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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뚜벅 뚜벅."
"(전원 일을 하다 멈추며) 대표님 오셨어요?"
"응, 안녕."

짙게 탈색한 머리, 손가락 사이에 가득 낀 해골 모양의 반지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직원들을 압도하는 육중한 워커. 오늘도 대표는 한껏 치장을 하고 회사에 들어섰다. 

대표는 패셔니스타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회사 밖에서 그는 패션과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힙스터다. 차도 신형 외제차다. 재즈를 즐겨 듣는다. 한마디로 유행을 앞서는 Y세대의 대표주자, 하위문화를 아우르는 진정한 '차도남'이다.

'88만 원도 안 되는 월급...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잖아'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나에게 그 회사의 이미지는 '개성과 문화를 창조하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에 들어가길 동경했고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산업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직원들도 모두 평균 20대 중반이었다. 88만 원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았지만 그 곳 시장 상황이 뻔하니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밑천 바닥나면서도 서울로 대학 보내 준 부모님께 미안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특권층이다"라고 말한 어느 교수의 말을 믿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믿어야 한다며 의도적 자위를 감행했다.

처음이라고 하기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당연히 월급 명세서도 없었다. 그게 이 분야의 관례이거니 생각했다. 나는 그게 소위 말하는 '갑질'이라는 걸 알 리가 없는, 진정한 초짜 중 초짜 을이었다. 그저 그곳에서 일한다는 설렘만 가득했다. 권리 못 찾는 을의 역경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느 날, 회계업무를 보는 직원이 회사가 어려우니 영수증 처리가 늦어질 거라고 했다. 법인 카드가 없어서 회사 직원들은 개인비용으로 회사 일을 처리하고 영수증을 첨부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월급도 부실한데 영수증 비용까지 두 달씩 밀려갔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사실에 대표는 예외였다.

대표는 회사 사정과는 다르게 해외에서 비싼 명품을 자주 사들였다. 일본의 명품 브랜드 신발과 모자가 택배로 도착한 날, 대표는 그걸 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잘 어울리냐고 물었다. 비싼 수동 카메라와 최신식 노트북도 사들고 왔다. 모 이탈리아 브랜드의 티셔츠를 말 그대로 후덜덜한 값에 샀다고 한다.

몇 백만 원짜리 명품 겨울 코트 앞에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세금을 제외하면 고작 7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병행하던 내가 그 모든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리그에 발 먼저 들여 놓고 싶었던 내가 이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부당 행위에 그것도 너무 늦게 눈을 뜬 것이다.

정직 직원과 일은 똑같지만 인턴만 7개월... 너무 늦게 알았다

최고의 '갑질'은 어느 가을 날 벌어졌다. 퇴근을 한 후 친구와 만나 밥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후배였다.

"대표가 지금 당장 회사로 모이래요."

전화를 받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했는데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대표가 지금 화가 났다는 거다. 대표의 신임을 받는 한 직원은 심지어 '집합'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집에 간 직원들에게 지금 당장 회사로 오라고 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렇지, 퇴근을 해 집에서 쉬고 있는 직원들을 대표는 다시 회사로 오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는 걸까?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이런 식으로 직원들을 다룰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근무가 끝난 뒤에도 내가 부르면 달려오라는 식의 회사 대표에 대한 분노가 터졌 나왔다.

정식 직원과 똑같이 일하지만 인턴만 7개월째였다. 관례라고 보기엔 쓰디쓴 악습이었다. 4대 보험? 그런 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월급? 패스트푸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임금이었다. 어느 날은 월급이 절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니 회사에서 할 일이 없다며 10일 동안 휴가를 줬는데 그 10일을 월급에서 제외한 것이다. 후배가 따져 물으니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는 말이 조금 더 얹어 준거란다.

그날 저녁, 대표의 강제소집에 회사에 가서 들은 건 욕뿐이었다. 회사 직원들은 그 자리에 늦은 나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회사가 있어 내가 있는 거다, 너가 먼저가 아니다."

신선했다. 문화를 선도하고 창의적인 마인드로 일을 한다는 이곳에서 저 말을 듣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가 나서 몇 마디 했지만 돌아온 건 이미 회사에 종속된 나와 같은 '을'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분했지만 2년 정도는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서릿발 같은 잔소리에 당장 그만둘 수 가 없었다.

미안하다, 정당한 을의 권리 넘겨주지 못해서

그만둘 수 없는 내가 너무나 처량하고 한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말 이런 일이었나?'라는 끝없는 회의감만 들었다. 돈을 벌면서도 떳떳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부모님께 손을 벌릴 만큼 이 일이 가치 있는 건지에 대한 물음표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껏 치장한 패션으로 자신들의 창조적인 생각에 면죄부를 주는 이 회사를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그 패션 속에 감춰진 보수적 생각과 부당 행위에 이미 압도당한 회사 직원들의 포퓰리즘이 무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진정한 을의 권리였다. 월급명세서도 받고 싶고 근로계약서도 쓰고 싶었다. 4대 보험에도 가입하는 진짜 권리를 가진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그게 너무 힘이 들었다. 부당한 처우를 바꾸려는 나의 한 마디가 오히려 나를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는 이단아로 만들었다.

이제는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일했던 나의 의지와 노력에 가끔 놀라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자의 열정은 대단하지만 그 열정을 착취하는 그곳의 부당함 또한 알면 알수록 기운 빠지게 만든다. 여전히 멋져 보이는 그곳에 가고 싶은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있다. 진정한 을의 권리를 넘겨 주지 못해 그저 미안하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을이다] 기사 공모전 기사입니다.



태그:#갑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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