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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무원이 비위행위를 한 시기에 안전행정부장관상(구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방공무원 민아무개(전산직 7급)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군청의 팩스와 전화를 이용해 친척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돕던 시기에 안전행정부장관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전행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 '장관상 회수'를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지난 2011년 7월 29일 <오마이뉴스>는 민씨가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근무시간에 친척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돕기 위해 군청의 팩스와 전화로 주문서를 받아온 사실이 적발돼 행정안전부에서 그의 징계처분을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7급 공무원, 군청 팩스로 절임배추 팔다가 '들통').

행정안전부는 공용 통신시설을 이용해 친척의 절임배추사업을 도운 7급 공무원 민아무개(해남군청)씨의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행정안전부는 공용 통신시설을 이용해 친척의 절임배추사업을 도운 7급 공무원 민아무개(해남군청)씨의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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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배추사업에 군청 팩스 등 539회 사용했지만, 최종 '불문처리' 

당시 행정안전부는 2011년 6월부터 해남군청에 근무하는 민아무개씨(전산직 7급)를 상대로 감사를 벌였다. 2009년부터 민씨의 처제·동서가 운영하는 A농원과 거래해오던 과정에서 절임배추 주문서를 받아온 민씨가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백의장 천우농산 대표가 관련 부처에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였다.

안전행정부의 감사 결과, 민씨가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처제·동서가 운영하는 A농원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돕기 위해 근무시간에 해남군청의 팩스와 전화로 주문서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안전행정부는 감사결과 문서에서 민씨의 비위사실을 이렇게 적시했다.

"민씨가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6개월간 처제와 동서가 운영하는 A농원에서 가공․생산된 절임배추의 판매를 돕기 위해 주문서를 받아 전달하는 등 사적 용무를 함으로써 직무를 태만히 하고 공용물인 전화․팩스를 총 539회 사적으로 이용하여 해남군에 6만7000원 상당의 공공요금을 손해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행정부는 "장기간에 걸쳐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직무를 태만히 한 점, 소액이지만 사적 용무를 위해 공용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엄중히 책임을 물어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공무원의 공식 징계처분(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같은 해 3월 해남군청에서 자체감사를 벌인 뒤 민씨에게 '훈계' 처분을 내린 것과는 대조된다. 당시 해남군청은 민씨가 "근무시간 중에 사적(친척)인 관계인 A농원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위해 공공용 행정 통신시설을 이용"해 지방공무원법 제52조(친절·공정의 의무)를 위배했다고 판단하고 '훈계' 처분을 내렸다. 

"민씨가 농민들의 농산물 판매에 적극 협조한다는 차원에서 영업한 것이지 사익을 위해서 영업한 것은 아니다"(당시 박주화 해남군청 감사관실 계장)라는 이유가 뒤따랐다. 하지만 훈계처분은 공무원의 영리업무와 겸직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제64조나 지방공무원법 제56조 위반 가능성을 피해간 조치였다.

특히 훈계는 공무원의 공식 징계처분에는 포함되지 않는 임의처분이다. 또한 해남군청은 "영업대가로서의 금전거래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안전행정부 감사에서는 민씨가 A농원으로부터 '5건 69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인해 해남군청이 '봐주기 감사'를 벌였다는 의심을 받았다.  

안전행정부의 민원회신 공문. 비위공무원의 장관상 취소 민원 제기에 '취소 불가'를 통보했다.
 안전행정부의 민원회신 공문. 비위공무원의 장관상 취소 민원 제기에 '취소 불가'를 통보했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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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상 회수' 지시했다고 말해놓고 '회수 불가' 최종 통보

문제는 안전행정부에서 민씨의 징계처분을 요구한 뒤에 일어났다. 전라남도는 민씨가 전라남도지사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징계 처분(감봉·견책)을 해남군청에 지시했다. 하지만 해남군청은 안전행정부장관상을 받은 이유로 최종 '불문' 처리했다. 공무원 징계를 총괄하는 안전행정부에서 공식 징계처분을 요구했는데도 해남군청은 '장관상'을 이유로 불문 처리한 것이다. '불문 처리'란 법적 하자가 없어 징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무혐의 처분의 일종이다.

수년간 민씨의 비위사실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했던 백의장 대표는 "해남군은 비리사유로 훈계 처분한 뒤 안전행정부로부터 다시 징계 처분하도록 지시받았음에도 또다시 민씨를 불문 처리했다"며 "이는 지자체를 감독하는 중앙관서의 감독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민씨가 안전행정부장관상을 받은 때는 지난 2010년 12월 31일이었다. 그는 '새올행정정보시스템 이용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관상을 받았다. 그런데 안전행정부와 해남군청에서 잇따라 감사한 결과, 그는 지난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6개월간 군청의 팩스와 전화를 이용해 친척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도와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군청의 팩스와 전화를 총 539회 사적으로 사용했고, 친척이 운영하는 A농원으로부터 5건 69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리행위를 한 기간과 장관상을 받은 때가 겹쳤다. 

