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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명심보감 강의를 마친 뒤 학생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 김병조 교수.
 명심보감 강의를 마친 뒤 학생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 김병조 교수.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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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는 '일요일의 남자'였다. 장장 7년 동안 많은 사람의 일요일 밤을 책임졌다.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등의 유행어로 국민들에게 '아웃도어'를 종용했다. 하지만 정작 화면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는 그 자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공중파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사라진 그는 지금 광주광역시의 한 대학에서 '수요일의 남자'로 불리고 있다. 유명 교수로 변신한 개그맨 김병조씨를 최근 광주 조선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15년째, 이 대학 평생교육원과 대학원에서 강의한다. 개그맨이었던 그가 맡은 과목은 예능이 아닌, 인문학이다. 그는 현재 전국적으로 명망 있는 명심보감 전문 강사다.   

개그맨의 인문학 강의

그의 수요일 일정은 빡빡하다. 오전에는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로 노년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오후에는 교육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학부생들을 위한 <현대생활과 명심보감> 수업을 진행한다.

그가 하는 강좌에는 반드시 '명심보감'이라는 고전 항목이 분신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경우는 종종 있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 활동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대학에 출강하거나 극히 일부 전임교수로 임용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연예인 출신이 고전 분야 유명 교수로 인정받은 일은 거의 없다.

개그맨 시절 구수한 입담으로 전 국민의 '월요증후군'을 예방해주었던 그가 지금은 명심보감이라는 명약을 현대인들의 마음에 투약하고 있다. 김병조 교수의 조선대학교 명심보감 강좌는 지역 학계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지난 5일, 기자가 조선대학교를 찾았을 때도 숲이 우거진 1층 평생교육원 강의실에서는 명심보감 성심편을 큰소리로 선창하는 강사 목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울려퍼졌다. 강의실은 노년층 수강생 60명으로 꽉 차 있었다. 수강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결석, 지각생이 거의 없는 게 이 강좌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조학행 명예교수는 귀띔했다. 조학행 영문학교수는 당시로선 황당하고 무모한 연예인 인문학강좌를 기획하고 실현한 장본인이다. 

당시 교무처장이던 조 교수는 평생교육원이라는 신설 강좌를 맡아 초기 활성화 방안을 놓고 무척 고심했다. 강좌 홍보에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수강생 모집은 진전이 없었다. 좀처럼 늘지 않는 수강생 때문에 고민하던 그는 인기 연예인 투입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지역 출신으로, 아줌마들 구미에 맞는 개그맨 강사 초빙은 그가 최악의 순간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김병조 정도의 캐릭터라면 침체에 빠진 평생교육원 강좌에 일시적이나마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계산에서였다.

개그맨 김병조는 조 교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더군다나 그는 강사료, 처우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얼마 전까지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유명 연예인치고는 싱거운 동의였다. '한 일 년 하다 말겠지' 하는 게 조 교무처장의 짐작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김병조씨는 지금 15년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수요일 두 시간씩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학부 교양과목으로 입지가 확대됐다.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한 '불순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학부는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심보감 전문강좌가 됐다.

김병조씨는 "어떤 식으로든 고향에서 신뢰를 쌓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를 수락했다. 첫 강의를 마친 후 그는 "명심보감 전문 강좌로 개편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번엔 조 교무처장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고향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 정말 기뻤습니다. 사실 '봉사'라는 말도 불교도인 제 입장에서는 주제 넘는 단어죠. 명심보감 강의라는 법보시도 저한테는 황송한 인연인데, 거기에 베푼다는 개념조차 없이 행하는 무주상보시가 저의 서원입니다."

김병조 교수 선친은 고향 전남 장성에서 유명한 서당 훈장님이었다. 그중에서도 주력 분야가 명심보감이었다. 명심보감 전파에 남다른 사명감 있던 선친의 영향으로 그도 어려서부터 명심보감을 깊이 익혔다. 평생교육원 강의를 명심보감 전문 강좌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에겐 운명 같은 일이었다. 명심보감 전파는 그의 가업이나 마찬가지다. 

연예인 고전 강좌 소식을 접한 지역 학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향토 학자들의 반발이 컸고, 시민들의 거부감도 상당했다.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고전 강의를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등의 유행어를 만든 개그맨이 하는 건 쉽게 납득이 안 됐다.

하지만 김병조 교수는 여러 우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켰다. 그의 강의는 질과 내용 모두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유의 유머와 입담을 활용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수업 방식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수강생 모집에 애를 먹었지만, 금방 수강생을 60명으로 제한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강생들의 무결석, 무지각 원칙이 정착된 데에는 교수의 솔선수범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 김 교수는 서울-광주 구간을 왕래하는 15년 동안 비행기를 이용한 적이 없다. 50분이면 도착하는 신속한 항공편을 마다하고 매번 KTX 등 기차를 이용했다. 항공편은 빠르지만 결항 위험이 있다. 그의 KTX 고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강-휴강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여전히 개그맨 스케줄로 바쁘다. 그럼에도 "광주행 일정이 있는 수요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별 보탬이 없는데도 말이다. 

