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희도 사실 그게 이해가 안 가요. 세금이 14조 5천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뭐가 급해서 이렇게 졸속으로 강행하는지."

26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150여 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철도산업위원회 개최 중단 기자회견을 진행한 김재길 철도노조 정책실장은 '왜 이렇게 빨리 진행하는지 물어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부는 국회와 시민사회 단체, 철도노조의 강력한 반대와 추가 논의 요구에도 이날 민영화 가능성이 잠재된 독일식 점진적 경쟁모델을 철도산업 발전방안으로 확정했다. 지난달 23일 초안을 발표한 이후 33일 만이다. "국민이 반대하는 철도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정면으로 뒤집는 형국이다.

철도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26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국토부 철도산업위원회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고 있다.
 철도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26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국토부 철도산업위원회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국토부 "수서발 KTX는 철도회사 자회사로 운영" 

국토부는 26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철도산업위원회를 열고 현 철도관련 사업을 2017년까지 6개로 분할하는 내용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확정했다. 철도공사를 지주회사로 하고 여객, 벽지노선, 철도물류, 철도정비, 철도시설, 부대사업 등의 자회사를 두는 '지주회사+자회사' 체제다.

국토부는 이날 새 발전방안을 마련한 이유로 철도공사의 적자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철도공사의 독점 구조에서 오는 경영 비효율을 경쟁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여형구 국토부 2차관은 "철도공사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5000억 원 내외의 적자가 발생했다"면서 "누적 적자는 4조 5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적자 개선의 핵심 내용은 수서발 KTX 경쟁체제 확립이다. 철도 공사가 지분 30%를 갖고 연기금 등 공공 투자금이 70%의 지분을 차지하는 자회사를 만들어 수서발 KTX 운영을 맡기고 철도공사의 서울·용산발 KTX와 경쟁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올해 안에 이 작업을 마무리짓고 2017년까지 현 철도공사 사업을 6개로 쪼개 차례대로 자회사를 만들 계획이다. 2017년 개통 예정인 새 노선과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하는 적자 노선에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국토교통부가 26일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 중 '철도공사의 중장기 발전 방안'.
 국토교통부가 26일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 중 '철도공사의 중장기 발전 방안'.
ⓒ 국토교통부

관련사진보기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사실상 민영화"

그러나 이날 정부가 발표한 안은 이미 공청회 등을 거치며 야당이나 시민사회 단체, 철도노조가 공개적으로 반박한 내용이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지난달 23일 초안을 내면서 "합리적인 지적이 있으면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날 확정안에서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새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핵심인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사실상 민영화로 흘러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철도공사 지분이 30%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부 통제를 받는 연기금이 지분 70%를 민간에 매각할 경우 언제든지 민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민간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자금만을 유치하고 이런 내용을 투자약정 및 정관에 명시하는 등 방지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효성 없는 약속이라는 평가다. 정관은 주주총회를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이전에도 정부가 KT 등의 공기업을 민영화 하면서 이같은 방법을 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따라서 자회사를 만들어 사업 주체를 분리하고 적자 노선은 민간에 넘기는 정부 안이 부채를 절감하기 위한 '독일형 모델'이라는 국토부 주장에 대해서도 시민사회 진영의 반론이 잇따르고 있다. 안 그래도 규모가 작은 국내 철도산업을 분야별로 쪼개 놓으면 비용이 절감되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영수 부경대 경제학과 박사는 "수서발 KTX 노선을 철도공사가 통합운영 하면 초기 투자가 1천 억 원 들지만 자회사로 분할해 진행할 경우 3천 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철도산업은 규모의 경제로 통합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시 이에 대해 "한국의 철도 영업거리는 3500km정도"라면서 "환경이 협소하기 때문에 운영권을 쪼개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공무원들 '6월 안에 해야 한다'"

김재길 철도노조 정책실장은 이날 국토부가 발표한 확정안에 대해 "자신들이 정해놓은 일정과 방식대로 철도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토부 안을 건네받은 시점이 지난달 30일"이라면서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한 달을 채 듣지 않고 졸속 추진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철도노조는 수평적인 조직이라 내부 의견 수렴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6월 20일 이후에 공청회나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서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왜 그렇게 빨리 진행하냐는 거냐고 물어보면 '6월 안에 해야 한다'는 답만 했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도 국토부의 일방적인 졸속 추진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주승용 국토교통위원장은 "철도는 국민의 교통 복리와 국가 경쟁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전략산업"이라면서 "국회를 통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은 "철도를 분할해서 민영화 하겠다는 내용도 문제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국토교통위원회 민주당 의원들은 추후 철도산업 장기비전을 마련하는 소위원회 구성을 추진할 예정이다.


태그:#국토부, #철도산업 발전방안, #철도산업, #수서발KTX, #철도 민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