백의장 대표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 지난 3월 안전행정부에 민씨의 장관상을 취소하라는 '구두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인사기획관실과 전자정부지원과의 관계자들은 백 대표에게 "전라남도와 해남군에 장관상을 즉시 회수해서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안전행정부에서 민씨의 경우 장관상을 회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관상 회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4월 초 백의장 대표와 안전행정부 인사기획관실의 한 관계자가 전화 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전라남도와 해남군청 포상 담당 직원에게 민씨의 (장관)상을 즉시 회수해 안전행정부로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민씨가 반발하고 있어 (장관상 회수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민씨를 추천한 부서인 전자정부지원과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시기 백 대표의 확인 요청에 "전라남도와 해남군청에 회수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장관상 회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백의장 대표는 '장관상 취소' 민원을 안전행정부에 공식으로 접수했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취소 불가'를 공식 통보해왔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5월 8일자 민원회신에서 "장관 표창 수상자에 대하여 공적의 거짓 여부 등 현장조사, 소속기관의 공적사실 재확인 등을 거쳤으나, 새올정보시스템 이용활성화 유공 공적은 사실로 판명되어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취소는 어렵다"고 통보했다.

"장관상이 비리공무원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전행정부는 '장관상 취소 불가'의 근거로 현행 상훈법 제8조를 들었다. 상훈법 제8조에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형을 받았거나 적대 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 관세법 및 조세법 처벌법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지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경우 등을 서훈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민씨가 26개월 동안 군청의 팩스와 전화를 사용해 친척의 절임배추 판매사업을 도와준 사실이 적발돼 징계받은 것은 이러한 '서훈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취소 불가'를 공식 통보하기 전까지 안전행정부 인사기획관실과 전자정부지원과의 관계자들이 몇 차례 "전라남도와 해남군청에 장관상을 회수해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얘기한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민원인에게 장관상 취소가 가능한 것처럼 얘기했다가 '취소 불가'를 최종 통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백의장 대표는 "담당 사무관이 장관상 회수를 지시했다는 얘기를 뒤집고 '표창 취소 불가'로 민원회신한 것은 의아하고 신뢰가 안간다"라며 "어떤 알력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전행정부의 징계처분 요구가 장관상을 받은 이후 이루어졌기는 하지만, 비위행위 기간과 장관상 수상 시기가 겹친다는 점 등을 헤아렸을 때 장관상을 회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게다가 백의장 대표가 구두로 관련 민원을 제기했을 때까지만 해도 안전행정부 관계자들이 "장관상 회수를 지시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도 민씨는 장관상을 회수해야 하는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백의장 대표는 국무총리와 안전행정부장관 등에 보낸 진정서에서 "민씨는 26개월 동안 해남군청을 장사판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장관상이 비리 공무원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장관상 회수'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 안전행정부의 '2010년도 장관표창 업무지침'에는 "직위해제 또는 징계처분(불문 경고 포함)을 받은 자 또는 징계의결 요구 중인 자는 추천이 제한"된다고 적시돼 있다. "기타 공·사의 생활을 통하여 민원 등을 야기하여 장관 표창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자"도 추천제한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장관 표창을 취소하는 별도의 지침은 없다.

안전행정부쪽 "징계 요구했지만 불문처리한 것은 지자체 고유 권한"

하지만 당시 민원을 처리했던 전자정부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민원을 받은 뒤에 민씨의 공적조서를 확인했고, 해남군청에 나가서 조사했지만 공적이 허위로 밝혀지지는 않았다"라며 "다만 해남군청에 장관상 회수를 지시한 게 아니라 '민씨의 장관상을 회수할 수 있느냐'고 그 가능성을 문의한 수준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민씨가 불문처리된 데에 장관상 수상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었다"라며 "민씨가 이미 전남도지사상을 두 번이나 받아서 해남군청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부처의 경우에는 장관상 수여가 징계 경감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지자체는 이와 좀 다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자정부지원과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장관상 회수를 공문으로 공식 지시한 적은 없고, 장관상을 회수할 수 있는지 본인의 의사를 물어본 적은 있다"라며 "민씨의 경우 상훈법에 적시된 '서훈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처분 요구에도 불구하고 해남군청이 자체 징계위를 열어서 불문처리했는데 그것은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다"라며 "지자체 조례상 '도지사상 이상' 수상 경력이 있으면 징계를 감경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징계 감경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해남군청 감사계의 한 관계자는 "(전라남도로부터) 경징계 처분 요구가 있었지만 도지사상과 장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어 불문처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씨와 관련한) 민원이 제기돼 안전행부에서 직접 조사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안전행정부에서 장관상 회수를 요구한 게 아니라 장관상 철회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장관상 회수는 안전행정부에서 하는 것이고, 철회는 우리가 하는 것인데 모든 것(공적)이 인정된 상태에서 상을 줬기 때문에 해남군수가 장관상을 철회할 수는 없었다"라고 전했다.


태그:#안전행정부, #해남군청, #백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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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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