대박 터뜨린 김병조의 명심보강 강의

5일, 취재 명목으로 그의 수업을 '도강'했다. 강의실은 수강생 60명으로 꽉 찼다. 맨 앞자리에 앉은 부부 수강생이 각자 교재에 열심히 밑줄을 긋는다. 뒤쪽 줄의 판사 딸과 엄마도 방금 배운 구절을 큰소리로 복창한다. 그 대각선 뒤쪽으로는 81세의 최고령 수강생 할머니 두 분이 사이좋게 김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모범 수강생들은 전직 학교장, 휴직중인 판사, 요식업 사장, 공무원 은퇴자, 전직 교수 등 대개 노년층이다. 과거 각자의 분야에서 고위직에 오른 수강생들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명심보감 성심편 경행록 구절을 익히기 위해 고심하는 만학도일 뿐이다.

김병조 교수의 명심보강 강의. 강의실이 꽉 찰만큼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김병조 교수의 명심보강 강의. 강의실이 꽉 찰만큼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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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교수 강의는 신바람 난다. 한문 실력은 소문대로다. 가히 막힘이 없다. 김 교수의 자상한 설명에 전직 교장, 판사, 가정주부 등 수강생들은 꼼꼼하게 밑줄 긋고 각주를 단다.

기자의 '일일짝꿍' 이길용 어르신은 교재를 챙겨주며 김 교수가 방금 설명한 대목을 친절히 짚어주신다. 어르신은 "3년 전 암수술을 했는데, 후유증으로 지친 심신을 이 강의 들으며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의 세심한 배려에 초심자인 기자도 경행록 한 구절을 더듬더듬 따라가 본다. 김 교수의 강의는 반복과 복창이 특징이다. 주입식 교육이 여기선 효과적인 학습방법 중 하나다. 방금 배운 구절을 복창하고 혀에 익숙하도록 반복한다.

"부불우심은 인자효요, 부무번뇌는 시처현이라(父不憂心 因子孝, 夫無煩惱 是妻賢). 언다어실은 개인주요 의단친소는 지위전이니라(言多語失 皆因酒, 義斷親疎 只爲錢)."

"아버지가 근심 없는 것은 자식의 효 덕분이요. 남편이 번뇌가 없는 것은 현명한 아내 덕분이다. 그리고 또 모든 언행의 과실은 술로 인해 말미암는다!"

학구파 짝꿍의 성실한 각주를 살짝 커닝한 순간, 현명한 아내도 못 되면서 술도 좀 하는 아줌마 기자는 뜨끔한다. 이길용 어르신은 이 대목에 유난히 밑줄을 많이 그어 놓았다.   

앞쪽의 모녀 수강생은 자매처럼 나란히 앉아 강사 한마디 한마디에 눈을 반짝인다. 현직 판사인 딸은 현재 건강상 이유로 휴직중이다. 곧 복직이어서 이번 학기 이후 더는 듣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명심보감을 열심히 숙지한 판사의 판결이 기대된다.

"음법지이불루요 양헌속이유도라(陰法遲而不漏, 陽憲速而有逃)."

"'하늘법은 느리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고, 인간법은 빠르지만 허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하늘이 내리는 벌은 사람의 법보다 느려 보여도 결코 허점이 없다, 한마디로 천벌은 반드시 내린다, 공소시효가 없다 그 말이에요."

교수의 자세통훈(資世通訓)편 천벌과 형벌을 대조하는 구절에 판사의 시선이 유난히 오래 머문다. 딸이 다음 학기부터 강의에 빠져도 어머니는 혼자 계속 강의를 듣겠단다. 장기근속 강사, 장기 수강자들도 이 강좌의 특징이다. 십년 이상 장기 수강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최고령 수강자 할머니 두 분은 사이좋은 단짝인데 수업에 임하는 태도는 마치 입시에 임하는 소녀처럼 진지하다. 한시도 교재에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여고시절 책에서 손을 놨지만 "하던 가락이 있어서", 몇십 년 만에 접하는 명심보감이 전혀 낯설지 않아 "쉽고", 또 엄청 "재미있다"시니 구불거리는 한자 공부가 낯설기만 한 아줌마 기자는 기가 죽는다.

'부부 수강생' 두 분도 이 시간 만큼은 학우관계로 돌아간다. 쉬는 시간에는 두 분이 서로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주더니 수업이 시작되면 각자 노트에 깨알 같은 각주 다느라 바쁘다.

