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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뼈아프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국민주권유린, 국기문란 사건의 시작과 전개 과정, 그것과 연관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사건 등을 묶어서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요지경 속이다. 그 속에 오만 잡것이 다 들어 있다. 불법·거짓·비겁·유치·천박·꼼수·졸렬 따위 낱말들을 걸친 구더기들이 바글거리는 것 같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니 너무 뻔뻔스럽다. 아예 수치심을 상실한 부류들이다.

국정원 사건은 언론장악의 산물

충남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이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있었다.
▲ 시국선언 충남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이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있었다.
ⓒ 백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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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장 원세훈이 진두지휘한 그 범법과 불법의 시작 질을 들여다보면 전 대통령 이명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원세훈이 단독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 같지 않다. 이명박과 사전에 모의를 했거나, 암묵적 재가를 받았거나, 이심전심의 작용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원세훈의 그런 짓거리를 이명박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상이 안 된다.

이명박이나 원세훈이나 차기 정권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이 정권 말에도 곧잘 자신의 치적(?)을 강변하고, 원세훈이 적극적으로 '주군'의 치적을 홍보한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실정과 악정 따위를 스스로 인지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진짜로 치적을 이루고 덕을 쌓은 이는 구렁이 제 몸 추는 짓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아무래도 차기 정권이 염려되는 것은 당연지사요 인지상정일 터이다.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서 명실상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전임 대통령의 안위가 평온치 못하리라는 것은 명오가 열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이명박은 무식하게 저질러놓은 일이 많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이명박은 죽기 살기로 같은 울타리 안의 박근혜를 도와야 할 필요를 느꼈을 터이다. 위기감이 드는 것과 비례하여 박근혜의 당선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을 터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일찌감치 선견지명(?)으로 '언론장악'이라는 것을 해놓았다.

이명박이 가장 믿는 구석은 자신이 이룩해놓은 언론장악이다. 조중동이야 원래부터 한통속이니까 신경 쓸 것 없고, 방송매체들만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굳게 믿었을 것이다.

언론장악에 대한 믿음, 대중조작의 유용성은 사실상 그들 집단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보물을 쥐고 있는 한 그들은 두려울 게 없었다. 국회도 다수 의석을 확보했겠다, 경찰과 검찰 등 권력기관들은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겠다, 그저 언론장악의 효과만 잘 유지된다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 국정원의 국기문린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달성해놓은 언론장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뉴스타파> 등 대안 방송언론과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지금 암흑천지나 다름없을 것이다.                   

누가 국격을 논하고 원칙과 법을 말하는가

충남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이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 시국선언 충남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이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 백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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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선거개입이 불법이요 국민주권유린과 국기문란임을 저들이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비밀리에 유출하고 선거에 써먹는 짓이 명백한 범죄임을 저들이 까맣게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몰랐다면 아예 정치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무지막지한 조폭 수준일 뿐이고, 깡 무식꾼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적어도 배운 사람들이다. 시쳇말로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다. 하니 그것이 불법이요 범죄임을 잘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비겁한 범법 행위를 했을까? 왜 그처럼 도덕성이 결여된 것일까?

그들은 심판과 단죄의 경험을 갖지 못했다. 아니, 우리나라 자체가 심판과 단죄의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 36년 동안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치욕의 식민통치를 겪었으면서도 해방 이후 우리는 민족배반자들을 심판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세력이 계속 득세하는 이상한 나라를 만들었다. 거기서부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전반에 나쁜 영향을 끼쳐왔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18년 동안 이어진 박정희 철권통치는 양심과 정의를 굴절시키고 왜곡시키는 악습의 뿌리를 사회 전반에 깊이 드리우고 말았다. 오도된 가치관이 국민의 의식 속에 깊이 침윤되어 민족정기는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 5·16군사쿠데타와 박정희의 18년 철권통치가 남긴 가장 나쁜 폐습은 국민의 사고방식을 제약하고 제한하여 단순과 순치 속으로 몰아넣은 점이다. 거기에서 단순 박약한 이분법도 배태되는 것이다.

가방끈이 긴 머리 좋은 사람들은 다투어 출세지상주의로 내달린다. 목적만이 중요할 뿐 과정은 중요치 않다.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출세만이 목표이고, 부귀공명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그런 습성에서 국정원의 국민주권유린과 국기문란도 나오고,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의 수사방해 은폐 시도도 나오고, 국가 비밀문서를 까발려 물 타기를 하려는 꼼수도 나온다. 비겁함과 유치함과 천박함과 졸렬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 분별력을 잃은 욕심 속에서 지역패권주의도 나오고, 종북 타령도 나온다. 그리하여 오늘 급기야 국가기관을 일개 정파의 노리개로 전락시킨 행위도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연민을 금할 수 없다. 입만 열면 '국격'을 말하고, 원칙과 법을 떠벌리는 사람들이 왜 그처럼 국격을 추락시키고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며 국민들을 실의와 분노 속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대통령 박근혜는 왜 남에게는 책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일까? 국격 추락과 민주주의 훼손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탓은 아닐까? 참으로 연민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확립해야 한다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 행사에서 필자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 시국선언 7월 1일 오전 11시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서산'태안지역 200인 시국선언' 행사에서 필자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 백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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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김용판과 일부 수뇌부의 장난질로 위신이 땅에 떨어진 형국이고, 검찰은 여전히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오히려 그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가치전도의 늪에 빠져 있고, 영향력 있는 다수의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있으니 나라꼴이 참 많이 아니다.

이런 풍토에서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 국가정보원을 일개 정파의 정보원으로 전락시켜 국민주권을 유린하고 국기를 문란한 어둠의 세력은 저 '성공한 쿠데타'로부터 영감을 얻었거나, 고스란히 습성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5·16도, 12·12도, 5·17도 일단은 성공한 쿠데타였다. 역사적으로 결코 성공일 수 없는 것이지만, 쿠데타 세력은 성공한 쿠데타 덕에 큰 권력을 누리고, 주구장창 이어지는 기득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사회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낳게 했다. 그 명언은 지금도 최대한 유효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애초부터 '성공한 쿠데타'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한다면, 다시 말해 정권을 잡는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으로 속단한 것만 같다. 그런 추정들 때문에 국정원의 국기문란 사건을 더욱 또 다른 유형의 쿠데타로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은 눈에 불을 켜야 한다. 국정원의 국민주권유린, 국기문란 사건을 결단코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쿠데타는 어떤 유형의 것이든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오늘 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국회의 국정조사는 매우 중요하고, 현재로서는 유일한 희망이다. 검찰도, 법원도 오도와 왜곡의 첩첩산중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믿을 구석이 없다. 그러니 국회의 국정조사는 너무도 긴요하다. 45일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고, '성공한 쿠데타'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얼마나 어떻게 방해공작을 할지 모르지만(아니, 훤히 예상을 하지만), 그럴수록 난관을 극복해가며 반드시 성과를 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임 대통령 이명박은 물론이고 현 대통령 박근혜도 불러서 심문을 해야 한다. 

헌정을 유린한 쿠데타적 성격이 강한 국정원의 국민주권유린, 국기문란 사건이 결코 '성공한 쿠데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 의원들의 분발과 전력투구를 기대한다.


태그:#국가정보원 선거개입, #국민주권유린, #국기문란 , #국가 비밀문서 유출, #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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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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