'는 반증?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당시 참여정부에서 각각 국방장관과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이었다.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 후폭풍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지만 내막을 알만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 왜 아직도 침묵을 지키는지 여론은 의아해 하고 있다.

김 실장과 윤 장관의 당시 구체적 역할에 대한 증언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일 "N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상회담 한 달 후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 나간 국방장관은 김장수 실장"이라며 "노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NLL을 잘 지키세요'라고 말했다고 김 실장 본인이 말한 바 있다"고 밝혔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 17일 열렸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제가 소신껏 가서 하고 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하니까 (노 전 대통령이) 껄껄껄 웃으시면서 '마음 놓고 하고 와라', 그러셔서 소신껏 하고 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어로수역을 통해서 평화 수역화하는 것은 NLL을 철저히 지킨다는 뜻에서 가능한 것"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NLL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설정되기 이전까지는 확실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있다"고 증언하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장이 된 김 실장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았다.

다만 그는 지난달 21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장소에 들어가지 못해 그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통상적으로 저와 노무현 대통령과는 NLL 문제를 얘기한 적은 없는데, 국방장관회담을 가기 전에 대통령께 회담 전략보고를 드리는 과정에서 (얘기한 적은 있다), 그것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윤병세 장관의 경우도 당시 통일외교안보수석으로서 회담 준비 자료를 총괄하며, 백종천 전 외교안보실장과 더불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 한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이 문제와 관련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물론 사전·사후 회의록까지 모두 공개할 것을 확정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참여정부에서 해당 실무를 맡았고,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에 중용된 인사들의 회담 준비 및 평가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그:#대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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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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