"가화(家和)면 빈야호(貧也好)어니와 불의(不義)면 부여하(富如何)오 단존일자효(但存一子孝)면 하용자손다(何用子孫多)리오."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지만, 의롭지 않으면 부자인들 무엇하리오. 단, 효하는 자식이 하나라도 있다면 많은 자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부부는 그렇게 십년째 동문수학중이라고 한다. 강의가 끝나고 슬그머니 아는 체를 하시는 장명희 선생님. 다름 아닌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라 시민기자인 나를 그렇게 반가워하셨던 거다. 2년 전 교사 은퇴하고 명심보감 강의를 두 학기째 듣고 있단다. 

오전 두 시간 강의가 끝난 뒤 김병조 교수는 바로 오후 강의 준비에 돌입했다. 수강생 80명의 <현대생활과 명심보감>이라는 교양과목 수업이다.

"정말로 교수님이 옛날에 그렇게 유명했어요? "

학생들은 앞에서 강의하는 저 교수님이 유명 연예인이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 채 수강신청을 했다고 한다. 명심보감 강의로 유명한 교수님 정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때 잘나가던 개그맨이었다는 식이다.

"요즘으로 치면 유재석씨 정도? 그만큼 유명했어요."

행정복지학과 김민호씨는 기자의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교수님 수업 재미있긴 해요. 개그맨이셨다는 것, 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강의를 무척 이해하기 쉽게 하시더라고요. 딱딱한 명심보감을 교수님이 설명하면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김 교수는 교육대학원 강의도 14년째 28학기를 거치고 있다. 출석부에 공식 등재된 학생 수는 80명이다. 그런데 실제 강의를 듣는 학생 수는 대충 세어 봐도 120명 정도다. 청강생들이 많은 셈이다. 김 교수의 명심보감 강의는 '도강생'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늘(5일)은 1학기 종강수업이다. 그 탓에 강의가 끝난 뒤 교단 앞이 부산하다. 그동안 정들었던 학생들이 면담, 상담, 연락처 교환하기 등 교수님과 용무를 보기 위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각자 아버지에게 양말 사드리기'를 과제물로 내주는 독특한 교수님과의 이별이 학생들은 무척 아쉬운 모양이다.

'조공' 받는 김병조 교수

친구들이 교수님과 상담을 하는 동안 김혜미(무역학과 21)씨는 혼자서 조용히 복습을 하고 있었다.

"저희 교수님이 유명한 개그맨이었던 건 맞는 거 같아요. 기자님도 아까 보셨죠? 교수님 강의 정말 재밌어요. 지루할 새가 없어요."
"개그맨이라는 거 나중에 알고 어땠어요?"
"전혀 연예인 같지 않으세요. 수업할 때 위트 있긴 했지만..."

김씨 역시 교수님의 특이한 이력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명심보감 강의가 들어 있는 수요일은 그녀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다. 수강생 3분의1이 청강생으로 채워진 인기 강좌는 우연한 이변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조공'으로 삶은 달걀과 편지를 받은 김병조 교수.
 학생들에게 '조공'으로 삶은 달걀과 편지를 받은 김병조 교수.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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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마지막 수업의 마무리는 길게 이어졌다. 학생들과의 이별의식이 한참 만에 끝났다. 서울 모방송국 녹화 스케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까스로 강의실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여학생이 수줍게 편지를 건네고 사라진다.

"흠, 가슴이 찡하네요, 편지 내용이. 제 수업에 결석, 지각을 너무 많이 해서 죄송했다는 사연이에요. 아르바이트 하느라 그랬대요. 제 명심보감 강의 듣고 더욱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김병조 교수에게는 편지뿐만 아니고 서울 가는 길에 드시라고 삶은 달걀 세트를 슬그머니 놓고 가는 학생도 있다.

"'조공' 받는 교수님이군요."
"하하, 정말 보람있고 행복합니다. 명심보감은 저와 고향을 화해시켜준 매개체입니다."
"이번에 책도 내신다면서요?"
"지금까지 알려진 명심보감은 원조 명심보감의 3분의1 정도 밖에 안 되는 축약본입니다. 798구절 원조 명심보감이 발굴 되었는데 제가 그것을 오랫동안 공들여 번역했어요. 조만간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후학들에게 명심보감을 전파하는 것, 그것은 선친의 유훈이었다.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수모를 무릅쓰면서도 아버지 사마담의 유훈인 <사기>를 집필했듯이, 김병조씨 또한 크나큰 인생의 시련을 맞아 명심보감이라는 방편시술로 고향과의 화해와 회생을 모색했다.

다시, 서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떠나는 김 교수는 다음주 학생들 시험을 걱정했다. 김 교수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명심보감 교수'로 남길 원한다고 했다.


태그:#김병조, #명심보감, #조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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